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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그 후 무너진 아이들"

입시 너머의 불행을 말하다

by 김성곤 교수

강연이 끝난 뒤, 한 어머니가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이가 좋은 대학만 가면, 그다음은 잘 풀릴 줄 알았어요.”

그 아이는 서울의 의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말이 멈췄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아이가, 그토록 외롭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섣부른 위로나 조언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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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학벌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스카이 대학은 부모 세대에게도 ‘불안한 삶을 지켜줄 마지막 보험’이라는 메타포로 작동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메타포가 아이의 유년기까지 내려와 ‘진로 설계’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상담실, 대학 강의실, 강연장에서 제가 만난 수많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른 문제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울, 무기력, 자기 비난, 성취 후 공허감.

이건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더 일찍, 더 조밀하게 아이들을 조여옵니다.

고등학교가 아닌, 유치원부터 입시가 시작되는 시대.

아이의 출생 직후부터 유아용 한글 교재, 초등 1학년부터 입시 로드맵, 그리고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는 불안을 입시라는 언어로 조기 납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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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한 교육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출산, 불안정한 노동시장, 양극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부모들은 ‘조기 경쟁’을 생존의 전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벌써 다 하고 있대요.”

“우리 애만 뒤처지면 어쩌죠?”

그 말속에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튜브와 각종 미디어에는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정보가 쏟아지고,

검증되지 않은 '사교육 전문가', '뇌 과학자', '자기주도학습 멘토'가 화려한 말과 표를 앞세워

학부모를 더 조급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문제를 확대하고, 해답을 상품으로 포장합니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이용해 결국 교육을 하나의 소비 행위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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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예측 불안(predictive anxiety)이라 부릅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현재의 과잉 개입으로 이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그 통제의 대상은 다름 아닌, 가장 만만한 ‘내 아이’입니다.

불안은 사랑의 탈을 쓰고, 통제는 교육의 이름으로 정당화됩니다.


교육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을 빼앗는 방식입니다.

동기의 방향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대로’로 전환되는 순간,

공부는 자기 삶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이 상태는 청소년기 만성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합니다.

과도한 학업 부담과 정서적 지지 부족은 뇌의 편도체 과활성화로 이어지고,

집중력 저하, 수면 문제, 감정 기복, 심하면 자해 충동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아이의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병원을 찾고,

공부가 조금만 뒤처져도 사교육으로 끌고 갑니다.

공부를 못하는 건 곧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성적은 곧 건강, 아니 생존력으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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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이 흐름 속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게 병이라면, 공부를 너무 잘하다 무너지는 건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해석력과 버팀이라고 믿습니다.


성적을 실패로, 아이의 방황을 무가치함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이에게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는가’를 읽어내는 감정의 해석력.


그리고 아이가 흔들릴 때, 고쳐주려 하지 않고, 평가하려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버팀의 힘.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도

그 아이는 혼자서 버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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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 글을 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라, 더 나은 해석과 더 깊은 버팀입니다.


이 글은 교육 불안을 부모 심리의 언어로 다시 풀어본 시도입니다.

이야기의 결은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많은 자리에서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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