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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Nov 25. 2021

변산바람꽃길을 걷다

<1>

  변산 여행을 다녀왔다. 변산은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여행지다. 이십사 년 전 삼신할미가 하나뿐인 지금의 아들을 점지해주신 곳이다. 결혼 후 첫 아이를 사산으로 잃은 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가지려 애쓰다 마음을 내려놓고 여행을 다니던 중 변산 여행에서 아이를 갖게 되었다. 차 안에서 아들에게 우리가 가고 있는 변산이 지금 너를 있게 해 준 곳이라 하니 신기해하며 들었다. 언젠가 아들이 결혼해 아이들과 다시 변산에 온다면 제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결혼기념일 이벤트로 준비한 여행이었다. 결혼 후 이십오 년 동안은 늘 남편이 결혼기념일을 준비했다. 여행지를 찾아 숙소 예약부터 일정 짜기, 축하 케이크와 꽃다발 준비까지 남편이 도맡아 했다. 작년부터는 내가 여행지를 찾고 숙소를 예약했다.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작년엔 경주의 대릉원과 불국사, 동리목월문학관, 야경이 아름다운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를 다녀왔었다.


  아주 오래전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경주 일대를 돌았었다. 작년엔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였다. 아이가 자란 세월만큼 경주의 관광지도 화려하고 번잡하게 바뀌어 있었다. 불국사 절 마당은 화려한 연꽃 등이 지붕을 이루고, 법당 주변은 갖가지 빛깔의 국화 화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아한 절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데 너무 화려하게 꾸며놓아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웠었다.     


  이번 여행지를 변산으로 정한 것도 순전히 내가 변산바람꽃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변산에 있는 농협수련원을 숙소로 잡았는데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작은 방 하나에 거실이 전부였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남편은 불평을 쏟아냈다.

  “침대가 없네. 방은 왜 이렇게 작아. 콘도형인데 전자레인지도 없잖아. 요즘 냉장고에 물 한 병 없는 숙소가 어디 있어?”

  남편의 숙소에 대한 불평은 계속 이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난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나도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혼기념일을 즐겁게 보내려고 온 가족 여행인데 불평만 쏟아내니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꾹 참다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그렇게 불평할 거면 왜 왔는데? 그냥 집에 있지?”

  평소 같으면 사실을 말한 건데 뭐가 문제냐며 화를 냈을 남편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편도 모처럼 만의 가족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남편은 수선스러운 목소리로 얼른 저녁거리를 사러 가자며 숙소를 나섰다.


  우린 격포 수산시장에 갔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횟집 주인은 자연산 노래미가 맛있다며 추천했다. 우린 노래미와 산 낙지, 매운탕 재료를 사고, 시장 근처 마트에서 햇반, 김치, 과일, 라면, 결혼 기념 축하용 케이크를 샀다. 숙소에 돌아와 상을 차리고 보니 쌈 채소가 없었다. 대신 주문하지 않은 전어회 한 접시가 있었다. 횟집 주인이 서비스를 넣었다고 하더니 전어회를 챙기느라 채소 넣는 걸 깜빡 잊었나 보다. 노래미는 양념장 소스만 찍어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회를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은 쌈 없이도 잘 먹었다. 매운탕에 라면까지 넣어 끓였다. 맛있는 저녁 덕분인지 남편의 숙소에 대한 불평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장 보러 가기 전까지 화가 나 있던 내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2>

  이튿날은 변산바람꽃길을 걷기 위해 트레킹 출발지 내변산 분소로 갔다. 변산반도는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진 내변산과 해수욕장과 해안가가 중심의 외변산으로 나뉜다. 변산바람꽃길은 내변산에 있는 트레킹 코스다. 내변산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풍경이 아름답다고 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출발 전부터 설렜다. 바람꽃길 코스는 내변산 분소에서 출발해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 고개, 관음봉, 세봉을 거쳐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원형 코스와 원형 코스에서 가지를 뻗듯 내려가는 다섯 개의 코스가 있었다. 그중 직소폭포를 거쳐 내소사로 내려가는 코스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 고개까지는 셋이서 함께 가다가 나와 아들은 관음봉 삼거리에서 내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걸었다. 남편은 출발지로 가서 차를 가져와야 해 관음봉과 세봉을 거쳐 다시 내변산 분소로 가는 코스를 걸었다. 내소사에서 다시 합류했을 때 남편은 관음봉과 세봉을 넘는 길이 워낙 험해서 내가 그 길로 갔다면 도중에 주저앉아 내려오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남편 말을 듣고 나니 재백이 고개에서 산행 욕심을 내려놓고 내소사 길로 내려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내변산 분소에서 직소폭포까지 가는 숲길은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오죽이 빽빽이 자라 터널을 이룬 숲길, 하얀 구절초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생태원, 우람한 선인봉 아래의 실상사지, 굽이굽이 아홉 개의 빼어난 곡이 있다는 봉래구곡, 거울처럼 하늘과 산을 품고 있는 직소보까지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멋진 풍경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에 담느라 자주 걸음을 멈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기 오길 잘했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는데 정말 예쁘네. 단풍 많이 들었을 때 다시 오면 좋겠다.”

  “그러게. 단풍도 좋고, 겨울에 눈 올 때 다시 와도 좋을 것 같네.”

  아름답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한 숲길을 걷는 동안 남편에게 남아 있던 서운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봉래구곡


  물줄기가 연못으로 곧바로 쏟아져 내려 ‘직소’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직소폭포에서는 아쉽게도 폭포를 만나지 못했다. 직소폭포는 천양희 시인이 서른일곱 나이에 삶이 버거워 그만 내려놓기 위해 찾았다는 곳이기도 했다. 폭포 앞에서 오열할 때 어디선가 들려온 ‘너는 죽을 만큼 살아보았느냐?’라는 물음에 마음을 다잡고 시에 몰두했다고 한다. 전날 밤 그녀의 시 <직소폭포에 들다>를 읽어서일까, 폭포 없는 바위 절벽에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마음에 그려졌다.     


  직소폭포를 지나 재백이 고개에서 관음봉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숨을 헐떡이게 할 만큼 가팔랐다. 길은 험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산 아랫마을과 들판을 지나 변산 앞바다까지 뻗어나간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관음봉 삼거리에서 내소사까지는 기나긴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무릎이 너무 아파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 삼아 짚고 내려왔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내소사로 내려올 수 있었다.


  바람꽃길 끝에는 내가 고대하던 내소사가 있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과 단풍나무 길은 산행으로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능가산 아래 날아갈 듯 자리를 틀고 앉은 대웅보전과 무심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에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문은 아름답기로 유명해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이십사 년 전 나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산사 편 내소사를 읽으며 연꽃과 국화꽃이 정교하게 조각된 꽃살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이번엔 절 마당에 우람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천년을 사는 할머니 당산나무라고 했다. 20m 높이에 나무 둘레가 7.5m나 된다고 했다. 느티나무 발치에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널찍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여기저기서 “너 동전 있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 가득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나무에선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천년이나 절 마당을 지키며 무수한 사람들의 바람을 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소원을 신에게 전하는 동안 신령이 깃들 만도 했다. 천년을 사는 나무 앞에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짧고 덧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에 매달리고, 감정에 휘둘리며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천년을 산 느티나무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를 둘러보고 전나무 숲길을 걸어 일주문으로 향하는데 남편에게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린 일주문 앞에 있는 식당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배고파 죽겠다며 메뉴판을 뒤적였다. 세 시간 가까운 산행에 오후 세 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우린 해물파전, 바지락무침, 바지락 칼국수, 더덕구이와 생막걸리를 주문했다. 남편은 바지락 회무침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셨던 음식이라며 막걸리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힘든 산행 뒤 마시는 막걸리라서 그런지 더 시원하고 달아 보였다. 돌아가는 길 운전해야 하는 난 마시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입맛만 다셨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쉰 뒤 격포 채석강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바닷물이 가득 들어와 있었다. 아쉽게도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퇴적암층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하늘과 바다가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노랗게 풀어지던 노을이 주홍빛으로 퍼지며 서쪽 하늘을 물들였다. 바다와 물에 젖은 백사장 위로 반사되는 노을을 바라보는 남편과 내 얼굴에도 석양빛이 물들었다. 아름다운 석양이 이번 결혼기념일 여행의 막을 내리는 찬란한 휘장이 되어 주었다.     


채석강 노을

  돌아오는 길 남편 얼굴은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편안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좋아하는 음식과 제대로 한 산행,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 준 아름다운 풍경들, 허리디스크를 핑계로 운전대까지 내게 맡겼으니 더없이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걷고 싶었던 변산바람꽃길을 걷고, 보고 싶었던 내소사를 보아서 좋았다. 아들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몇 달 동안 집과 편의점만 오갔는데 바깥바람을 쐬어 좋았을 것이다. 결혼기념일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좋은 것들을 보며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02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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