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삼 년 만에 다시 제주에 왔다. 야자수 아래 Hello Jeju! 가 이렇게 반갑게 눈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다. 유별난 제주 사랑으로 연례행사처럼 해왔던 제주여행이 코로나19 때문에 멈췄었다. 코로나19가 잦아들어 설렘과 그리움을 안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봄부터 제주는 만원이었다. 비행기표, 숙박비, 렌터카 비용이 부쩍 올랐다. 그래서 남편과 난 이번 여행은 주로 민박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제주공항에서 성산항까지 버스로 오는 데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걸렸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제주에 올 때마다 첫날은 성산항 근처의 솔레민박에 묵곤 했다. 십오 년 가까이 이어온 인연이다. 친절한 호스트와 정갈한 방, 편의시설이 늘 예약 버튼을 누르게 하는 곳이다. 오래 걷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땀에 절은 옷의 세탁과 건조인데 이곳에선 둘 다 해결할 수 있다.
청주에서 오후에 출발해 제주 도착, 성산까지 오면 저녁 시간이다. 숙소 옆에는 고등어회와 고등어 구이가 유명한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있다. 제주에서의 첫날 저녁을 위해 늘 가는 식당이다. 저녁을 마치면 성산항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성산일출봉 아래까지 한 시간 남짓 산책을 다녀온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시원하다. 멀리 우도의 등대와 마을 불빛들이 반짝인다. 검푸른 바다엔 고깃배들의 노란 불빛들도 하나 둘 살아난다. 어둔 바닷가 바위에선 밤낚시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성산일출봉 아래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는 그 사이 카페가 늘었다. 해외여행 발이 묶여 제주로 몰리는 사람들 때문이리라.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느린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도 좋다. 바다는 어둠에 묻히고 늘어난 불빛들만이 반짝인다. 얼마 전에 보았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왔던 '백 개의 달'이 뜨는 풍경이다. 일부러 불빛을 세어 보니 오늘 바다에 뜬 달은 오십 개쯤이다.
첫날 만난 신비로운 저녁 바다 빛깔과 다정하고 아름다운 불빛들 덕분에 이번 제주 여행에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2022.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