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자주 멈춘다.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한참이나 늦게 따라오고,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눌려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멈춰버린다.
나는 워킹맘이다.
늘 누군가를 챙기며 살아간다.
아침엔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고,
출근길엔 머릿속으로 회의 준비와 오늘의 업무를 정리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다시 엄마의 얼굴로 변한다.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그 뒤에야 내 시간이 조금 열린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 마음은 쉬지 못한다.
밀린 집안일, 회사 일, 아이의 발달 걱정, 교육비 계산…
‘나는 오늘도 너무 부족했어’라는 생각이 고요한 밤을 침범한다.
그러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서서 멍하니 나를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해봤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그 질문은 작은 파문처럼 하루하루를 흔들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오랫동안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잘하고 있다고, 버틸 수 있다고,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렇게 수많은 ‘해야만 한다’에 눌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고 지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열고, 아무 말 없이 SNS를 삭제했다.
사소하지만 내게는 큰 결심이었다.
스크롤을 멈추고 나니, 내 마음속에도 고요함이 찾아왔다.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는 대신, 오랜만에 나의 감정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SNS 속 세상은 언제나 반짝였다.
정리된 집, 건강한 식단, 아이와의 행복한 놀이, 늦은 밤의 독서, 성취 가득한 하루.
나는 그 반짝임에 자꾸 비교하고, 조바심을 내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정작 내 삶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잘 살아보이는’ 삶을 지켜보느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무엇을 할 때 웃음이 나오는지를 잊고 지냈던 것이다.
SNS를 지운 후,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커튼을 살짝 열어 햇살이 들어오는 걸 그냥 바라보고,
핸드폰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아이가 깰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그 잠깐의 시간이 놀랍게도 하루의 나를 지탱해준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쉬는 건 예전엔 죄책감이었다.
누워 있으면 게으른 것 같고, 아무것도 안 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무조건 달리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돌보고, 나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게 단순한 것 같아도,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는 데 정말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
완벽한 식단표도, 모든 집안일을 해낸 하루도,
누구보다 앞선 정보력도…
그 어느 것도 내 마음의 평화를 대신해주지 못했다.
아이의 따뜻한 눈빛,
내가 아무 일 없이 잘 잠든 하루,
벗지 않은 잠옷으로 보내는 주말 아침,
도넛 하나를 아이와 나눠 먹으며 웃는 순간.
그런 것들이 나를 살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 단순해지고 싶다.
비우고, 내려놓고, 덜어내며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싶다.
그건 대단한 목표도 아니고, 화려한 스펙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살아내는 것.
조금은 여유롭게, 조금은 느릿하게.
그리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백.
앞으로도 여전히 바쁠 것이다.
아이도 크고, 일도 계속될 것이고, 나이도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고 싶다.
가끔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지켜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