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
제롬 뤼예의 그림책 ≪커다란 포옹≫은 부모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족의 모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랑스 작가인 제롬 뤼예는 주로 어린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써왔다. ≪커다란 포옹≫은 선명한 색감의 크고 작은 원이 만들어 내는 단순한 그림과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졌다.
표지 그림은 노랑, 빨강, 파랑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원이 가운데 주황색의 작은 원을 둘러싸고 있다. 면지 왼쪽 위에는 주황색 작은 원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이다. 첫 장면의 커다란 노랑과 빨강은 ‘나’의 아빠와 엄마이다. 주황은 “우린 셋이라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주황, 빨강, 노랑으로 이루어진 동심원에서 가장 바깥의 노랑 아빠가 빨강 엄마와 주황인 ‘나’를 안아 주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더 이상 예전처럼 서로 사랑하지 않는대요. 아빠와 엄마는 이제 함께 살지 않아요. 나는 둘로 갈라진 느낌이에요. 하지만 조금씩 나는 익숙해졌어요.”
가족의 상황과 분위기, 감정을 글자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헤어진 상황이나 아이의 아프고 슬픈 마음은 회색이다. 엄마, 아빠 옆에서 반달 모양으로 나뉘어 있던 주황은 ‘익숙해졌어요.’에서 원래의 동그란 모습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또 다른 아빠’를 소개해 준다. 또 다른 아빠는 파란색의 커다란 원이다. 파란 아빠 옆에는 작은 연두색 원이 있다. 또 다른 아빠가 데리고 온 여자 아이다. ‘나’에게 또 다른 아빠와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모두가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커다란 빨강 원 안엔 아주 작은 보라색 원이 생겼다. 엄마 뱃속에 생긴 남동생이다. 주황은 이제 아빠가 둘이다. 여동생은 “말도 안 돼. 아빠는 한 명이야.”라고 하지만 주황인 ‘나’는 둘 다 사실이라고 한다. 아빠는 한 명일 수도 있고, 두 명일 수도 있다고.
“나는 나의 두 번째 아빠가 우리를 팔로 꼭 안아 주는 게 정말 좋아요!”
파랑의 커다란 원이 빨강과 주황, 연두, 보라색 원을 감싸고 있다. 주황은 두 번째 아빠의 사랑 안에서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다양한 색깔의 원들이 양쪽 페이지를 꽉 채우며 겹쳐 있다. 갖가지 색깔의 원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가족 수업을 하며 안타까웠던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과 역할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개하는 수업이었다. 부모가 이혼해 엄마랑 사는 아이의 스케치북엔 아빠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림 속 아빠와 아이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놀이공원에도 간다. 아빠는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준다. 아빠의 빈자리를 최고로 다정하고, 재밌고, 멋진 아빠로 그리고 있는 아이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아려왔었다.
가족 주제 수업을 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반 아이 중 부모가 이혼했거나, 재혼 가정 아이, 한 부모 또는 할머니와 사는 아이가 있을 땐 수업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주변에 있는 다양한 가족 모습을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바라보게 하는데 여러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는 그림책은 좋은 매체가 된다. 제롬 뤼예의 그림책 ≪커다란 포옹≫도 가족 수업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 목록에 넣어두면 좋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주인공인 ‘나’의 모습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 속 이혼이나 재혼 가정 아이들이 겪는 아픔이나 상처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림책 속 ‘나’는 아빠와 엄마가 헤어졌을 때 둘로 나뉘는 아픔을 느끼지만, 바로 익숙해진다. 두 번째 아빠와 동생들이 생긴 새로운 가족 안에서도 행복한 모습이다. 사회가 변화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하면서 학교에서도 가족의 다양성에 대해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혼이나 재혼 가정 아이들이 겪는 충격과 혼란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그림책에선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 가족이 사랑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는 작가가 사는 프랑스의 가족 제도와 문화 영향이 큰 것 같다. “EBS 다큐프라임 ‘결혼의 진화’ 3부 새로운 가족이 온다(2015)”에선 프랑스 결혼제도를 다룬다. 프랑스에선 68 혁명 이후 사회변혁 운동이 확산하면서 국가의 승인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제도에 대한 거부 움직임으로 팍스(PACS)나 동거 형태 가족이 증가한다. 팍스(PACS)는 이성 또는 동성 간 동거를 법적으로 공인하고, 재산권, 사회보장 등 법적 부부에 따르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결혼제도 변화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혼 가족 자녀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혼이나 재혼, 비혼 가정의 모습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지난 4월엔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정책의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으며,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 조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범위를 확대해 비혼, 동거 연인, 위탁 가족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체계로 바꿀 계획이라고 했다. 다양한 가족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어떤 형태의 가족에서든 아이들이 사랑받으며 더 당당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뉴스에 따르면 건강가정기본법이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법"이라 여기는 일부 종교계의 반발로 논의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책 표지 그림에서 주황인 ‘나’를 가장 가까이서 안고 있는 사람은 노랑 아빠와 파랑 아빠이다. 함께 사는 아빠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첫 번째 아빠와도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책 속 ‘나’는 아빠가 둘이어도 새로운 가족관계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으며 행복하다. 이 그림책을 덮으며 가족 수업에서 엄마나 아빠가 없어도, 아니면 둘이어도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가족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