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살리는 말

- 사랑과 행복을 부르는 말 -

by 혜아


별이 가득한 하늘, 환한 보름달 아래 가지 잘린 나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작은 가지 위 알록달록한 새 한 마리가 나무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다. 장정인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가지를 자르는 나무》표지 그림이다. 제목을 보니 눈물 흘리고 있는 이 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잘랐나 보다. 무슨 이유로 가지를 자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가지를 자르는 나무1.png


사과 꽃향기가 날리는 봄날이다. 과수원엔 하얀 사과꽃이 가득 피어있다. 밤이 되자 유난히 작은 나무 하나가 꽃이 핀 가지를 뚝뚝 자른다. 어느 날 사과 꽃향기를 따라 새 한 마리가 과수원에 날아든다. 새는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다가 가지가 몇 개 없는 작은 나무를 발견한다.


“작은 나무야, 왜 꽃이 핀 가지를 자르는 거니?”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그럼 넌 열매를 맺을 수 없잖아.”

나무는 말없이 계속 가지를 자른다. 다음 날 새는 작은 나무의 가지 위에 둥지를 튼다. 밤새 슬픈 표정으로 가지를 자르던 작은 나무가 활짝 웃고 있다. 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는 새도, 나무도 즐거운 모습이다.


새는 작은 나무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하늘을 날며 보았던 신기한 세상 이야기 들려준다. 친구가 된 새에게 작은 나무는 가지를 자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어렸을 때 작고 약한 나를 보고 주인이 사과를 맺을 수 없을 거라고 했어. 물도 충분히 주지 않았고, 큰 나무 옆에 있는 나를 잘 돌봐주지 않았어.”

작은 나무는 어차피 사과를 맺지 못할 거라 가지를 자른 거라고 했다. 작은 나무는 주인 말 때문에 스스로 꿈을 꺾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나무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새는 조용히 곁을 지켜주었다.


주인은 작은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크게 자라지 못했다고,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거라 미리 단정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작은 나무가 자신을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학대하게 했다. 작은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꺾듯,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뼈를 부러뜨릴 만큼 깊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준다.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 때문에 아들이 ‘시’의 싹을 꺾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우연히 아들 컴퓨터에서 아들이 시 수업 과제로 쓴 시를 읽게 되었다. ‘엄마’를 ‘해’에 비유해 가까이하면 너무 뜨겁고, 멀리하면 너무 추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주제의 시였다. 너무 직접적이고 날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시라기보다 그저 생각을 늘어놓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시냐? 우리 반 애들이 쓴 시보다 감동이 없다, 평소에 시집 좀 읽지….” 난 아들 마음에 칼금을 그어대는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 후로 아들은 시집엔 손도 안 대는 것 같았다. 나의 무지막지한 말이 막 시를 배우기 시작한 아들을 시에서 영영 멀어지게 하고 만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숲에서 만난 ‘바람’에 대해 썼던 시를 기억한다. 아이다운 생각과 느낌, 상상을 담아 아이의 말로 쓴 생생하고 독특한 표현에 감동했었다. 아들 깊숙한 곳 어딘가에 남아있을 시의 씨앗을 난 부정적인 말과 비난으로 싹도 틔우기 전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이 그림책을 읽고 아들에게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사과했다. 그땐 정말 미안했다고, 엄마 욕심에서 나온 말과 태도가 네가 시와 친해질 기회마저 빼앗고, 아예 멀어지게 한 것 같다고.


과수원에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고, 푸른 잎이 무성한 사과나무엔 어린 사과가 가득 매달렸다. 새에게도 기쁜 일이 생겼다. 둥지에 다섯 개의 알을 낳은 것이다. 작은 나무도 새만큼이나 기뻐했다. 거센 비바람이 부는 날, 작은 나무는 몇 개 안 남은 가지로 새와 둥지 속 알이 떨어지지 않게 꼭 감싸주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란 아침, 달콤한 사과 향기가 퍼지는 과수원은 분홍빛으로 가득하다. 깜짝 놀란 새가 작은 나무를 깨운다.

“작은 나무야, 일어나 봐! 이것 좀 봐!”

“네 가지에 사과가 열렸어.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라고.”

“무슨 소리야, 난 사과를 맺을 수가 없어.”

“여기 한 번 봐봐. 둥지 위를 봐.”

작은 나무가 둥지를 지키기 위해 잘라내지 않은 가지에 빨간 사과가 열린 것이다. 사과가 열린 나뭇가지 위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와, 나도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작은 나무는 큰소리로 외치고, 새도 나무 주변을 날아다니며 함께 기뻐한다. 며칠 뒤 아기 새들이 알을 깨고 나오고, 작은 나무는 엄마 새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준다. 새들은 작은 나무의 사과를 맛있게 먹고, 그 모습에 나무는 행복해한다. 그 뒤로 작은 나무는 다시는 가지를 자르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은 사과를 매달고 있는 사과나무에서 새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해피 엔딩이다.


이야기 속 상처 받는 작은 나무는 새를 만나 위로를 받고, 새에게 남은 가지를 내어주고, 새와 둥지 속 알들을 지켜주었다. 새 둥지 덕분에 남겨둔 가지에 탐스러운 열매도 맺었다. 작은 나무는 자신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며 기뻐하고, 그 열매를 새에게 나눠주며 행복해했다. 열매도 맺지 못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작은 나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 기쁨을 느꼈다. 새는 나무에게, 나무는 새에게 서로 위로와 사랑을 나누며 존재 의미와 행복을 찾아갔다.


“행복은 깊이 느낄 줄 알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줄 알고, 도전할 줄 알며 남에게 필요한 삶이 될 줄 아는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 스톰 제임슨 - 《최성애 박사와 함께하는 ‘행복일기’》중

그림책 속 작은 나무와 새는 ‘행복은 남에게 필요한 삶이 될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온다.’ 말을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요즘 아들은 판타지 소설 습작에 빠져 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남는 시간은 좋아하는 소설을 읽거나, 자기 소설을 쓰며 보낸다. 얼마 전부터 웹 소설 사이트에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난 아들의 첫 번째 독자가 되었다. 아들이 쓴 소설은 내가 모르는 세계를 다루고 있어 낯선 말들이 많이 나온다. 아들이 창조해낸 세계를 신기해하며 모르는 말은 의미를 물어가며 읽고 있다. 작은 나무를 위로해준 새처럼 아들에게 힘이 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자신감을 느끼게 해 줄 말을 찾아가면서. 작은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새가 함께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젠 아들이 좋아하는 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며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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