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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Mar 22. 2023

0322 나에게 6년 차 예비군의 의미

하루 10분 일기 쓰기

am 02 : 22


12시 30분, 늦잠을 자서 굶은 채, 예비군을 가기 위해 군복을 입고 군화 끈을 맨다. 예전보다 무겁게만 느껴지는 군화를 신고 택시를 탄다. 기사님은 군복을 입고 있는 나를 보며 묻지도 않았던 라떼는 군시절이 말이야를 시전 하며 훈련 지역으로 가는 길을 더욱 버겁게 만들었다. 따사로운 햇살에 나른한 오후 1시, 신둔면에 있는 예비군 집합소에 모였다. 작전계획훈련, 줄여서 작계훈련을 받기 위해 모인 73명의 사람들은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미 다들 지쳐있었다. 이곳의 따분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나름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크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나대지 말 것'

   번째 '할 일을 할 것'

  마지막 셋 번째 '입을 다물 것'


  첫 번째는 나대는 순간, 그곳 지역간부가 대표로 일을 자꾸만 맡긴다. 부대마다 다르지만, 분대장을 맡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훈련소에서부터 뼛속까지 각인된 나서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교훈이 이곳에서도 통한다.

  두 번째는 30대 중반 어르신들의 시절처럼 배 째고 안 하면, 지역 간부들이 실습시간을 늘리는 가혹행위를 한다. 실습 시간이 늘어질수록 귀찮음과 짜증은 배로 늘어나 1분 1초라도 집에 가고 싶은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행동이다. 물론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진 않지만, 속으로 다들 그 사람을 욕하는 분위기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전역했음에도 다들 훈련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쾌지수가 높아 예민한데, 입방정 많은 모르는 사람이 나대는 꼴이 보기 싫어서인 것 같다. 친한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건 상관은 없는데, 뭐랄까 그냥 다른 사람이 말 거는 게 불편한 분위기이다.


  나도 남자다 보니 군대 얘기 나오니깐 신나서 주저리 적어봤다. 암튼 침묵 속에서 장시간 노출되어 있다 보면 끝났을 때 뿌듯함보다는 피로감이 더욱 심한 것 같다. 이 기나긴 침묵 속에 지역부대의 간부들만 구장창 훈련에 대해 강조하고 진지하게 말씀하는 게 이쪽 간부들도 나름의 고충이 느껴져서 한 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악조건과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비군 훈련을 즐기다 오는 편이다. 평소에 밖을 잘 나가지 않아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고 군복을 입었을 때 떠오르는 추억들도 나름의 여흥이 다. 기본군사 훈련을 받을 때 총을  뒤 코끝에 느껴지는 탄약의 시큼한 냄새가 그때의 향수처럼 느껴져 참 좋다. 막상 갈 때는 귀찮고 장시간 침묵하고 있어야 해서 부담감도 느껴지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훈련을 받아보겠냐 싶기도 하다.


  예비군은 6년 차가 마지막인 나에게는 올해 남은 후반기 작계 훈련과 기본 군사훈련(8시간)이 내가 군복을 입고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언젠가 군복을 못 입게 되는 날이 오면 그게 은근히 섭섭하다고 했던 말이 예비군 훈련이 끝날 때면 생각난다. 그 말은 즉, 청춘의 끝이 다가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2년 뒤면 서른. 그때가 되면 8년 차가 되기에 민간인 신분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군복을 더 이상 입을 일이 없어진다. 내가 그토록 꿈꿨던 군인이란 신분 또한 과거에 내려놓아야만 한다. 누군가는 후련하기만 할 예비군 6년 차, 나에게는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갈 때 가끔 나이에 의해 놓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젊음이라는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선 나는 이 순간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걸까. 먼 날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길 무렵, 내가 후회하게 될 젊은 날의 나는 무엇일까?


곧 잘 시간이다. 오늘은 꿈속에서 그리운 예전 동기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


am 02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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