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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예능,
대한민국의 불안을 소비하다”

불평등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심리적 착취, 그리고 방송의 책임

by 김성곤 교수

대한민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교육 경쟁의 무대가 되었을까요.

부모들은 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써왔고,

그 노력은 분명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더 나은 내일”이 점점 더 좁은 골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그 골목의 끝에는 오직 명문대, 의대, 특목고라는 좁은 출구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요즘 TV에 쏟아지는 사교육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 현실을 마치 '흥미로운 볼거리'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부모들의 열정과 집념, 그리고 자녀의 성취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그들만의 특별한 정보와 전략을 부각합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을 마주하는 우리의 마음은 왜 이토록 불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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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예능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상향비교(upward social comparison)의 표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상향비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불안과 자기 비난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그들의 고액 사교육과 엘리트 교육 경로가

마치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표준'으로 그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심리적 기준선을 그어놓습니다.




George Gerbner의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에 따르면,

미디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창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청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힘을 가집니다.

즉, 특정한 가치관과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미디어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을 '보편적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사교육 예능은 일부 부모의 사례를 통해

명문대 진학이 곧 '부모의 성취'이고,

고액 사교육 투자가 '사랑의 척도'라는 왜곡된 규범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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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Annette Lareau의 개념인 'concerted cultivation'은

중산층 이상 부모들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육아 방식이

세대 간 교육 격차를 고착화하는 구조적 메커니즘임을 설명합니다.

사교육 예능은 이와 비슷한 논리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자녀의 학습을 감독하고, 학습 계획을 설계하며,

고액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이는 부모의 모습이

이제 '성공하는 부모'의 이미지로 표준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부모들은

'나는 부족한 부모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비난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은 '구조적 불평등의 심리적 내면화(psychological internalization of structural inequality)'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차이가 단순한 격차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정체성과 자존감의 문제로 전이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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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교육 예능은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긴 뒤,

그 불안을 다시 시청률과 광고 수익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서적 착취(emotional exploitation)'입니다.

방송은 경쟁과 불안을 팔아 이윤을 만들어내는

가장 세련된 상업적 기획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더 씁쓸한 것은,

이런 방송에 한 번 출연한 부모들이

곧바로 “나는 방송에 나올 정도의 정보력 있는 부모”라는 이미지를

스스로의 브랜드로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이는 'media as social certification',

즉 방송이 개인의 신뢰성을 단숨에 만들어주는

사회적 인증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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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신뢰성'은 실력의 보증이 아닙니다.

그저 시청률과 상업적 기획의 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이런 방송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의 불안을 팔고 있는가.

방송의 힘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을 형성하고,

대중의 가치관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교육 예능은 이 힘을

부모의 불안을 상업화하고,

경제적 격차를 자연스럽게 정당화하며,

사회의 위화감을 심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양심으로서, 부모교육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모의 불안이 상업적 소비의 도구가 되는 이 풍경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이 부모와 아이 모두의 마음을 지키는 작은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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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결국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삶을 다루는 당신의 시선에

한 줄 영감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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