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좋다

- 나무가 주는 선물은 끝이 없다 -

by 혜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고마운 계절이다.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유월이면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던 그림책이 있다. 마르크 시몽이 그림을 그리고 재니스 메이 우드리가 글을 쓴 《나무는 좋다》이다. 1956년에 발간되었으니 쉰다섯 살이나 먹었지만, 언제 읽어도 감동이 밀려오는 책이다. “나무는 좋다.” 소리 내어 읽고 표지 그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초록 잎이 한창인 나뭇가지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 기둥 아래엔 개 한 마리가 목을 한껏 빼고 고양이를 올려다본다. 커다란 나무 앞쪽엔 여자아이가 작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아이들은 표지만 보고도 나무의 좋은 점과 나무와 관련된 각자의 경험을 무수히 쏟아냈었다.

이 그림책은 채색 그림과 단순한 스케치와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번갈아 나온다. 첫 쪽을 펼치면 “와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커다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초록 숲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엔 한 소년이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다음 쪽은 강가의 버드나무와 낚시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그리다 만 듯한 스케치와 무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어지는 그림은 파란 하늘에 쨍하니 햇살이 퍼지고, 그 아래로 다시 푸른 숲이 펼쳐진다. “나무는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한다.”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지는 풍경이다. 작가는 채색과 흑백 그림을 번갈아 배치해 나무와 숲이 주는 경이로움을 더 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무가 주는 좋은 점들이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나무는 잎이 있어서 좋고, 줄기와 가지가 있어서 좋다. 고양이는 나무에 올라 개를 피하고, 새는 둥지를 틀고, 아이들은 떨어진 잔가지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린다. 나무는 그네를 매달 수 있어서 좋고, 꽃바구니를 걸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나무 밑엔 그늘이 있어 소들이 쉬고, 사람들은 소풍을 즐긴다. 집 가까이 있는 나무는 집을 시원하게 해 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지붕도 지켜준다. 노랗고 빨갛게 타오르는 가을 나무 아래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선 아이들이 뒹굴며 뛰어논다. 낙엽으로 집을 짓고, 낙엽을 긁어모아 모닥불을 피운다. 아름드리나무의 가지 위에 앉아 먼 곳을 둘러보고, 생각에 잠기고, 줄을 매달아 그네를 타고 논다. 나무가 주는 선물이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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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과 고목 위에서 아이들이 매달려 노는 풍경은 내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학교와 아이들 모습을 닮았다. 학교 뒤엔 숲이 있고, 운동장과 교사 주변은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숲으로 달려갔다. 숲 속에 아지트를 짓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노느라 통학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다. 숲 속 산책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빛깔의 꽃과 향기, 열매를 선사했다. 은행나무 아래 샛노란 은행잎 융단이 깔리는 가을이면 아이들은 은행잎을 날리며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가을을 잡으러 뛰어다녔다.

이 책은 나무와 한 몸이 되어 놀았던 어린 시절로 날 데려가곤 했다. 어릴 적 집 앞엔 소나무 몇 그루가 들판을 향해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는지 거친 소나무 껍질이 매끈매끈해질 정도였다. 잔가지 하나 없는 기둥을 어떻게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갈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높은 나무 가지에 앉아 멀리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곤 했다. 나무 위에서 들판 너머, 산 너머엔 어떤 세상이 있을지 궁금해하며 언젠가 그곳에 가볼 수 있는 날을 꿈 꾸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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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게 집 주변의 낮은 산들은 보물로 가득 찬 놀이터였다. 한 번은 뒷산 소나무 꼭대기에 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새를 집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새 둥지와 아직 날지 못하는 아기 새를 데려와 마당 가 사과나무 가지에 올려놓았다. 저물녘이 되자 어미 새가 날아와 저녁 내 울었다. 어미 새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며 동동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에게 한바탕 꾸중을 듣고, 새 둥지와 아기 새를 숲 속에 가져다 놓고나서야 어미 새 울음소리는 잠잠해졌다. 어릴 적 나무와 숲은 내게 놀이터이자 자연 속 온갖 생명을 만나게 해 주고, 꿈을 키워준 곳이었다.


나무는 심을 수 있어서 좋다. 커다랗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작은 묘목을 넣는다. 그리고 물을 흠뻑 주고, 흙을 덮는다. 삽은 창고에 도로 걸어놓는다. 해가 가고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면서 나무는 조금씩 자란다. 나무를 심은 아이는 “저 나무는 내가 심은 거야.” 하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나무가 심고 싶어 져서 집으로 가서 저희들도 나무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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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이들이 나무를 심는 장면으로 끝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곧 생명과 자연이 주는 선물을 순환하게 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생태수업으로 나무 공부를 하기 전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은 학교 주변의 자기 나무를 찾아갔다. 낡은 이름표를 새로 만들어 달아 주고, 나무 밑동 둘레에 거름을 뿌려주었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며 친구가 됐다. 학교 주변 나무들과 뒷산은 아이들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어주었다. 어릴 적 내가 나무와 숲에서 놀던 모습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을 닮아간다. 자연의 순수함과 생명력을 배운다. 그림책 《나무는 좋다》는 나무의 좋은 점을 들려주면서, 자연과 사람, 뭇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아이들도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해지고, 나무를 통해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내가 가장 행복감을 느낄 때도 숲길을 걸을 때다. 바람에 실려 오는 숲 향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노라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평온해진다. 나무가 주는 무한한 선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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