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 던바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안녕, 펭귄?》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통이 안 될 때의 답답한 심정을 실감 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안녕, 펭귄?” 화려한 그림 글자의 제목 아래 표지를 꽉 채운 펭귄 얼굴이 있다. 기다랗고 빨간 부리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겉표지만 보면 영락없이 유아용 그림책이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인공 벤의 마음에 공감이 된다. 벤이 답답해하며 펄쩍펄쩍 뛰다가 “뭐라고 말 좀 해봐!”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선 남편의 침묵 때문에 숨이 막히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펭귄을 선물로 받는 벤은 함께 놀고 싶어서 펭귄에게 말을 걸고, 웃게 하려고 온갖 행동을 한다. 간지럼을 태우고, 우스운 표정을 짓고, 물구나무를 서지만 펭귄은 웃지 않는다. 배를 콕콕 찌르고, 메롱 약을 올려봐도 소용없다. 묵묵부답 반응이 없는 펭귄을 벤은 지나가던 사자에게 먹으라고 주지만 사자는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답답해진 벤이 펄쩍펄쩍 뛰다가 “뭐라고 말 좀 해봐!” 소리치자 사자가 시끄럽다며 벤을 꿀꺽 삼켜버린다. 웃지도 않고, 대답도 없던 펭귄이 사자의 코를 아주 세게 꽉 문다. “어이쿠” 사자가 소리치는 바람에 벤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 펭귄이 벤에게 말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기 생각과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그림’으로 토해낸다.
누군가와 말이 안 통해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는 의외로 가까운 관계에서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당연히 서로 가장 잘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소통의 부재와 단절이 깊다. 한집에 살면서도 최소한의 대화만 하거나, 몇 달씩 입을 닫고 살기도 한다. 우리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었다. 실제로 어느 노부부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십오 년째 말을 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 그 노부부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어 함께 사는 거라 짐작된다.
벤과 펭귄이 소통이 안 되었던 것은 서로 표현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벤이 펭귄에게 말을 걸고, 온갖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놀릴 때 펭귄은 ‘침묵의 언어’로 대신했다. 마지막에 펭귄이 그림으로 쏟아낸 모든 말들은 어쩌면 벤이 펭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듣지 못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벤과 펭귄이 서로의 마음을 알고, 친구가 되는 데는 ‘사자’라는 존재와 사건이 있었다. 벤이 사자에게 먹히는 사건이 있었기에 벤은 펭귄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펭귄의 말, 침묵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오해로 단절된 관계의 소통과 전환을 위해선 그림책 속 ‘사자’와 같은 촉진자나 사건이 필요하다.
지난겨울 남편과 거의 두 달 가까이 말을 않고 지냈었다. 사소한 다툼 뒤 서로에게 화를 내며 입을 닫았다. 대화 없이 속만 끓이며 지내는 시간이 힘들어 말을 걸어도 보았지만, 남편은 못 들은 척했다. 난 벤처럼 궁금한 것을 묻고, 그날 있었던 일을 늘어놓고, 음식을 차려놓고 식탁 앞에서 말을 걸어도 봤지만, 남편은 펭귄처럼 침묵을 고집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묵묵부답인 남편 반응에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감정이 폭발했었다.
관계가 위태로워진 그때 우리 관계에 ‘사자’가 되어준 사건은 두 사람의 ‘생일’이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두 사람의 생일을 계기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쏟아내며 조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내게 화나고 서운했던 순간의 감정들을 침묵으로 표현했고, 나 역시 내 말이 메아리로 되돌아올 때마다 담을 쌓고 있었다.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상대방의 마음이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깊은 골이 파여 있던 우린 관계 회복을 위해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부부 상담을 통해 소통이 안 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소통의 방식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감정을 알 거란 착각은 오해를 불러왔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며 했던 말들은 방어나 비난의 말들을 되풀이하게 했음을 알았다.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말들이 침묵 속에서 더 높고 견고한 담을 쌓게 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존중하는 말,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말 한마디면 눈 녹듯 사라질 응어리를 자존심 싸움으로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른 표현방식을 선택한다. 상대방의 표현방식이나 말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고, 갈등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는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어린아이들이 처음 친구를 사귈 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부모나 주변의 어른이 관계 형성의 촉진자가 되어줄 수 있다. 세대 차이로 인한 부모와 자녀, 살아온 환경이나 기질의 차이로 소통이 어려운 부부, 어떤 관계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의 전환을 위한 ‘사자’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