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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Oct 25. 2021

완주의 기쁨

해파랑길 2코스를 걷다

  팔월 중순 이후로 계획했던 해파랑길 부산 구간을 남편 일정 때문에 앞당겨 걸었다. 2박 3일 동안 해파랑길 2, 3, 4코스를 걷기로 했다. 계속되는 불볕더위에 소나기 소식까지 있어 망설였지만 일단 떠나기로 하고, 기장 대변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해파랑길 2코스는 미포에서 대변항까지 이어지는 13km의 바닷길로 난이도는 별 세 개, 걷기에 무난한 길이다. 달맞이 언덕 구간은 숲길인 문탠로드와 해변열차가 지나는 블루라인파크 바닷길이 있다. 문탠로드는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길’이란 의미를 지닌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이어지는 2.5km 숲 속 오솔길이다. 해변열차는 미포 정거장에서 시작해 달맞이 재를 지나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구덕포를 거쳐 송정해변까지 이어진다. 우린 해변열차가 지나는 철로와 나란히 이어진 바닷가 데크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데크 길 왼편엔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이 흐르듯 천천히 오가고, 오른편에 확 트인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까지 펼쳐졌다. 달맞이재 바다 쪽에 조성된 꽃밭엔 연보랏빛 벌개미취 꽃이 한창이었다. 꽃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풍치를 더해주었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바다 빛깔, 바다 쪽으로 쭉쭉 가지를 뻗은 솔숲, 느리게 지나가는 해변 열차, 온갖 형상의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더위를 잊고 계속 걷게 했다. 청사포 정거장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에이드로 더위를 식히고 다시 걷다 보니 다릿돌 전망대가 나왔다. 다릿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송정해변 풍경과 바다 빛깔이 아름다워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바닷길을 걸어 해변열차 종착지인 송정역에 도착했다. 송정역 바로 옆엔 부산의 서핑 명소라는 송정해수욕장이 있었다. 걷는 게 목적인 우리에게 해수욕장은 잠시 앉아서 바다를 보다 쉬어가는 곳이었다. 우린 사진 몇 컷을 찍고 땡볕 속에서 달구어진 몸속 열기를 식히려 밀면집을 찾았다. 밀면은 여름에 부산에 올 때마다 한 끼는 꼭 먹는 음식이었다. 송정에서 수육과 함께 먹은 밀면은 더위와 피로를 날려 보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메뉴가 되었다.     


  송정해변에서 해동용궁사로 가는 길에 공사 구간을 만나 해파랑길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분명 작은 해변 끝자락 소나무 숲에 리본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남편은 그곳엔 길이 없다며 무작정 대로변을 따라 앞서갔다. 대로변 길을 따라가느라 한 시간 이상 더 걸었다. 발이 아파 길옆 나무 그늘에 앉아 쉬다 걷기를 반복하며 겨우 해동용궁사 입구에 도착했다. 절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엔 붉은 글씨로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해동용궁사’라고 새겨져 있었다. 절에 내려가기 전 카페에서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며 아픈 발을 쉬었다.      


  해동용궁사로 내려가는 백팔 계단 양옆에 줄지어 선 석등의 날아갈 듯한 지붕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꽃잎처럼 펼쳐진 지붕 날개가 층층이 이어졌다. 계단을 내려가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고아했다. 바닷가로 뻗어 내려간 바위 언덕 위의 둥그런 돌탑들과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대웅전,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 관음보살상이 어우러진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해동용궁사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왔던 곳이기도 해 마음이 애틋해졌다. 절 입구 십이지상 앞에서 엄마랑 사진을 찍고, 바닷가 황금 불상 앞에서 절하며 소원 빌었던 기억이 떠올라 울컥해졌다. 엄마가 지금 계신 곳에서 편안하길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해동용궁사를 떠나 얼마나 걸었을까 시원스레 펼쳐진 코발트 빛 바다를 만났다. 우린 오시리아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아난티 리조트 앞 널따란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집이 잡힌 발가락에도 바람을 쐬어 주었다. 동해 바닷가에 누워 지인이 보내 준 이성복의 시 '서해'를 읽으며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 내 가보지 못한 한쪽 바다는 /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구를 반복해서 읊조렸다. 내 가보지 못한 바다는 누군가를 위한 자리이고,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지금 이곳이 내겐 바로 천국이구나 싶었다.     


  달콤했던 휴식도 잠깐 다시 발가락 물집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일출이 아름답다는 오랑대공원을 지나 대변항에 도착했을 땐 한 발짝도 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극에 달했다. 도중에 이정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13km 길을 늘려 20km나 걷는 바람에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발가락 여섯 개에 물집이 잡힌 상태라 내일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렇게 힘든 중에도 대변항 안내판 아래 스탬프 상자를 발견하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해파랑길 패스포트에 2코스 완주의 기쁨을 담아 3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2코스 완주의 기쁨이 내일 다시 길을 떠나게 할 것이다.     


해파랑길 2코스 달맞이재 옆 꽃과 바다
해동용국사 백팔장수계단 석등 지붕 날개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절 해동용궁사
기장 오시리아 해변 산책로


* 해파랑길 2코스 : 미포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에서 대변항까지 13km

* 해운대 블루라인 광장 – 미포 정거장 – 달맞이 터널 – 청사포 정거장 - 다릿돌 전망대 - 구덕포 – 송정해변 – 해동용궁사 – 오랑대공원 – 대변항

* 걸은 날: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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