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부르는 맛

- 건강한 중독, 건강한 삶 -

by 혜아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 유난히 튀어나온 주황색 부리를 가진 갈매기다. 뭔가에 홀린 듯한 눈동자, 탐욕스럽게 뻗어 나온 부리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과자를 깨물고 있는 입 주변엔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다. 전민걸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바삭바삭 갈매기》의 표지 그림이다.



큰 바위섬에 사는 주인공 갈매기는 따뜻한 바람이 불면 높이 날아올라 물고기 떼를 찾고, 배가 부르면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었다. 어느 날 바위섬으로 다가온 큰 배 위의 아이들이 무언가를 던졌다. 호기심에 쪼아본 그것은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깨물면 ‘바삭! 바삭!’ 소리가 났다. 갈매기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맛이었다.

“훌쩍 날아오른 뒤에 바다 한쪽이 쿵! 무너져 내린 거대한 구멍 속으로 바닷물과 함께 빨려 드는 느낌이었어.”

입을 벌린 채 바다의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갈매기 모습에서 그 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보여준다.


그 맛에 사로잡힌 갈매기들은 ‘바삭바삭’을 먹기 위해 큰 배에 바짝 붙어서 날아다닌다. 과자를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싸우듯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 같다. 큰 배에서 더는 바삭바삭이 나오지 않자 갈매기들은 비슷한 맛을 찾아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날아든다. 부둣가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은 생선 대가리를 던져주었을 땐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바삭바삭한 그걸 달라고” 외치며 화까지 낸다. 뭔가에 중독되었다 끊을 때 나타나는 금단현상이다.

달 밝은 어느 밤, 주인공 갈매기는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를 따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 깊숙이 들어간다. 살찐 개의 도움으로 구멍가게에서 바삭바삭 봉지를 찾는다. 행복감에 젖어 바삭바삭 봉지를 뜯으려는 순간 주변에서 들려오는 “바삭! 바삭!” 소리를 듣는다. 푸른 달빛 아래 털이 빠진 흉측한 모습의 갈매기들이 오물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바삭바삭을 먹고 있다. 그때 “야아아아옹!” 울음소리와 함께 검은 고양이가 뛰어든다. 갈매기는 날아오르려 해도 잘 날 수가 없다. 숨이 가쁘고, 목이 마르고, 쿵꽝쿵꽝 심장이 뛴다.

이야기 속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재미로 던져준 과자의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어 본래 삶의 모습을 잃어갔다. 좋아했던 물고기 대신 뇌 폭풍을 일으키는 마법의 맛에 빠져들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에 중독되어 원래 삶의 공간을 떠나고, 병들고, 결국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주인공 갈매기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먼바다로 날아간다. 중독에서 벗어나 회복의 희망을 보여줘 다행이다.


중독(addiction)은 집착, 의존, 몰두, 과몰입, 빠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술이나 약물, 음식물을 지나치게 복용하여 그것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림책 속 갈매기처럼 그것들의 독성으로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갈매기의 ‘바삭바삭’ 중독은 현대인들의 음식중독에 대한 비유로 읽힌다. EBS 다큐프라임 <맛의 배신>(2019)에서 현대인들은 가공식품이나 인공 합성 향을 과도하게 섭취해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간 음식를 본능적으로 골라 먹는 ‘영양 지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림책 속 갈매기가 ‘바삭바삭’의 맛과 향에 중독되어 원래 자신의 먹이었던 물고기 맛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다큐멘터리 <중독>(2021)에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 제럴드 제이는 “모든 사람의 95%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알코올, 약물, 도박, 게임, 인터넷 중독부터 일 중독, 쇼핑중독, 성형중독, 음식중독 등 중독의 목록이 끝이 없다. 중독은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건강 상실, 꿈이나 비전 상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삶의 균형이 깨지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때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술, 약물, 도박 등 잘못된 것들로 채울 때 중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독은 절망적 상황을 잊기 위해,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아니면 쾌락을 위해 무언가에 의존해 결핍을 채우려 하는 욕망의 결과이다.

요즘 내 몸을 망가뜨리고, 일상을 깨뜨리는 ‘바삭바삭’은 넷플릭스 드라마이다. 한 번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다음 화’ 버튼을 누르며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운동, 책 읽기, 글쓰기, 집안일 모두가 '멈춤' 상태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즐길 땐 삶에 활력소가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절을 못 한다. 매혹적인 것들이 품고 있는 강력한 독성에 나약한 의지가 더해지면 중독은 더 깊어진다. 그나마 중독의 기미가 느껴질 때마다 ‘바삭바삭’을 차단하려 애쓰고 있어 다행이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중독 현상이 심해진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관계 단절과 고립된 시간이 늘면서 미디어나 인터넷 중독 현상에 대한 보고가 부쩍 늘고 있다. 불안과 결핍을 독으로 채우기보다 삶에 활력을 주는 ‘건강한 중독’의 대상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내 주변엔 공부 중독, 운동 중독, 책 중독, 글쓰기 중독, 정원 가꾸기 중독 등 건강한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자연, 책, 운동, 여행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성취와 행복과 연결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요즘 내가 빠져있는 ‘건강한 중독’은 화초 가꾸기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코니에 나가 꽃들을 살핀다. 전엔 화분을 사면 물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병이 나거나 죽으면 버리기 일쑤였다. 얼마 전엔 제대로 키우고 싶어 화초 가꾸는데 필요한 것들을 샀다. 화초 가꾸기 책, 식물 영양제, 분갈이에 필요한 각종 흙과 도구, 진딧물 제거제까지 샀다. 정원 가꾸기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화초를 돌보거나 아름다운 정원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화초 가꾸기는 나의 '바삭바삭'인 넷플릭스 드라마 중독의 해독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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