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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 살았는데,
왜 우리는 멀어졌을까

마음을 돌보지 못한 세월이 남긴 거리

by 김성곤 교수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마주한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중년의 어머니와 성인이 된 딸이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서로에게 닿지 않는 듯한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시간 괜찮으면 점심 먹고 영화 볼래?” 딸은 짧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친구 만나야 해요.”

그 짧은 대화 후, 둘은 한 테이블에 있었지만 마음은 서로에게 가지 못했습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많은 부모와 성인 자녀가 이런 정서적 거리를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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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부모는 “내가 너를 위해 살아왔다”라고 말합니다.

사교육, 가족여행, 기념일마다 챙긴 선물…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얼마나 자주 마음의 온도차를 읽고, 감정의 세밀한 결을 살피며

아이의 마음에 닿으려 했을까요.

애착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안정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신뢰하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하고 감정의 미세한 접속을 놓쳤다면, 그 관계의 밀도는 얕아지고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는 서로의 접근이 어색한 감정으로 남게 됩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너를 위해 살았다”라고 믿었고, 실제로 자식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마음의 허기는 끝없이 뒤로 미뤄두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느라 자기 마음의 공허를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월.

그 세월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가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지금 불행한 마음을 너에게 옮기기는 싫지만, 사실 나도 너무 외롭다.”

그 말을 듣는 딸의 마음도 무겁습니다. 둘 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위해 너무 애써왔기에 지금의 어색한 거리가 더 서글픈 것입니다.

부모는 “너를 위해 살았다”라고 믿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은 잊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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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떠오릅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애가 아니라,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성숙한 자기 사랑이야말로 타인에게 선의와 덕을 베푸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의 마음을 잘 보듬고 자신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있을 때, 그 따뜻함은 자녀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혈연으로만 유지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의 세상 안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 노력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 부모가 먼저 정성을 다해 마음을 기울이고 자녀의 감정을 읽어내려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 모습은 자녀에게도 ‘관계는 서로 노력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각인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은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도 성인이 되어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자녀에게 같은 태도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리고 늙은 부모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성숙한 관계의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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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관계 태도는 단순히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맺었던 건강한 애착은 시간을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관계의 문화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까요. 정말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부모도, 자녀도 결국은 ‘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심리적 독립성(psychological independence)은 가까운 사람을 지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한 마음의

자립입니다.

내 마음이 안정되고 평온할 때 그 따뜻함은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의무감만으로 다져진 관계는 언젠가 피로한 부담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의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의 온도차를 읽어내는 감각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관계의 온기가

다시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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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자녀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먼저 돌보는 삶.

그런 삶을 통해 조금씩 관계의 거리도 좁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위해 억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안정을 돌보며 살아가는 부모와 자녀가 결국 더 따뜻한

가족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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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큐레이션을 기다리기보다, 오늘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심리학과 교육, 그리고 부모의 현실을 잇는 이 글이 당신의 콘텐츠 감각에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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