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존재감이 자녀의 성과로 증명될 때
“엄마, 나 이번에 A반에 들어갔어.”
부모는 날아갈 듯이 웃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이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이 보인다’는 기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는,
남의 아이와 비교하며
내 존재를 입증하고 싶은 초조함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아이가 A반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은 부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은 어딘가 흐려져 있습니다.
부모의 존재감이 자녀의 성과로 입증될 때,
아이에게는 결과만 남고, 존재는 사라집니다.
“엄마, 나 잘했지?”
이 말은 사실,
“내가 잘해야만 나는 괜찮은 사람이지?”라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을 보면서
동시에 SNS에서 남의 아이 성적표도 봅니다.
“저 집 애는 벌써 A반이래.”
“우리 애는 아직도 B반인데…”
“저 부모는 정말 대단하다. 우리 애는…”
이렇게 남의 아이와 비교하는 순간,
부모의 존재감은 흔들립니다.
부모의 자존감이 아이의 성과에 달려 있을 때,
아이의 성과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부모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부모는 자녀교육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존재를 자녀의 성과에 투영합니다.
“우리 애는 A반에 들어갔어.”
“이번에 전교 1등이더라고요.”
“우리 애는 공부 잘해.”
이 말들 속에는
“내가 괜찮은 부모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아이는 A반에 들어갔지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의 성과가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는 순간에만
존재를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존재감이 자녀의 성과로 증명될 때,
아이에게는 “내가 뭐가 되느냐”만 남고,
“내가 누구냐”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부모의 존재감이 아이의 성과에 묶일 때
그 배경에는 SNS에서 본 남의 행복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A반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소식을 곧바로 SNS에 올립니다.
“우리 애가 A반에 들어갔어요.”
“이번에 학원에서 상 받았어요.”
이 모든 글들이 나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괜찮은 부모라는 걸,
내가 좋은 엄마라는 걸,
내가 부족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그 글을 올리고 나면,
마음 한구석은 더 공허해집니다.
부모가 자녀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할 때,
그건 단순히 성과중심 정체감이 아니라,
SNS에서 본 남의 행복을 나의 결핍으로 해석하는 구조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애는 아직도 B반이야.”
“우리 애는 전교 1등이 아니야.”
이 말들은 남의 성과를 나의 결핍으로 해석하는 순간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 나 이번에 A반에 들어갔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잘했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험 보느라 진짜 고생했겠다.
친구랑 너 제일 좋아하는 거 실컷 먹고 와.
오늘은 늦어도 괜찮아~”
이 말은 성적이 아닌, 존재를 먼저 본다는 메시지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는 대신,
아이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실천 한마디: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점수보다 먼저 이렇게 말해보세요.
“시험 보느라 진짜 고생했겠다.
친구랑 너 제일 좋아하는 거 실컷 먹고 와.
오늘은 늦어도 괜찮아~”
다음 편 예고:
“부모는 아이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왜 아이는 안 들을까요?”
부모의 말이 아이에게 진짜로 닿으려면
무엇이 먼저 필요할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