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두려움은 잘못된 생각이나 상상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해 두려움은 꼭 필요하지만, 가끔 우린 그 두려움에 잡아먹히기도 한다. 아드리앵 파를랑주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겉표지 한가운데 돋움체의 커다란 제목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제목 주변 어지러이 날고 있는 새와 웅크린 아이들은 주로 초록과 빨강으로 표현되어 있다. 초록이 안정과 편안함, 휴식의 의미를 지닌다면, 빨강은 불안과 두려움,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는 색깔을 통해 한 존재 안에 공존하는 두려움과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겉표지를 넘기면 면지를 가득 채운 빨강이 훅 달려들어 불안과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어느 저녁 사자가 방을 비운 사이 호기심 많은 소년이 사자의 방에 들어온다. 구석에서 잠자던 생쥐는 소년이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달아난다. 밖에서 들여오는 소리에 소년은 사자가 돌아온 줄 알고 재빨리 침대 아래로 숨는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것은 사자가 아닌 또 다른 소년이었다. 두 번째 소년은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천장의 등으로 올라가 숨고, 이어서 들어온 소녀는 양탄자 아래 숨는다. 분홍색 개는 거울 뒤에 숨고, 한 무리의 새 떼는 커튼 뒤에 숨는다. 사자의 방에 들어온 아이들과 동물들은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의 주인공이 사자라고 생각하고 숨기에 바쁘다.
그러다 정말 사자가 들어온다. 초록색 상의에 빨간 바지를 입고, 다리를 크게 벌리고, 팔을 휘저으며 걷는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은 사자는 왠지 자기 방이 낯설게 느껴진다. 거울 위치가 조금 달라졌고, 천장의 등은 약간 흔들리는 것 같고, 발아래 양탄자는 살짝 떨린다. 사자는 덜컥 겁이 나 벌벌 떨면서 커다란 이불을 뒤집어서 쓰고 숨는다.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눈까지 가리고 있다.
다시 돌아온 생쥐는 고요한 방안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이불 위에 편안하게 누워 잠이 든다. 사자가 이불속에서 떨고 있는 동안 커튼 뒤의 새들은 이리저리 날며 깃털을 떨어뜨리고, 침대 아래 소년은 새의 깃털을 양탄자 아래 소녀에게 건넨다. 거울 뒤로 날아온 새 한 마리는 개의 코 위에 앉아 있다. 거미는 이불 속에 들어가 사자의 등을 기어 다닌다. 두려움의 주체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상상에서 비롯된다. 사자의 방에 들어간 아이들과 동물들은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사자로 잘못 생각해 두려워했고, 사자는 자신의 방에서 알 수 없는 존재의 기운을 느껴 두려워했다. 사자의 방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생쥐만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두려움은 모르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마음이 지어낸 상상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곧 이 방으로 늑대가 들어올 거야
그림책 속 이야기처럼 상상이 키워낸 두려움 때문에 밤새 떨었던 적이 있다. 친구와 둘이서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펜션에서 하룻밤을 지냈던 날이었다. 그날의 두려움은 펜션으로 향하는 좁고 외진 숲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비포장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펜션의 정원 앞엔 널따란 호수가 쫙 펼쳐져 있었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는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캐노피 텐트와 해먹,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의 평범한 인상을 지닌 주인 남자가 우리를 예약한 이층 방으로 안내했다. 초록으로 뒤덮인 여름 산과 멀리 왼쪽 끝까지 펼쳐진 호수가 빚어내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그 넓은 펜션에 사람이라곤 주인 남자 혼자뿐이었다. “오늘 다른 손님은 없나요?” 물었더니 오늘 손님은 우리뿐이라고 했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친구와 난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한 두려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깊어지자 정원의 흐릿한 불빛 너머 호수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우린 현관문과 방문, 창문이 잠겼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창문 밖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댔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졸아들었다. 열두 시쯤 아래층에서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 소리도 났다. “한밤중에 무슨 트럭이 왔을까? 누가 올라오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에 떨며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괴괴한 바람 소리만이 더 요란해졌다. 친구가 먼저 잠이 들자, 난 혼자 깨어있다는 사실에 무서움이 극에 달했다. 몸이 오그라들고, 온갖 무섭고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 동화 미야자와 겐지의《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떠올랐다. 사냥하러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은 두 신사는 ‘서양 요리점’ 간판의 식당을 발견한다. 그 식당은 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주문이 쓰여 있다. 무기를 내려놓을 것, 뾰족한 물건을 내려놓을 것, 얼굴에 우유 크림을 바를 것. 마지막엔 귀 뒤에 식초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소금을 온몸에 뿌리라는 주문이다. 이 모든 주문이 누군가 자신들을 먹으려는 준비과정이라는 걸 깨닫고, 두 사람이 두려움에 떨다 숲을 빠져나온다는 이야기다.
깊은 산중에 아름답게 꾸며놓은 이 펜션이 마치 동화 속 ‘주문이 많은 요리점’같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보았던 고립된 펜션에서의 끔찍한 사건들도 떠올랐다. 모든 생각이 두려움이 만든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와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 같았다. 밤새 두려움에 떨며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 아래층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앞산의 초록은 더 짙어졌고, 산을 품은 초록빛 호수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우린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두려움에 빠져 밤새 떨었던 걸 떠올리며 어이없이 웃었다.
그림책에서 사자 방에 들어간 아이들과 동물들은 사자가 자신을 해칠 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친구와 내가 외진 펜션에서 느꼈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들어와 우릴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다치거나 사라질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우리를 삼키고 있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그 상황이 지나갔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생각하거나,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며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고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두려움에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림책 속 아이들과 동물들은 사자를 두려워하면서도 사자 방에 들어갔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낸 결과이다. 처음엔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여기저기 숨어 두려움에 떨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 사자를 몰아내고 편안해졌다. 모르는 존재는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책 속 이야기는 호기심과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에 직면할 때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