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도르레앙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딴생각 중≫을 읽었다. 제목에 이끌려 펼치게 된 책이다. 수업 시간이면 늘 창밖을 보며 딴생각에 빠져있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업 내용을 잘 따라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곳에 가 있곤 했다. 시를 배우다가 '복사꽃'이 나오면 외할머니 집 가는 길 복사꽃 언덕에 올라 있고, '바다'가 나오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를 상상하느라 수업 내용을 놓치곤 했다. 그러다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못해 꾸중을 듣곤 했었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교사가 되었을 땐 멍하니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거나 딴짓하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주의를 환기시키느라 바빴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딴생각에 빠진 아이에게 질문했다가 무안해질 때도 많았다. 그 아이도 어릴 적 나처럼 그림책 속 어떤 장면으로 들어가 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이면 늘 뭔가를 그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종합장 누런 종이에 온갖 캐릭터와 인형, 꽃들이 그려져 있곤 했다. 수업에 참여하자며 종합장을 서랍에 넣게 해도 금방 다시 나와 있곤 했다. 다른 아이들이 말로 자기 얘기를 할 때 그 아이는 그림으로 하고 있었단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림책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파란색 바탕 위 하얀 새들이 날아가고 있다. 새 떼 한가운데 노란 새 한 마리가 함께 날고 있다. 아래쪽엔 한 소년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손에 책을 펴 들고 있지만, 눈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본다.
“그 일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나는 너무너무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주인공 ‘나’에게 그 일이 처음 일어난 곳은 학교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곳인 동시에 온갖 규칙과 규범으로 호기심과 자유로운 상상을 억압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가 ‘너무너무 다른 곳’으로 가고 싶게 하는 장소를 학교로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이야기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하늘색 구름이 떠다니는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창틀과 커튼이 모두 회색이다. 교실 바닥은 회색과 검은색의 마름모형 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메마르고 딱딱한 분위기다. 소년이 입은 옷도 회색 스웨터에 검은 바지, 검은 신발이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대부분이 무채색인 회색과 흰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채색은 소년이 노란 새가 되어 떠났던 상상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을 표현할 때만 등장한다. 규범과 사회통제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는 모두 무채색으로 그리고 있다.
≪색의 유혹≫에서 에바 헬러는 “회색은 모호하고 특성이 없는 색’, ‘삶의 기쁨을 파괴하는 비참한 색”이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회색과 가장 대립하는 반대색은 노랑과 주황, 즉 빛과 삶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색”이라 한다. 이 그림책에서 마리 도를레앙이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새를 노란색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후 주인공 모습을 주황색 새로 표현한 것도 이러한 색의 상징과 심리를 반영한 것이리라.
창문을 바라보던 소년은 끝내 참지 못하고 노란 새가 되어 창밖으로 날아간다. 노란 새가 되어 분홍색 말들을 따라가고, 멋진 사슴뿔 위에도 앉고, 바닷속에서 아주 큰 물고기들과 달리기도 하고, 희귀한 돌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분홍색 말, 붉은 사슴뿔, 푸른 바다, 파랗고 붉은 물고기, 주황색 돌들이 있는 세계는 신비롭고 기쁨이 넘치는 세계이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달리며 경쟁하고, 사슴뿔 위에 앉아 성취의 기쁨을 맛보고, 엄청난 도전을 하고,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현실 세계를 닮았다.
소년의 딴생각은 결국 부모님을 학교로 불려 오게 한다. 소년이 엄마 손에 이끌려 선생님에게 갈 때, 아빠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억지로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그런데 아빠가 끌고 가는 것은 아이가 빠져나간 빈 스웨터의 소매이다. 아이는 옷도 신발도 벗어놓고 노란 새가 되어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를 어른들 생각대로 끌고 갈수록 아이는 반대로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년은 부모의 바람대로 학교생활을 하며 피아노를 치기도 하지만 자주 노란 새가 되어 떠난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소년이 회색 옷을 입고,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간다. 아직 온전한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통념 세계 속에 머물러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무표정한 회색 사람들 속에 있는 주인공 ‘나’의 표정이 밝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새'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그림자는 그 사람의 무의식이자 드러나지 않은 내면세계를 의미한다. 겉으론 다른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꿈을 좇아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나는 자주 멀리 떠나곤 했다”
노란 새의 날개가 책 두 쪽을 꽉 채우고 있다. 강렬한 노란색과 크기에 압도될 정도이다. 어른이 된 소년의 내면이 상상 세계에서 경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나'는 외투를 벗으며 어깨에 붙어있는 ‘노란 깃털’ 하나를 발견한다. 노란 깃털은 펜이 되어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설명해 주게 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었다. 비로소 나의 멋진 능력을 발견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딴생각 속으로 여행을 떠났던 아이의 상상력이 자신만의 능력이 되어 작가의 삶을 살게 한 것이다. 주인공 ‘나’는 글을 통해 상상 세계의 경험을 현실 삶 속으로 가져왔다. 사람들이 보았다는 높이 날고 있는 ‘나’는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어 있다. 노란 새가 호기심과 상상의 세계를 좇았다면, 주황 새는 상상과 현실 세계를 연결해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주황 새는 더는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성숙한 자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딴생각에 빠져 있다.’라는 말은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땐 부정적 의미를 띠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주변 상황도 잊을 만큼 어딘 가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내가 빠져 있던 딴생각은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시에 빠져 살게 했다. 길을 걸을 때, 출퇴근 길 버스 안에서, 심지어 수업 시간 잠깐 창밖으로 눈을 돌렸을 때도 시를 떠올리곤 했었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글쓰기를 놓지 않게 하는 것도 어릴 적 딴생각의 힘인 것 같다.
그림책 ≪딴생각 중≫은 사회통제 속 어른들 시선이나 통념이 누군가의 꿈을 억누를 수 있음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을 끝까지 탐색해가면 자신의 꿈을 펼치게 할 노란 깃털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얼마 전에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나빌레라’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칠십이 된 할아버지가 어릴 적 꿈꿨던 발레리나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발레리나가 되어 한번은 날아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은 알츠하이머로 사라져 가는 기억까지 되살려 준다. ‘나빌레라’에서 할아버지 내면에 감춰두었던 꿈은 그림책 속 소년이 딴생각 중 노란 새가 되어 떠나 만났던 세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노란 깃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펜이고, 붓이고, 악기이고, 목소리일 것이다. ‘나빌레라’에서 할아버지의 노란 깃털이 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발레슈즈였다면 나의 노란 깃털은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글을 쓰게 하는 펜이다. 내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