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기는 보물 찾기와 같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시어와 행간에 은유와 상징으로 숨겨놓듯이, 그림책 작가는 글에서 표현하지 않은 생각들을 그림 속에 숨겨놓는다. 그림책 속 보물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잘 찾는다. 아이들 순수한 마음과 상상의 힘 때문일 것이다. 그림책을 읽을 때 어른들이 글에 집중하는 반면 아이들은 그림에 더 집중한다. 그림을 보며 상상을 동원해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간다.
백희나의 그림책 《알사탕》은 그림 속에 유난히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 인물의 표정, 사물이나 배경의 색깔, 색의 밝고 흐린 정도, 그림의 크기나 위치까지 모두 다른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던 아이에게 알사탕 한 봉지가 생기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변 세계와 단절되어 있던 아이가 알사탕을 통해 곁에 있는 존재들의 목소리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알사탕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닫힌 마음을 열고 세상을 향해 걸어 들어가게 한다.
그림책 속 주인공, 동동이는 늘 혼자다. 친구들이 자기들끼리만 논다며 혼자서 구슬치기를 한다.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얼굴 표정은 안타까울 만큼 시무룩하고 슬퍼 보인다. 강아지 구슬이와 늘 함께 다니지만 같이 놀지는 않는다. 목줄에 매인 구슬이는 축 쳐진 몸으로 동동이 손에 끌려 다닐 뿐이다. 놀이터 저 쪽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모습이 흐릿하다. 동동이와 연결되지 못한 세계를 작가는 흔들린 사진처럼 흐릿하게 그려놓고 있다.
동동이는 새 구슬을 사러 갔다가 알사탕 한 봉지를 산다. 봉지 안엔 크기도 색깔도 다른 알사탕 여섯 개가 들어있다. 첫 번째 꺼낸 알사탕은 주황색과 갈색이 섞인 체크무늬 사탕이다. 동동이는 어디서 많이 보던 무늬라고 생각한다.
“으아, 박하 향이 너무 진해 귀까지 뻥 뚫린다!”
이 장면에서 동동이 얼굴 표정이 확 바뀐다. 눈은 알사탕처럼 튀어나오고, 볼은 볼록, 머리카락은 쭈뼛, 안보이던 귀도 보인다. 알사탕이 닫혀있던 동동이 눈과 귀를 열게 한 것이다. 알사탕을 입에 넣은 뒤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체크무늬의 거실 소파가 말을 한다.
“동동아, 나는 소파… 너희 집 소파…”
소파는 리모컨 때문에 옆구리가 결리다고, 동동이 아빠 방귀 냄새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들다고 한다. 입 안의 사탕이 녹자 목소리도 사라진다. 얼룩무늬 사탕을 입에 넣자 이번엔 강아지 목소리가 들린다.
“동동아, 네가 전부터 오해하는 게 하나 있는데 말이지.”
하면서 말을 시작한다.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늙어서 자꾸 눕고 싶은 거'라고. 동동이와 구슬이는 팔 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그날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논다.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도 소통하지 않으면 상대방 마음을 알 수 없고, 가까워질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없음을 보여준다.
“동동아, 아빠다!”
코밑과 턱에 수염자국이 가득한 아빠 얼굴 그림이다. 안경을 썼는데 김이 서려 눈이 보이지 않는다. 아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동동이와 아빠가 서로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빠 얼굴 옆쪽은 한 쪽 전체가 띄어쓰기도 없이 아빠의 잔소리로 꽉 차 있다.
동동이가 아빠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자기 맘을 닮은 까칠한 사탕을 입에 넣었다. ‘사랑, 사랑, 사랑…’ 소리가 들린다. 거뭇거뭇 털 자국 무늬의 사탕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동동이를 사랑하는 아빠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번엔 누구 목소리가 들릴까 궁금해하며 동동이는 분홍색 사탕을 입에 넣는다. 말랑한 사탕 속에 분홍색 풍선껌이 들어있다. 풍선을 불었더니 휙 날아가 버렸다가 돌아와서는 동동이 귓가에서 뻥 터졌다.
“동동아, 잘 지내지?”
할머니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여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게 잘 지낸다며, 동동이도 친구들이랑 많이 많이 뛰어 놀라고 한다. 동동이는 언제든 할머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풍선껌을 식탁 밑에 붙여 놓는다. 할머니 사랑을 그리워하는 동동이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여있는 사탕을 입에 넣자 ‘안녕, 안녕, 안녕…’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나갔더니 단풍나무 잎들이 안녕, 안녕하면서 떨어진다. 단풍나무 숲 저쪽에 한 아이가 흐릿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동동이는 마지막 남은 투명 사탕을 입에 넣고, 저쪽 아이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먼저 말해버리기로 한다.
“나랑 같이 놀래?”
투명 사탕은 바로 동동이 마음이었다. 동동이는 새로 만난 친구와 킥보드를 타며 신나게 논다.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을 쉽지 않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용기가 없어서, 상대방이 싫어할 까 봐, 누군가와 연결되는 게 귀찮아서, 서로 다른 이유로 입을 열지 않는다. 동동이는 알사탕 덕분에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었다. 분홍 사탕 속 할머니의 사랑과 격려가 동동이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동동이에게 친구가 생기기 전 아파트 출입구 옆에 스케이드 보드 하나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친구가 생긴 뒤 킥보드 두 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출입구 처마에 희미하게 쓰여 있던 숫자 8 - 1 - 9도 또렷해졌다. 8에서 9로 성장하는 데는 매개체 1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고립되어 있던 아이를 세상과 연결시켜 준 알사탕처럼 달콤한 ‘관심과 사랑’ 말이다.
그림책 《알사탕》은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관련지어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중심 세계에 갇혀 있다가 점점 주변 세계로 관심 영역을 넓혀간다. 어떤 아이들은 정서나 심리, 환경 요인들로 인해 늦게까지 자기 안에 갇혀있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아이들을 바깥 세계와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 그림책에선 알사탕이 그 역할을 해 준다. 늘 곁에 있지만 무심했던 사물에 관심을 갖게 하고, 생물, 사람과 소통하게 한다. 알사탕이 들려주는 마음의 소리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바깥 세계로 스스로 걸어 나가게 한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감정과 내면이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알사탕》을 읽으면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현재 아이의 관심사나 심리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쉽게 주인공과 동일시되고 감정이입을 한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응원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마음 상태를 꺼내놓는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부모나 교사에게 필요한 보물 찾기는 곧 아이의 심리상태를 읽어내는 일이다. 동시에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들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알사탕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