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한요한-반복

숨겨둔 일기

by 인문규

실연의 아픔만큼 우울증을 돋우는 것도 없다고 했다.

공황까지였던 내 아픔에 우울증이 온 것은 아마도 네가 떠나서부터였겠지.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다가온 네가 다시금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떠났으니 말이다.


내 모든 순간은 너에게 맞춰져 있었다. 부사관을 선택한 것도 학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너를 사랑하려 했던 것도 난 연애가 처음이었기에 당연히 너와 끝까지 갈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너와의 꿈을 위해 너를 점점 소홀히 하는 나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떠나갔다.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더 충분한 사랑을 줬을 텐데 싶으면서도 어쩌면 부사관을 선택한 것이 너를 떠나보낸 가장 큰 계기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항상 사랑이 필요했던 네게 3개월이란 시간은 버티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 발령지가 멀어진다면 장거리 연애는 어린 네가 견뎌내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사랑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 그토록 사랑한다 해놓고 사랑이 식어서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네 마지막 말.

그리고 떠날 거라면 안아주고 떠나 주지 못한 네가 원망스럽다. 결국 마무리조차 완벽하지 않은 상태인 이 이야기의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너의 모든 것을 지웠다. 그랬더니 이제는 꿈에 나와 날 괴롭힌다. 형태는 달라도 목소리는 똑같은 사람으로 나온다던가 아니면 네가 나와서 나와 싸우는 모습으로 매일 같이 반복된다. 이제 그만 날 놓아줄 순 없을까.

더는 너를 싫어하기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 아 이 말은 거짓말이다.

그저 이렇게 반복하며 너를 상상하는 지금이 싫을 뿐이다.


오늘 네가 말한대로 너와 관련된 말들이 적힌 대부분의 글을 지웠다. 하지만 이 글과 《첫》은 지우기 싫다. 내 생일에 사랑한다 해놓고 4일만에 이별을 말하고 떠난 너는 내가 참으로 우스웠나보다. 6월부터 새벽마다 받아주고 말끝마다 여지를 남겨놓고서 끝에가서는 아니라고 말하는 네가 원망스러웠다. 네가 말했던 죄책감과 책임, 그게 정말인지는 나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저 너의 외로움을 달랠 수단에 불과했던 거 아니었나...


네게 있어 나와 있었던 3개월의 시간은 대체 어떤 시간이었을까. 네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잠깐의 너의 외로움을 달래줄 필요성이 있는 사람에 불과했을까.

간만에 네가 내 생일에 준 너의 대한 50문답을 봤다. 10년 뒤에 나는 네게 없었다. 너에게 나는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너의 미래엔 내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료해질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