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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Aug 25. 2023

가족

나는 아버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내가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때 내 감정을 해소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글을 쓰며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나 보다 오늘도 그런 글이다.


최근 집에 일이 생겨서 이사를 해야만 했다. 회사에 있었던 집과 컨테이너를 정리하고 인근 아파트로 가지고 있던 짐을 옮겨야 했는데, 4인 가족 짐과 기타 회사 물품까지 정리해야 하는 대형 이사였다. 큰 형은 천안에 있어 오질 못했고 부모님은 하필 일이 그때 몰려서 집에 있는 내가 대부분 정리해 주고 아버지 회사 일까지 도와야 했다.

화요일부터 이삿날인 월요일까지 아버지가 회사 일과 집안일까지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만 했다. 아버지도 고맙다 했고 몇 년 간 못 해 드렸던 효도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자존감도 올라가고 스스로가 좋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화근이 된 걸까. 월요일에 이사가 끝나고 이사 온 집에서 인터넷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기사님이 오시기로 한 날, 기사님이 어머니께 전화드려서 아파트에서 인터넷 망을 확인을 한 결과 그간 사용하던 kt망 중에 이 건물이 if 방식(안테나 방식)이기는 하나 오래되어 고장이 난 상태라 dcs방식(멀티 망 방식)으로 상담사님께 따로 연락드려 변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생소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니, 헷갈리기도 하고 어려워서 중간에서 해결을 못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하는 와중에 아버지 지인인 인터넷 매장 아주머니에게 이 일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망 설명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지 그냥 쿡TV로 바꾸면 된다고 했단다(어머니는 그 아주머니께 설명을 드리려고 했지만 처음 듣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횡설수설하셨다고 했다. 그것과 별개로 그 매장 아주머니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본인도 제대로 모르면서 아버지를 무시하는 듯 건성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단다. 아버지는 일하는 와중에 복잡한 용어가 나오는 것도 불쾌한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대충 하려는 아주머니와 기사님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에게 따로 연락하여 나에게 부탁해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기사님은 또 똑같이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며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2~3번씩 바꿔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터넷 TV로 바꾸면 되는 해결책이 나오긴 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인터넷을 다른 걸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당시에는 명의자 신분증 제출 하라는 말도 해서 상황이 좀 더 복잡해지자 답답함에 짜증이 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요금제부터해서 처음부터 다시 알아봐야 하는데, 내 핸드폰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일단 아버지 회사를 가서 확인하려고 했다. 자전거 타고 가려고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이사 짐 정리를 마저 하지 못해서 자전거 키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더운 날씨에 걸어가면서 요금제 확인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 거의 도착할 때쯤 어머니께서 전화하고 진행 상황을 물어보길래 정황을 다시 설명했다. 설명을 하던 와중에 아버지께서 아주머니랑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뭔 또 쿡TV니 뭐니 하면서 생소한 단어가 또 나오고 있었고 아버지는 회사 일도 복잡해 죽겠는데 짜증이 났는지 나한테 걸어가면서 설명하지 말고 도착하고 설명하라며 핀잔 섞인 짜증을 냈다. 나는 걸어가는 와중에 전화해 놓고 왜 나한테 짜증 내냐며 화를 냈다. 이후 어머니께서는 따로 아버지 지인분이랑 연락하고 해결해 보라고 연락처를 주셨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 지인인 아주머니랑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에 도착 후 요금제를 알아보며 아줌마랑 대화하던 중 상담사님은 지니 TV로 바꾸라고 했던데 쿡TV랑 차이가 뭐지 싶어서 '아주머니 근데 쿡TV랑 지니 TV랑 차이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당시에 내 목소리가 아니꼬왔는지 말투가 왜 그러냐며 시비를 걸었다. 본인에게 불만이 있냐며 말을 하길래 나도 반말로 아니 설명을 하실 거면 제대로 알고 말씀해라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지금 아줌마 말투는 고객한테 할 만한 말투는 아니지 않냐며 짜증을 내다가 아줌마가 결국 그냥 요금제 바꿨다고 말하고 해결 아닌 해결하고 전화를 끊었다. 씩씩 거리며 회사에서 집으로 가던 와중에 기사님에게 요금제 변경이 되었으니 변경해 준다고 연락이 왔다. 집으로 걸어가며 화가 안 풀려서 담배를 피우며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근처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보였다. 내 쪽으로 오는 신호가 바뀌는 걸 확인하고 반도 못 핀 담배를 끊고 고개 숙이며 걷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클렉션을 여러 번 울렸다. 나는 담배 냄새도 나고 기사님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그냥 가라고 손짓을 했다(이때 그냥 아버지랑 얘기를 했으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좋게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신호가 바뀌어서 급히 길을 건넌 뒤에 천천히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차 소리가 들렸다. 뭐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차로 나를 칠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창문을 내리더니 흥분하며 내가 쌍욕을 하며 물이 가득 든 물통을 던졌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울분이 속 끝에서부터 차올랐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아줌마랑 싸웠다는 이유가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었다(후에 알게 된 얘기지만, 이건 아버지는 몰랐고 그냥 내가 손짓하면서 무시하듯 지나간 게 그날 일도 안 풀려서 짜증 나는데 자식조차 본인을 무시한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다고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나를 때리려고 했다. 어머니는 왠지 모르게 본인이 다 잘못했다고 나랑 아버지를 뜯어말렸다. 나는 그냥 맞거나 막으면서 할 말은 할 생각이었는데 내 행동이 아버지랑 같이 싸울 기세처럼 보였던 것 같다. 한 번 그렇게 나한테 계속 쌍욕을 박다가 뒤에서 차 오길래 아버지는 잠시 길을 갓길에 대고 다시 나한테 다가와 쌍욕 하며 또다시 손짓하려 하길래 어머니는 또 말렸다. 근데 나도 여기서 폭발하듯이 아버지에게 욕을 했다. 내가 씨발 여기서 얼마나 더 해야 하냐고 할 만큼 하지 않았냐, 왜 매번 나한테만 지랄이냐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욕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욕을 하자 더욱 격분했다. 말리는 어머니를 위협하자 나는 화가 나서 왜 괜히 어머니한테 지랄이냐고 그만 좀 하라고 계속 소리 질렀다. 시골길 한복판에서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도 내뱉었다. 서로 못할 말을 내뱉고 난 뒤 조금 진정이 된 건지 뜬금없이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하는 말이 '왜 일을 똑바로 처리 못해서 부모랑 자식 간에 싸우게 만드냐'라고 했다. 속으로 그 말이 너무도 우스웠다. 결국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치여 주변 사람들한테 맡기다가 답답해서 자식에게 화풀이하는 주제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화를 푸는 게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기사님 기다린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아버지도 반성을 하는 건지 내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우신 건지 회사에서 지내고 나는 이사한 집에서 지내고 있다.

아버지가 없는 집은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너무나도 평화롭다. 이상한 것들로 다닥다닥 붙인 생존을 위한 거지 같은 집이 아니라 처음으로 생긴 평범한 집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적막이 너무 좋다. 한숨 섞인 한탄도 시끄러운 뉴스 소리도 기계 소음도 없는 이곳. 진작 이렇게 편해질 수 있었는데, 나는 왜 참아왔던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진작 그 집에서 벗어났어야 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며칠 뒤면 아버지도 불편함을 느끼고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집 계약이 2년이니 올해 취업을 하고 나면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나를 구속하는 가족이라는 형태에서 벗어나서 경제적 독립을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어머니는 이후로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그간 아버지의 생각을 대신 전달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를 이해되기보다는 그간 내가 해왔던 노력들이 너무나도 허무하고 비참하기만 했다. 근 며칠간 2년 동안 도와드리지 못하고 내내 방에서 숨어있던 내가 처음으로 도움이 되고 사람으로서 가족으로서 보탬이 되었다는 그 사실이 기쁘고 좋았는데, 그게 아버지에게는 당연히 했어야 될 일이었고 우울증이고 불안장애고 나발이고 가족 구성원 중 잉여 인간이 본인의 일을 하는 게 당연했다고 판단했다는 게 너무도 가슴이 쓰리다.


나는 아버지에게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당신에게 가족인 걸까요?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잉여 인간 그 정도인 걸까요...


내가 가족으로 있는 게 당신에게 불쾌한 일만 주는 것 같아서 죽도록 원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밖에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게 연민이 들어 오늘 밤 나를 잠 못 들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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