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6코스는 덕하역을 출발해 선암 호수공원과 솔마루 길을 지나는 코스다. 짧은 호수 둘레 길을 제외한 나머지가 거의 산길이라선지 난이도는 별 네 개로 높은 편이다.
남편과 난 지금은 폐쇄된 간이역인 덕하역 앞에 차를 주차하고 선암호수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삼십 분쯤 대로변 길을 따라 걸었다. 인도는 가로수 뿌리가 보도블록을 들어 올리고, 풀이 수북해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대로변을 벗어나 공원 길을 걷다가 함월산 입구를 만났다. 함월산은 해발 201m의 나지막한 산이다. ‘달을 품은 산’ 운치 있는 이름이다. 숲 안쪽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과 그늘, 포근한 흙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선암호수공원
출발한 지 한 시간 넘게 걸었을 때 선암호수공원이 나왔다. 휴일이라 호수 주변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양팔을 앞뒤로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둘레길을 걷는 사람, 우리처럼 해파랑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 양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시원했다. 해파랑길은 기다란 호수의 한쪽 길이 끝나고 커브를 도는 곳에서 신선산으로 이어졌다. 신선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신선산 정상에선 울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커다란 바위 옆 정자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해파랑길 6코스는 울산 솔마루길 구간과 거의 겹친다. 솔마루길은 소나무가 울창한 산등성이를 연결하는 등산길이다. 선암호수공원에서 시작해 신선산, 대공원산, 솔마루 하늘길, 삼호산, 남산으로 연결되는 24km의 도심 순환 산책로이다. 걷는 내내 울창한 솔숲 길이 펼쳐진다. 길가에는 파란색 고래 형상의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 울산과 고래 인연 때문인 것 같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은 울산이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가 이루어졌던 곳임을 말해준다. 지금도 매년 4월이면 울산 앞바다에 고래가 출몰한다고 한다.
솔향기 가득한 솔마루길
신선산을 지나 울산 대공원산에 들어서면 도토리 저금통과 숲 속 작은 도서관도 만난다. 저금통 아래 매달린 둥그런 쇠 접시엔 사람들이 모아놓은 도토리가 쌓여있다. 다람쥐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엿보인다. 숲 속 도서관 주변엔 운동시설, 벤치, 평상, 탁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다. 솔향기 맡으며 책 읽다가 평상에 누워 잠들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대공원산 숲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을 듯 이어진다. 울산대공원 숲이 공업단지가 많은 울산의 허파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숲속 작은 도서관
11km쯤 걸었을 때 쉼터가 나왔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 평상들이 흩어져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살폈다. 어제 잡히기 시작한 발가락에 물집이 늘었다. 남편은 맨발로 스포츠 샌들을 신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도 멀쩡한데 내 발가락은 조금만 걸어도 물집이 잡힌다. 발가락 물집 때문에 마음만큼 걷지 못해 늘 아쉽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깐 잠이 들었다.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에 깨어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린 다시 걷기 시작해 대공원산과 삼호산을 연결하는 솔마루 하늘길을 지났다. 삼호산 입구 산성의 성문은 하도 작아서 앙증맞아 보였다. 6코스 종점인 태화강 전망대까지 가려면 5km 이상을 더 걸어야 하는데 발가락 물집에 심해지면서 걷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쉴만한 곳이 나오면 계속 멈추었다 다시 걸었다. 솔마루 정자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태화강 줄기와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솔마루 산성
태화강 전망대전에 나와야 할 고래전망대가 아무리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긴가 싶으면 아니고 또 여긴가 싶으면 아니었다. 울산대공원에서 고래전망대까지 3.6km인데 물집 잡힌 발로 걷다 보니 훨씬 멀게 느껴졌다. 고래전망대에 도착, 태화강과 울산 시내를 보고 마지막 종착지인 태화강 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다 보니 언덕 위에 숲 체험장이 나왔다. 숲 체험장 바로 옆에 태화강 전망대가 있었다. 드디어 다 왔다며 환호성을 지르려는데 아니었다. 6코스 종착지는 1km 아래 태화강 옆에 있는 회전형 전망대였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심했다.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한 발짝 뗄 때마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계단을 내려왔을 땐 절뚝이며 걸어야 했다. 해파랑길 지도엔 6코스 완주 시간이 6시간 30분으로 나왔지만, 우린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순전히 내 발가락 물집 때문이다. 태화강 옆 해파랑길 표지판 아래 스탬프 상자가 있었다. 6코스 완주, 7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탬프를 찍는 순간엔 짜릿한 기쁨이 느껴진다. 우린 태화강 전망대 3층에 있는 회전식 카페에 갔다. 시원한 에이드와 하몽이 들어간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땀과 피로를 식혔다. 360도로 돌아가는 카페에서 태화강 주변 경치도 실컷 감상했다.
십리 대숲길과 태화강, 태화강 전망대
6코스 마지막 일정은 거른 점심과 저녁을 대신할 맛집이었다. 남편이 찾은 맛집은 태화강 건너편에 있었다. 우린 가자미 매운탕을 시켰다. 얼큰하고 뜨끈뜨끈한 국물이 시원했다. 여덟 시간 넘게 산길을 걸으며 쌓인 피로를 날려주기에 충분할 만큼 맛이 좋았다. 가자미 매운탕과 함께 해파랑길 6코스를 완주했다. 솔향기 가득했던 울산 대공원산 솔마루길은 언제든 다시 와서 걷고 싶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