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행복한 청소부》는 독일 작가 모니카 페트가 글을 쓰고 안토니 보라틴스키가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그림책이 글보다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책은 글이 중심이다. 겉표지 그림엔 파란 청소복에 파란 모자를 쓴 청소부가 파란 사다리와 파란 솔을 들고 있다. 꿈, 희망, 성장을 상징하는 온통 파랑이다. 생글생글 웃는 동그란 눈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의 어깨 위엔 날개가 달린 빨간 말 한 마리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는 흰색인데 빨간색이라서 그 의미가 궁금해진다. 면지 그림 역시 파란 옷의 청소부가 커다란 책과 첼로 앞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림책 속 청소부는 음악가와 작가들의 거리인 ‘글루크 거리’에서 표지판 닦는 일을 한다. 그는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라고 할 만큼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을 사랑”한다. 그런 그에게 삶을 바꾸게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파란 사다리 옆에 멈춰 선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듣고, 자신이 날마다 닦고 있는 표지판 이름의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청소부는 표지판 이름의 주인공들에 관해 공부를 시작한다. 작곡가들 이름을 써서 벽에 붙여 놓고, 신문을 읽으며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 정보를 모은다. 공연 날짜가 되면 좋은 양복을 꺼내 입고 음악회에도 간다. 청소부가 음악을 듣고, 눈에 보이는 듯 소리를 묘사하는 장면은 그가 음악과 하나가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음악 소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어. 조심조심 커지다가, 둥글둥글 맞물리다, 산산이 흩어지고, 다시 만나 서로 녹아들고, 바르르 떨며, 움츠러들고, 마지막으로 갑자기 우뚝 솟아오르고는, 스르르 잦아들었어.”
크리스마스가 되자 그는 자신에게 레코드 플레이어를 선물한다. 밤마다 음악을 들으며 오래전에 죽은 음악가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낮엔 거리의 표지판을 닦으며 머릿속에 간직한 가락을 나지막이 휘파람으로 분다. 음악가들에 대해 자신이 생기자 괴테- 그릴파르처 – 만 - 바흐만 등 작가들 이름을 적어 벽에 붙여 놓고, 작가들이 쓴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다.
“아하!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음악가들이 음을 대하듯, 곡예사가 공과 고리를, 마술사가 수건과 카트를 대하듯, 작가들은 글을 대했던 거야.”
청소부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 음악가가 음을 대하듯, 작가가 글을 대하듯 표지판을 닦는 그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림 속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책갈피에선 ‘빨간 말’이 날아오른다. ‘빨간 말’은 책 속에 담긴 지식이나 지혜가 청소부에게 깨달음으로 스며듦을 의미한다. 날개 달린 말이 빨간색인 까닭은 앎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기 위함인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었을 때 청소부는 일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한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강연을 듣기 시작하고, 청소부가 텔레비전에 나오면서 유명해지자 몇 군데 대학에선 그에게 강의를 요청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는 청소부로 남는다.
청소부의 음악과 문학 공부는 오로지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다. 거리의 표지판 속 인물과 그들 작품에 대해 알게 되면서 표지판 닦는 일은 그에게 더 숭고한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태도에서 자기 일에 대한 사랑과 앎에서 오는 기쁨을 배울 수 있다. 번듯해 보이는 대학 교수 일을 거절하는 장면에선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힘이 느껴진다. 이야기 속‘날개 달린 빨간 말’은 앎의 기쁨인 동시에 청소부의 내적 힘과 자유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청소부는 사람들이 보내준 편지와 엽서가 흩날리는 가운데 날개 달린 빨간 말을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무슨 일이든 마음을 다해 노력하면 그 속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되고, 깨달음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나 보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으며 얼마 전에 읽었던 니꼴라이 고골의 <외투>가 떠올랐다. 외투의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와 청소부의 삶에서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관청의 9급 관리로 청소부처럼 자기 일을 사랑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가 서류를 정서하며 보인 열정은 5급 직책을 하사할 만했다. 길을 걸을 땐 눈길 닿은 곳마다 자신의 필체로 쓰인 글씨가 어른거렸고, 집에까지 서류를 가져와 정서할 만큼 그는 자기 일에 몰두하며 즐거움을 느꼈다. 성실함에 대한 보상으로 정서 작업보다 중요한 직책이 맡겨지기도 했지만, 그는 새 업무에 부담을 느끼고는 다시 정서하는 일로 돌아갔다.
그런 그에게 헌 외투가 너무 낡아 수선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새 외투’ 마련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제가 생긴다. 그는 새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극도의 내핍생활에 들어간다. 새 외투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지만, 그는 새 외투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이 더 완전한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것처럼 느꼈다. 새 외투가 생기면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삶이 바뀌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새 외투가 생긴 날은 그에게 ‘생애 최고의 축제일’이 된다. 그는 집에 돌아와 식사 후에 늘 하던 정서 일을 하지 않은 채 파티에 갈 시간을 기다리며 빈둥거린다. 외투를 잃어버린 다음 날은 외투 찾는 일에 매달리다 생전 처음 결근까지 한다.
그에게 간절했던, 고립된 삶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새 외투’는 겨우 하루 만에 강도를 당해 잃고 만다. 경찰 서장과 고위층 인사를 찾아다니며 외투를 찾으려는 노력은 오히려 병을 불러와 목숨까지 잃게 한다. 그는 새 외투를 잃으면서 이전의 삶도, 꿈꿔왔던 삶도 함께 잃어버린다. 물론 사건을 악화시킨 배경엔 위선적이고 부패한 외부세계의 힘이 작용했지만,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새 외투는 결국 그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청소부에게 삶의 변화를 가져왔던 음악과 문학 공부는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새 외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새 외투로 인해 자기 삶을 잃어버렸다면, 청소부의 공부는 자신의 삶에 더 큰 즐거움을 가져와 충만한 삶을 살게 했다.
청소부에게 ‘대학 교수’ 직은 사회 속에서 지위와 명예를 높여주는 또 다른 의미의 ‘외투’라 볼 수 있다. 고골의 <외투>에서 고위층 인사가 장관직을 얻고, 본래의 인간성을 잃게 만든 사회 시스템이 부여한 허위의식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청소부는 대학 강연을 거절함으로써 자기가 사랑하는 일과 배움의 즐거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앎의 기쁨을 지켜냈다. 청소부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일을 선택했다. 남들의 시선이나 권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자기 삶을 살며 행복을 찾아갔다. 누구나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삶이기에 더 아름다운 삶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