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고대 축제의 의미가 떠오른다
꼬박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혼자 맞이하는 설날이다. 편의점 야간(금, 토)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 뭐 특별히 외롭다거나 슬프지 않다. 다만 따듯할 때 먹을 수 있는 명절 음식이 조금 그리울 뿐이다. 일 년에 두 번뿐인 친척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하루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지금껏 명절날의 생활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가부장적인 집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든 어른을 배려해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화투를 치고 계셨고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거치적거린다며 나가 놀았다. 그게 아니라면 떡이나 만두 정도를 만드는 일만 도왔다. 예전에 비해 집이 비좁아진 터라, 오히려 그 편이 어머니께서는 편하다고 하셨다. 무거운 일이 생기면 말고는 내가 명절에 하는 일이 없었다. 또, 큰집임에도 막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가득 찬 집을 보면 어색해서 괜히 마당에 묶여있던 발발이를 대리고 산책을 했다. 집 주변이 온통 논밭이라 이맘때면 마시멜로 같은 것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는 너무도 무료해 가끔 그것들을 보면서 발발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말을 걸 때마다 뒤돌아봐줬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어느새 노을이 지곤 했다. 삼촌들은 항상 노을이 질 때 집에 왔다. 그래서 나도 삼촌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발발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된 설날의 분위기는 흡사 작은 축제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들은 술에 취해 블루투스 스피커에 노래를 틀어놓고 엇박자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그럼에도 손에 화투는 놓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자정을 넘기고 새벽 2시가 넘어도, 혈기왕성한 아이들도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잠이 들어도 그들의 흥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40년대 사람들은 항상 저렇게 설날을 즐겨왔을까 싶었다. 학교 수업 중에 엔터테인먼트 스토리텔링 실습이라는 것이 있다. 그 수업에 축제의 기원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고대에 축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고대의 축제는 종교적 성향과 토종 신화를 바탕으로 신에게 음식을 바치며 시작된다. 주로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알리는 숭배의 의미에서 기원된다고 한다. 그 기간만큼은 직위나 신분을 떠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며칠간 술과 음식, 전통춤을 추는 유토피아적인 구조를 갖는다고 했다. 현대의 축제에는 핵가족과 1인 가구의 증가로 그런 종교적 가치가 많이 사그라졌다고 했지만, 어쩐지 할아버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직은 그 가치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정이 넘어간 이 시간 후로 설날이 시작되었다. 내일 밤부터 분주하게 도로 위에 귀향하는 차량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긴 귀향길을 따라 기다린 시간만큼 금전적 이유와 자식 자랑, 본인의 가치관을 남에게 주입시키는 태도로 일 년에 한 번뿐인 행복한 시간을 상처로 가득 찬 명절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