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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Nov 19. 2021

다시, 나의 걸음으로

해파랑길 4코스  - 고난 끝에 만난 치유의 바닷길

 

  해파랑길 4코스는 임랑 해변에서 시작해 봉태산 숲길, 나사 해변, 간절곶을 거쳐 진하해변까지 이어지는 19km의 길이다. 오전에 전날 걷다가 멈춘 3코스 구간을 두 시간 걸은 뒤라 오후에는 봉태산 숲길을 지나 나사 해변까지 8km만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 봉대산에서 헤맸던 기억이 떠올라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 조금만 더 걷기로 했다.      


  임랑해수욕장은 코로나19 때문인지 백사장의 파라솔이 거의 비어있었다. 간간이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백사장 옆 라이브 카페 ‘꽃밭에서’도 쉬는 날인지 주변이 고요했다. 하얀 카페 건물과 테라스에 팔월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해변을 벗어나 원자력발전소 쪽으로 걷다가 봉태산 쪽으로 향했다. 지도에 나온 봉태산은 가까이 있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도로 갓길과 시골 마을 길을 한없이 걷고 나서야 산 초입을 만났다.     


  낮게 이어진 숲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봉태산 숲길을 빠져나오자 ‘해파랑길 4코스 울산지역 시작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부산을 벗어나 울산 땅으로 들어온 것이다. 산을 벗어나자 얼마 안 가서 다시 도로길을 만났다. 남편과 난 땡볕이 쏟아지는 아스팔트 길로 들어서기 전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지칠 때마다 어디든 깔고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돗자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도로변 길과 밭길, 냇가 길을 따라 걸었다. 미나리꽝을 지나고, 시멘트 길을 걷고, 다시 도로변 길을 걷고, 하천길을 따라 걷다가 언덕길을 만났다. 언덕길을 따라 걷는데 어느 순간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통증 때문에 그늘이 나오면 신발을 벗어 들고 양말만 신은 채 걷기도 했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멀리 언덕 아래 바다가 보였다. 언덕을 내려와 바다까지만 가자는 생각으로 통증을 참으며 뛰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작고, 고적한 항구 신리항이었다. 내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어서 ‘나사 해변’은 다음에 걷기로 하고, 신리항에서 멈췄다.


신리항


  누군가 4코스를 걷는다면 임랑 해변에서 신리항까지는 차를 이용하라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지루하고 힘든 길이었다. 해파랑길 이름에서 ‘랑’의 의미가 왜 ‘~와 함께’인지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길이기도 했다. 지루하고 외지고 힘든 구간을 만날 때마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남편이 고마웠다.      


"당신의 여행길에 누군가를 불러내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걷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위해 걷지 않습니다."

                                                                                     -< 내가 빛나는 순간> 중 파울로 코엘료-     

 

  힘든 고비마다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하고,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걷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파울루 코엘류의 전언처럼 삶의 여행길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걸음으로' 한 걸음씩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준 구간이었다.  

   

  ***

  해파랑길 4코스 후반부인 신리항부터 진하해변까지는 두 달 뒤 10월 초에 걸었다. 걷기 좋은 계절에 날씨도 청명했다. 지난 팔월 땡볕 속을 걷다가 지쳐 거의 절뚝이며 도착했던 신리항은 고적했었는데, 다시 찾은 신리항은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주말 이어선지 항구 주변은 차들이 빽빽이 주차해 있고, 낚시하는 사람,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신리 항부터는 바닷길이 이어졌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신암해변을 지나 나사마을로 들어섰다. 나사해변은 이름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나사해변의 ‘나사’라는 이름은 ‘모래가 뻗어나간다’ 하여 나사(羅紗)라고 사용하다가 그 후 선비가 많이 배출되기를 원해 나사(羅士)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닷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카페

   

  신리항부터 이어지는 4코스는 바닷길과 간절곶, 크고 작은 해수욕장, 솔숲의 공원 길로 이루어져 내내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걸을 수 있다.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는 간절곶 소망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절곶 광장에 이른다. 왼편으로 푸른 언덕이 오른편으론 코발트빛 바다가 펼쳐진 간절곶 주변엔 다양한 볼거리와 쉼터가 있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 주변엔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유럽 대륙의 최서단 포르투갈 연안에 있는 곶, 카보 다 호카(Cabo da Roca)에 있다는 해넘이를 상징하는 돌탑과 커다란 소망 우체통도 볼 수 있었다. 직접 엽서에 소망을 쓰지 않더라도 다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망 하나쯤은 저 우체통에 넣고 가겠구나 싶었다.     


 

간절곶 소망우체통

  간절곶에서 솔개 공원, 솔개 해변, 대바위 공원을 지나 진하해변까지는 바닷가 솔숲과 바닷길이 절경을 이룬다. 솔개해변 풍경이 아름다워 해변 풍경과 함께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를 영상에 담기도 했다. 해안 길을 따라 걷다가 대바위 공원에 이르자 저만치 진하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진하해변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바닷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나 걸어갈 수 있는 작은 섬 명선도가 있었다. 명선도는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아름다운 해돋이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우린 회야강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의 명선교에서 4코스 일정을 마쳤다. 아침 일찍부터 다섯 시간을 달려와 걷기 시작한 해파랑길 4코스 바닷길의 아름다움은 다시 설렘과 기대를 안고 다음 코스를 고대하게 했다.      


솔개 해변 풍경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보았던 바다


대바위 공원에서 바라본 진하해변


진하해수욕장
진하해변 명선도


* 해파랑길 4코스 : 임랑해변 – 신리항 – 나사해변 – 간절곶 – 진하해변

* 걸은 날: 2021. 8. 2.(임랑해변 ~ 신리항)/  2021. 10. 9.(신리항~ 진하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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