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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 박물관에서 만난 독일 예술장신구의 흐름

독일의 예술장신구,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글로벌 분석가

GERMANY


Hallo!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김솔빈 특파원이 취재한 독일의 예술장신구 흐름에 대해서 살펴보자!

WJRC 글로벌 분석가 <독일> 3월호


독일 예술장신구, 개성과 실용의 내력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끌어 낸 ‘좋은 형태’



참 다양하다. 독일에서 2년 넘게 살며 거리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 인종도 옷차림도 각각에 장신구도 비슷한 것이 하나 없다. 한국에서는 번화가를 중심으로 비슷한 모양과 질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특히 주얼리는 특정 브랜드와 몇 가지 모티브가 유행인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들은 패션잡지나 소셜미디어에서 몇 주 전에 소개된 것들이었다. 이곳의 미디어에서도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고 제안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취향이 유행을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유행을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연령에 따른 선호도 알기 어렵다. 서울에서 패션 주얼리를 4년간 제작해 판매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금속과 보석의 종류 및 디자인의 볼륨 면에서 타겟 연령층을 미리 설정하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청년이 착용하는 주얼리와 중년, 노년이 착용하는 주얼리 간에 큰 차이가 없다. 특히 패션 주얼리-액세서리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타인의 시선과는 무관하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착용할 뿐이다. 개성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역사적 맥락을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곳 라이프치히의 그라시 박물관(GRASSI MUSEUM für angewandte Kunst)은 1873년 공예박물관으로서 설립되었으며 베를린공예박물관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응용미술 전문 박물관이다.[1]  특히 상설 전시 중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Jugendstil bis Gegenwart)’ 부문을 보면 현대 산업디자인의 정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유겐트 양식, 이어지는 아르데코와 기능주의를 거쳐 193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디자인 경향을 2,000여 점의 전시물을 통해 시기별로 정리한 전시다. 이 중 1930년대 이후 주얼리의 변화상을 살펴보았다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 전시실 내부



‘유겐트 양식에서 현재까지’ 전시의 1930년대 이후에 해당하는 전시물은 이렇듯 열린 공간에 하나의 흐름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림 2,3,4는 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부분이다. 가구, 가전제품, 식기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공예품들의 맥락 안에 장신구들이 위치해 있다.


(좌) 목걸이, Hildegard Risch, 1930년 할레 제작. 은에 체이싱, 땜.  /  (우) 목걸이, Otto Scharge 1932년 할레 제작. 은, 조립.

1930년대 세공장의 주얼리



(좌) 목걸이, Hildegard Risch, 1930년 할레 제작. 은에 체이싱, 땜. 

(우) 목걸이, Otto Scharge 1932년 할레 제작. 은, 조립.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기능주의의 영향으로 기능성, 합목적성, 재료의 올바른 사용이 건축을 비롯한 예술적 작업물 전반에 요구되었다. 형태 를 논할 때 특히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면이 자주 강조되었는데 이는 과학과 기술, 기계와 속도로 대변되는 시대정신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다. [2]




목걸이. Trude Petri, 1929년, 1930년 베를린 제작. 도자기에 금과 백금 채색, 금속.


베를린의 국립 도자기공장을 위한 수공예 디자인. 1920년대 초 독일의 도자기 제조업계는 주얼리를 통해 새로운 제품 가능성을 탐색했다.[3]



(상) 팔찌. Tony Koy. 1935년 이전 쾨니히스베르그 제작. 은, 곤충이 들어있는 호박.

(하) 브로치. Tony Koy. 1930년, 1937년 쾨니히스베르그 제작.


 


(좌) 목걸이. Gebr Warnecke의 작업장. 1931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제작. 은. 압연.

(우) 브로치와 팬던트. Toni Riik의 작업장, 1937년 루드비히스부르그 제작. 은, 체이싱.


1950년대와 1960년대 예술장신구



‘작은 말 목걸이’. Renate Heintze, 1966년 할레 제작. 금에 체이싱, 투어멀린.


1940년대 전쟁 직후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것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디자인은 평행선을 그리며 전개되어 왔는데 양쪽 모두 ‘좋은 형태’에 대한 개념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사실적이고 기능적이면서 미학적으로 유효한 형식을 의미한다. 동독에서는 형식주의 토론으로 인해 이러한 디자인 전개가 늦어졌지만 중단되지는 않았다.[4]


1950년대에는 주얼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물질적 가치들이 점차 예술적이고 개별적인 표현들로 대체되었다. Weiss-Weingart와 Heintze는 전통적인 주얼리 재료들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구조화하거나 표면을 소성 변형시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이끌어냈다.[5]



(좌) ‘두뇌 연구’ 판. Ebbe Weiss-Weingart, 1957년 잘렘 암 보덴제 제작.

(우) 팔찌. Otto Scharge, 1964년 할레 제작. 금, 가넷.


(상) 한 쌍의 브로치, Erich Lenné 1957년 베르니게로데(하르츠) 제작. 금, 터키석.

(중) 화실촉 모양 브로치, Harald Otto, 1966년 자이츠(작센안할트) 제작. 철에 단조, 금 도금.

(하)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 브로치, Barbara Ruge 1969년 에르푸르트 제작. 철, 금, 진주.


1970년대와 1980년대 예술장신구



(좌) 팔고리,상박에 착용하는 고리. Monika Winkler, 1974년 라이프치히 제작. 은,  톱니바퀴, Piacryl.

(우) 팬던트 달린 목걸이. Cornelia Rohne, 1978년 라이프치히 제작, 은, 금박, 아크릴.  


1960년대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이 기술적인 진보와 미래에 대한 신념을 대변하는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디자인의 기능주의적 방향성이 동독과 서독을 통틀어 1970년대 말까지 지배적인 경향을 띄었다. [6] 


수많은 장신구 작가들이 실험적인 시도를 했고 라이프치히의 작가 Monika Winkler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960년대에 익숙하지 않은 재질들의 조합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대안적인 재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동독 지역의 귀금속 할당량 제한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사용한 Piacryl은 동독 지역의 유일한 아크릴유리제조업체 Piesteritz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플라스틱의 일종이지만 1930년 이후 Plexigla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7]    



(상) 명예반지. Wolfgang Schäfter, 1974년 라이프치히 제작. 은, 아크릴, 헤마타이트.

(하) 팔찌. Wolfgang Schäfter, 1977. 1981년 라이프치히 제작. 스테인리스스틸, 아크릴, 라피스라줄리, 백금.



(좌) 세 개의 브로치. Helmut Senf, 1978년 에르푸르트 제작, 스테인리스스틸에 무광처리, 유광 처리.

(우) ‘긴 목걸이’. Monika Winkler, 1976년 라이프치히 제작. 스테인리스스틸. 폴리에스테르,은.



(좌) ‘큰 꼬임 목걸이. Dorothea Prühl 1984년 할레에서 제작. 뿔에 조각 및 광택, 염색한 장식줄.

(중) ‘금 꽃. Dorothea Prühl 1988년 할레에서 제작. 금을 휘고 주름잡음, 도금.

(우) 브로치. Hermann Jünger 1974년 뮌헨에서 제작. 금, 은, 칠보.



(좌) ‘피, 땀, 그리고 눈물’. 목걸이. Bernhard Schobinger, 1989년 리히터스빌(스위스) 제작.  톱날, 은, 칠보, 다이아몬드.

(우) 팔찌. Bernhard Schobinger, 1984/1989 리히터스빌(스위스) 제작. 철에 은땜, 조각, 채색.


1990년대 이후 예술장신구



(좌) ‘분홍색 목걸이’. Lilli Veers , 뤼네부르그 2012년 작 은, 오닉스, 종이, 플라스틱, 착색 수지.

(우) 브로치. Margit Jäschke 그라시상 수상. 2012년 할레 제작, 카파 판지, 플라스틱, 은, 합성석.


1970년대 말부터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개인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소위 ‘새로운 디자인’은 일반적이고 실용적인 미학의 반대급부로서 기괴한 형태와 비범한 재료를 내놓았다. 1990년대에 들어 디자인은 다시 심미적으로 안정을 찾아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제작가능성과 새로운 재료를 모색하고 있다.[8]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타원더미 오렌지’. 브로치, Mirjam Hiller 그라시상 수상. 2009년 포츠담 제작. 스테인리스스틸에 래커, 톱질, 접음.

(2) ‘마요르카’. Stephnie Jendis, 2003년 암스테르담 제작. 낡은 서핑보드, 합성석.

(3) 반지. Giampaolo Babetto 2001년 파두아(이탈리아) 제작. 화이트골드, 아크릴.

(4) ‘숨’. 브로치. Svenja John, 2001 베를린 제작. 플라스틱에 착색 및 부착.

(5) 브로치. Beate Eisman 2002년 할레 제작. 은, 동, 칠보, 펠트.

(6) 브로치. Georg Dobler, 그라시상 수상. 1999년 베를린 제작. 은, 연수정판, 스테인리스스틸.




세 개의 목걸이. Otto Künzli , ‘단편(fragment)’ 시리즈 중 세 개의 목걸이. 1986/2015년 작. 강철 끈, 목재에 부분적으로 부식처리, 도금, 채색, 절단. 


바로 지금, 독일의 주얼리



대학원에서 장신구사 수업을 들었던 바에 따르면 장신구는 응용미술 분야 중에서도 해당 예술사조의 특징을 가장 늦게 반영한다. 다만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변화의 전파속도가 빨라져 다른 디자인 분야와의 시간적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고 배웠다. 그라시 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193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장신구를 보다 큰 디자인 경향의 맥락 안에서 살펴본바, 실제로 그러함을 알 수 있었다.


독일의 1930년대 이후 장식미술은 새로운 소재와 구조를 탐구하는 한편으로 기본적으로 기능성과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 종전 이후의 원점에서부터 시작해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독과 서독의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물질적 한계 상황에서 대안적 재료를 찾고 기존의 형태를 변화하는 실험을 계속해 왔으며 이는 ‘좋은 형태’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졌다. 장신구 작가들도 같은 맥락에서 활동해왔다. 특히 동독 지역의 작가들은 금, 은 등 귀금속과 귀보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철과 아크릴 같은 새로운 소재와 준보석을 조합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장신구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1970년대 이후 작가들이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1980년대 폭발적으로 소재와 형태의 한계를 계속해서 실험해 1980년대 말 장식미술은 기능성보다는 예술적인 의도가 강조된 다소 기괴한 형태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장식미술-디자인용품들은 다시금 실용적인 면모를 되찾고 작가-디자이너의 의도를 표현하는 한편으로 이른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제작과정을 고려하게 된다. 예술장신구 또한 일련의 맥락에서  장신구로서 개념상의 한계에 도전하는 작품들이 존재했지만 적어도 이 전시를 통해 살펴본 독일의 현대 예술 장신구는 이 시기에도 착용 가능성을 잃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점에서 시대를 초월해 장신구 본연의 기능과 작가의 개성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러한 특성은 이후 최근의 독일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 장신구 작가들의 작품은 바로 지금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라이프리히 시내의 한 주얼리 상점에서 박물관에서 봤던 장신구 형태들이 반복되고 변형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개별 제품에서 1930년대, 195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의 디자인들의 변주가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근접 촬영 허가는 얻지 못했다. 다만 지금 여기 라이프치히에서는 예술장신구와 패션 주얼리의 경계가 흐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개인정보의 유출을 극히 꺼리는 독일인의 특성상 사진 촬영이나 개별 인터뷰가 어려운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방책으로 원래 취재를 계획했던 행사가 전면 취소되어 차선책으로 박물관의 콘텐츠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전시의 도시인 만큼 전달하기에 의미 있는 정보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술장신구에 대한 이번 3월 호의 내용이 독일의 패션주얼리 착용 문화의 기본이 되는 실용주의, 개성 추구의 바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출처


본문 이미지 - 직접 촬영




참고문헌


[1] 그라시 박물관 전시 소책자

[2] 그라시 박물관 홈페이지 전시 소개

https://www.grassimak.de/museum/staendige-ausstellungen/raeume/

[3]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 내부 전시 설명

[4]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 내부 전시 설명

[5]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 내부 전시 설명

[6] ‘유겐트양식에서 현재까지’ 내부 전시 설명

[7] 박물관-디지털: 독일

https://nat.museum-digital.de/index.php?t=objekt&oges=201664&cachesLoaded=true 

[8] 그라시 박물관 홈페이지 전시 소개

https://www.grassimak.de/museum/staendige-ausstellungen/raeume/





콘텐츠는 월곡 주얼리 산업연구소에서

제작 및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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