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닿기 전에, 마음이 먼저 닿아야 합니다
“수학 시험 범위 다 봤지? 이번에도 잘 봐야지.”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입니다.
엄마의 말이 응원이 아니라, 무언의 압박처럼 들립니다.
시험이 끝난 날 저녁.
아이는 방문을 닫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엄마는 조심스레 묻습니다.
“시험 어땠어?”
아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합니다.
“망쳤어.”
엄마는 순간 멈칫합니다.
그 순간, 엄마의 머릿속에는
“이번에도 잘 봐야지”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아이 위해서 응원한 건데… 왜 아이가 더 힘들어할까요?”
부모는 잘되라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더 무거워집니다.
이 질문의 답은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충돌에서 찾아야 합니다.
엄마의 의도 vs. 아이의 해석
부모는 자신의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고
아이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넵니다.
- 엄마의 의도: “이번에도 잘 봐야지. 지난번에도 잘했잖아.”
- 아이의 해석: “이번에도 잘해야 돼. 못하면 실망이야.”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말로 아이를 다독이려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로 다가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적 필터링(emotional filtering)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말이 아이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지나갈 때,
그 말은 오히려 압박이 됩니다.
“이번에도 잘 봐야지”라는 말은
아이에게는 “이번에도 실수하면 안 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너는 괜찮은 아이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넌 지금도 괜찮아’가 아니라, ‘넌 더 잘해야 돼’로 바뀌는 순간,
그 말은 응원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아이: “엄마, 나 이번에 수학 시험 망쳤어.”
엄마: “아, 많이 속상했겠구나.”
(이 말은 ‘너의 감정이 먼저다’라는 신호입니다.)
아이: “응… 진짜 최악이야.”
엄마: “그래도 너 열심히 했잖아.
엄마는 네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듭니다.
이제야 엄마의 말이 마음에 닿습니다.
이 대화에서 중요한 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 “이번에도 잘 봐야지” 대신,
“이번에 정말 많이 애썼구나”
- “지난번에도 잘했잖아” 대신,
“이번에도 너 나름 최선을 다했지?”
부모의 말이 아이가 느끼는 감정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그 말은 부담이 아닌 위로가 됩니다.
왜 부모는 이런 말을 하게 될까요?
부모는 사실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이번에도 잘 봐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부모는 자신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덮어버립니다.
“이번에도 잘 봐야지”라는 말은
사실은 “이번에도 실수하면 안 돼”라는 부모의 두려움이 반영된 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실천 한마디:
“이번에도 잘 봐야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오늘 진짜 고생했겠구나”라고 말해보세요.
아이의 마음에 먼저 닿을 때,
부모의 말은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전달됩니다.
이 글은 교육 불안을 부모 심리의 언어로 다시 풀어본 시도입니다.
이야기의 결은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많은 자리에서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