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으면서 만난 부산은 달랐다 -
지난 칠월에 1박 2일 짧은 가족여행으로 해파랑길 1코스 걸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 길, 숲길, 마을 길을 잇는 75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 거리와 비슷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몇 년 전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고 품은 꿈이었다. 코로나19로 정말 꿈으로 끝나고 말진 몰라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언젠가는 도전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전 미리 해파랑길 걸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뛰었다.
해파랑길 의미는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의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고 한다. 1코스 시작점인 해맞이 공원에서 멀리 보이는 해운대 마린시티와 달맞이 언덕은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낮게 떠 있고, 이기대 산책길 옆 바다 쪽으로 뻗은 바위엔 하얀 파도가 부서져 내렸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제대로 된 여행을 못 해선지 하늘도 바다도 멀리 마린시티 풍경도 더 아름답게 보였다.
이기대길 초입은 꽃댕강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기가 시작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기대 길은 오른편엔 바다를, 왼편엔 숲을 끼고 걷는 바닷길이다. 걷는 내내 바닷바람과 숲의 그늘이 땀을 식혀 주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풍경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해맞이 공원에서 ‘동생말’을 거쳐 광안리 해변까지는 7.8km였다. 오랜만에 걷는데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만난 바다와 하늘빛이 빚어내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해변에 앉아 짙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이 풀어져 흐르는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우린 광안리해수욕장 근처에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고 바닷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부산에 올 때마다 유명한 관광지만 잠깐씩 들렀다 갈 땐 만나지 못했던 풍경들을 걸으면서 만났다. 걷는 내내 '부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연달아 감탄을 쏟아냈다. 다른 때 같으면 “힘들어, 힘들어.”하며 뒤처져 따라가며 힘들어했을 텐데 가벼운 걸음으로 제일 앞에서 걸었다. 아들은 운동화 바닥이 얇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발가락에서 불이 나고 있을 텐데 꾹꾹 참으며 걷는 것 같았다. 발가락 물집은 내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는데 그날만은 아니었다.
첫날은 아산에서 부산까지 네 시간 넘게 운전하고 내려온 후라서 조금만 걸으려고 했었다. 광안리해수욕장까지가 목표였는데 걷다 보니 숙소가 있는 센텀시티까지 8km를 더 걸었다. 민락 수변공원을 지나 수영강 변 산책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인공미가 더해졌을 때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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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걷기는 어제저녁 숙소로 향하느라 헤어졌던 수영교 근처 이정표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우린 수영교 쪽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해운대 방향으로 향했다. 대로를 따라 삼십 분 가까이 걸었는데 해운대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짚어 수영강 쪽으로 가서야 해파랑길 이정표를 찾았다. 호텔을 나와 근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 했는데 걷는 내내 아침 먹을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우린 모두 허기진 상태로 걷고 있었다. 겨우 만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더위와 꼬르륵거리는 뱃속을 달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요트 경기장을 지나 영화의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와서야 늦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이열치열 뜨거운 곰탕으로 빈속을 채우고 동백섬으로 향했다.
동백섬 산책길은 울창한 동백나무 숲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산책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 최치원 동상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엔 멋진 자태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동백섬 숲길은 이정표 찾느라 헤매며 힘들었던 마음과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다시 산책로로 내려와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들렀다가 바닷길을 따라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동백섬 바닷길에서 바라보는 해운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져 있었다. 드디어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위 초록 파라솔과 청회색 바다, 하얀 구름이 풀어져 흐르는 파란 하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확 트였다.
"와~ 시원해!" 행복감에 취한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솔숲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제부터 고생한 종아리와 발을 마사지해 주었다. 고생 끝에 만나는 아름다움과 느긋한 쉼이 여행의 묘미란 생각이 들었다. 솔숲 옆 관광 안내소 앞에서 해파랑길 2코스 스탬프도 찍었다. 해파랑길 1코스는 17.8km이지만 우린 이곳저곳 헤매느라 어제, 오늘 30km 가까이 걸었다. 1코스 종점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달맞이 언덕이 만나는 미포이다. 다음에 다시 부산에 올 땐 이곳 미포에서 해파랑길 2코스를 걷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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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파랑길 1코스 :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미포까지(17. 8km)
※ 걸은 날 : 2021.7.18.~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