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울어?

- 자존감을 키워주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말 -

by 혜아


≪너 왜 울어?≫는 바실리스 알렉사키스가 글을 쓰고, 장-마리 앙트 낭이 그림을 그린 어른을 위한 자녀교육 그림책이다. 겉표지엔 회색의 커다란 손그림자가 가운데를 꽉 채우고 있다. 왼쪽 위 붉은 손톱이 오른쪽 아래 주눅 든 표정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고 있다. 붉은 손톱과 회색 손 그림자가 위협적이다. 언뜻 보아도 아이를 지적하며 뭔가 크게 혼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섯 살 아들에게 처음 매를 들었던 때이다. 폐암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러 친정에 갔던 날이었다. 아버진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견디고 계셨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뼈만 남은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게 전부였었다. 그날따라 아이는 이유 없이 칭얼댔고, 화를 참지 못한 난 아이에게 매를 들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버지가 숨을 놓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 다시 친정으로 갔었다. 그날이 생전에 아버지 얼굴을 보는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이유 없이 칭얼댄 것도, 아이에게 화를 내며 매를 든 것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매를 들었던 그날의 내가 꼭 이 그림책 속 엄마 같았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아이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코드 입어! 장화 어디 있니? 어서 가서 장화 찾아와. 장화 못 찾아오면 엉덩이 한 대 맞고 우리 그냥 집에 있는 거다. 그냥 집에 있으면 좋겠어?”


이야기는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강하고 위협적인 외침으로 시작된다. 그림은 대부분이 검은 윤곽선만으로 그려져 있다. 엄마의 손톱과 아이의 모자, 어항 속 물고기만이 빨간색이다. 창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조차 회색이다. 회색은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의 우울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장화는 빨간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어항 속에 들어있다. 장화를 생각하는 아이가 자신을 어항 속 물고기와 동일시하고 있음이다. 어항에서 나가고 싶은 물고기 마음이 곧 엄마의 잔소리 감옥에서 탈출하고 싶은 아이 마음 이리라.


“어 열쇠가 어디 갔지? 너 혹시 엄마 열쇠 못 봤니? 분명히 식탁 위에 있었는데 아, 아니다 여기 있다. 가자 손 줘.”


아이에게 장화를 찾으라고 호령하던 엄마가 열쇠를 찾는 장면은 실소를 짓게 한다. 이 장면에서 늘 깜빡깜빡하는 내 모습이 겹쳐진다. 빨간 손톱의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아이의 팔이 하늘을 향해 쭉 뻗친 모습에서도 엄마의 강압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밖은 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지 않다. 길가 울타리는 뾰족한 쇠창살 같다. 아이의 마음이 칙칙한 날씨와 울타리에도 반영되어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떠들지 말라며 자신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림책 속 글은 모두 엄마 말이다. 아이 행동이나 마음은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빨리 좀 걸어, 시간이 별로 없어. 그 끈 버려. 엄마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 아무것도 줍지 말라고 백번도 넘게 말했지.… 엄마 말 잘 들으면 슈크림 빵 사줄게.… 모래에서 그렇게 뒹굴면 다친단 말이야. 엄마는 평생, 네 옷이나 빨면서 살고 싶지 않거든.”


밖에 나와서도 아이는 자유롭지 못하다. 표정은 여전히 시무룩하다. 엄마는 밖에서도 아이를 꼼짝 못 하게 한다. 아이가 자기 말과 반대로만 하는 것 같다며 아이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행동을 제지하기에 바쁘다. 엄마가 보이는 곳에서만 놀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 마음속 엄마는 무서운 괴물 형상으로 표현된다. 엄마의 온갖 간섭과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아이는 나비를 본다. 갑갑한 마음을 나비에게 얹어 훨훨 날려 보내고 싶었나 보다.


“너 엄마 말 안 들을래? 그럼 좋아. 슈크림 빵 안 사줄 거야.… 왜 또 징징거리는 건데? 알았어. 슈크림 빵 사줄게. 제발 그만 좀 징징거려. 엄마 그거 감당 안 되거든!… 코트 더럽히면 엉덩이 맞을 줄 알아. 그리고 아빠한테 다 일러 줄 거야.… 장화 벗어. 온 집안에 모래 묻히고 돌아다니는 거 엄마는 진짜 싫어. 장화 당장 벗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거 하지 마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엄마 말만 계속된다. 아이 말은 한마디도 없다. 아이는 그저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각형 틀 속에 갇혀 있다. 아이가 쓰고 있는 모자의 빨간 색깔만이 엄마 말에 저항하는 아이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사각형에 갇힌 아이 얼굴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너 왜 울어? 왜 그러는 건데. 네가 나가서 놀고 싶어 해서 밖에도 나갔다 왔고, 또 엄마가 슈크림 빵도 사 줬는데 기분이 좋아서 웃어야지. 오히려 울어?”


엄마는 아이 마음이 어떤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채 아이 마음을 지레짐작해 자기 판단대로 행동한다. 아이를 다그쳐 밖으로 끌고 나가고, 밖에선 아이 행동을 감시하고 제지한다. 자기 마음대로 슈크림 빵을 사준다 안 사 준다고 하고, 나중엔 아빠한테 일러줄 거라며 협박까지 한다. 아이 마음을 몰아붙일 대로 몰아붙이고 왜 우느냐고 소리친다. 책장을 넘기며 아이를 향해 쏟아내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숨이 막혀온다.


마지막 그림은 아이가 엄마의 치마 감옥에 갇혀 있는 장면이다. 그림 오른쪽엔 “얘가 사람 돌게 만드네.” 감정이 극에 달한 엄마의 푸념이 나온다. 다음 장 양쪽 페이지 한가운데 “왜 / 울어?” 두 마디와 함께 이야기가 끝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엄마의 말에 짓눌려 움츠러드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끝내는 눈물을 터트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의 진짜 마음은 아이 건강을 염려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며 아이를 잘 돌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엄마는 자기 생각대로 아이를 끌고 다니며 자신의 틀 안에 가두고 있다. 그림책 속 아이의 빨간 모자는 엄마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으로 다가온다.

부모의 언어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 이상으로 아이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림책 뒷부분에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부모의 언어가 아이의 언어발달, 인지발달, 사회성 발달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엄마의 부정적인 말은 아이를 자신 없고, 불안한 존재로 만들며, 긍정적인 말은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고, 스스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고 한다.

맥클레드의 연구에 의하면 성취동기가 높은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비난 대신 “조금 더 해보자.”, “넌 해낼 수 있어.”와 같은 격려의 말을 했으며, 잘했을 땐 “아주 잘했네.”, “아주 훌륭해.” 같은 칭찬의 말을 했다고 한다. 반면에 성취동기가 낮은 아이들 부모는 아이가 잘하고 있을 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실수를 하면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 넌 너무 급해. 늘 그렇다니까.”라는 식으로 비난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연구는 부모의 말이 아이의 자신감과 성취동기에 어떤 미치는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지적과 비난을 일상적으로 들은 아이들은 깊은 좌절과 함께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이 책은 부모가 자신의 말을 되돌아보며 자녀 마음을 헤아려보게 한다. 부모의 욕심과 조급한 마음이 아이를 다그치게 하고, 자녀에 대한 사랑을 잘못 표현하면 오히려 독이 됨을 보여준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 넘치고 행복한 아이로 성장한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흥분하진 않았는지, 과격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나는 어떤 엄마였고, 현재는 어떤 엄마인지, 아이에게 어떤 말과 기운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엄마인지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들려주는 엄마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노력할 점을 찾다 보면 좀 더 바람직한 부모와 자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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