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칠 년을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고, 깊은 슬픔에 빠졌을 때도 남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가가 벌게지면서도 절대로 울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입을 앙다물고 꾹꾹 참아냈다. 당신이 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왜 울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남편은 겉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 속으로 운다고 했다. 중학교 입학식 날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져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다고 했다.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 울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처음엔 억지로 참았던 울음이 수십 년 세월이 지나면서 아예 우는 법을 잊어버리게 한 것이다.
남편은 에니어그램 심리검사를 하면 8번 지도자형으로 나온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유형의 특징은 자기 신념과 주장이 강하다. 매사에 단호하며 자신감 넘치고, 적극적이다.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심리상태가 건강하지 못할 땐 공격적, 강압적, 자기중심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에 겉으로 드러난 강력하고 지배하는 성향의 이면에는 여린 마음이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강한 행동은 때론 내면의 여린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힘이 넘치고 적극적인 이 유형을 동물에 빗대어 보면 강력한 힘과 권력, 용맹의 상징인 사자를 떠올리게 한다.
허아성의 그림책 《사자도 가끔은》을 읽으며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의 내면에도 그림책 속 사자의 모습이 있는데 꾹꾹 눌러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속 사자처럼 슬프거나 억울하면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눈물도 펑펑 쏟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안에서만 끓어오르다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침울하고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어느 땐 자신의 슬픔이나 아픔을 화로 바꾸어 드러낸다. 약한 내면을 드러내기 싫어 슬픔 대신 분노를 선택한다.
이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사자는 용맹하고 멋진 사자와는 거리가 멀다. 축 처진 어깨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표정이다. 연노랑 빛깔의 사자 몸은 기운을 잃어 약해진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멋있는 사자도 가끔은 울상이 될 때가 있어.”
그림책 속 첫 장면 역시 힘없이 혼자 앉아있는 사자의 뒷모습이다. 옆에 있는 작은 사자가 울상이 된 사자의 마음을 읽어준다. 아무리 멋있는 사자도 가끔은 울상이 될 때가 있다고. 그럴 때는 원래 아무 말도 하기 싫은 거니까 가만히 둬야 한다고. 상처 받은 사자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려 주라고 한다.
“있잖아,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내가 어제 길을 가는데 말이지… 나를 보고 웃는 거 있지. 물론 대부분의 사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알아주지도 않더라. 그래서 나는 조금 힘들기도 하고…”
울상의 사자가 쏟아낸 말들이 그림책 두 쪽의 배경을 꽉 채우고 있다. 사자는 혼자서 감정을 삭이며 눌러놓았던 말들을 폭풍처럼 쏟아낸다. 작은 사자는 ‘그저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쳐’ 준다. 커다란 사자의 눈에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폭발해 폭포처럼 뿜어져 나온다. 엎드려 엉엉 울고 있는 사자를 작은 사자가 쓰다듬어 준다. 곁에서 마음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작은 사자의 공감과 위로가 커다란 사자의 눈물샘을 터트린 것이다.
이 그림책에선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물 흘릴 때 쓰다듬어 주고,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 커다란 사자처럼 ‘눈물을 닦고 일어서 뚜벅뚜벅 걷고, 번개처럼 달리고, 벼락처럼 소리치며 다시 멋진 사자가 될 거’라고 한다. 그림의 마지막 장면은 연노랑 사자의 몸 색깔이 노을빛에 물들어 분홍빛으로 바뀌어있다. 사자 본래의 에너지를 찾아 멋진 사자 모습으로 돌아왔음을 말해준다.
남편은 눈물을 흘리지 못하지만 난 눈물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결혼식장에선 가슴이 뭉클해져서, 장례식장에선 상주의 슬픔이 전이되어 눈물이 나온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감동적인 장면을 보아도, 기쁨에 넘친 순간에도 눈물이 흐른다. 깊은 슬픔에 빠졌을 때, 답답하고 억울할 때면 집이 떠나갈 듯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그렇게 한 바탕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목도 아프고, 기운은 다 빠지지만, 가슴속 뭉쳐있던 슬픔과 화도 함께 빠져나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가 내 감정을 맘껏 쏟아내며 울 수 있는 것은 이런 내 모습을 받아주는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 남편이 기운이 빠져 있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금방 불안해진다. 남편은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당당하고, 에너지 넘치고, 사자처럼 강한 이미지로 자기 삶에 열중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나의 이런 마음이 남편의 눈물샘을 더 막히게 하고, 슬픔이나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그림책 속 사자처럼 자신의 슬픔이나 상처를 맘껏 쏟아낼 수 있도록 작은 사자의 공감과 위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사자도 가끔은》의 사자처럼 겉으로 강해 보이고, 유쾌하고, 활력 넘치는 사람들도 슬픔과 우울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땐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며 감정을 추스를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림책 속 사자처럼 자신의 감정을 꺼낼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때 눈을 마주 보며 들어주고,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자신을 치유하는 데 힘을 얻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곁에 있는 존재의 공감과 위로는 그 치유의 힘에 바퀴를 달아준다. 함께 하는 모든 존재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