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자녀에게 흘러간다
부모가 되면 알게 됩니다.
내가 어떤 집에서 자랐는지를.
한 강연장에서 한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됐어요.
제가 어릴 때는 늘 조용히 눈치만 봤다는 걸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키운 기억을 꺼내게 합니다.
그제야 우리는, 내가 어떤 집에서 자랐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집이 따뜻했다면 그대로 짓고 싶을 것이고,
차가웠다면 부수고 새로 짓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자란 집의 구조조차 제대로 모른 채
부모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릴 적 받은 사랑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억누르며 자랐는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
우리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이는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자라주지 않고,
우리는 종종 똑같은 말과 감정으로 상처를 반복합니다.
왜 그럴까요?
1. 상처는 대물림되고, 반복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절대 우리 부모님처럼은 안 될 거라 다짐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서 익숙한 그 말투가 튀어나오는 걸 느끼고는
허탈해집니다.
“어? 이게 내가 하려던 모습인가?” 하면서 말이죠.
이걸 심리학에선 ‘적대자 동일시’라고 부릅니다.
내가 싫어했던 감정,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내 안에 남아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아이에게로 흐릅니다.
감정은 전달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자존감은 부모의 사랑 위에 지어지는 집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로 자신을 해석합니다.
“넌 왜 그것밖에 못 해”라는 말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내면의 설계도를 그려갑니다.
반대로 “괜찮아, 엄마는 네 편이야”라는 말은
아이 마음에 벽돌 하나하나를 쌓습니다.
자존감은 단단한 기초공사 위에만 세워집니다.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아무리 좋은 외벽을 세워도
금세 갈라지고 흔들립니다.
이 기초란 결국, 아이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수용과 애정입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입니다.
3. 부모가 된다는 건, 나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사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나는 일입니다.
“왜 또 그 말을 하게 될까?”
“왜 아이가 실패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조금은 조용히,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 질문 끝에 늘 ‘그때의 나’가 서 있습니다.
슬퍼도 말하지 못했고, 화가 나도 참아야 했던 그 시절의 내가.
늘 혼자 감정을 삼켰던, 그 조용한 아이가 다시 떠오릅니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건 내가 자란 집을 다시 짓는 일입니다.
그 집을 똑같이 복사하지 않기 위해,
또는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단단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 글은 ‘부모 됨’을 심리의 언어로 다시 바라본 시도입니다.
더 많은 자리에서, 더 깊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