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한성(3)] 그리움의 성, 호로고루에 올라

by whiteshore
봄날의 연천 호로고루.


육계토성을 지나 임진강이 남에서 북으로 다시 한번 굽이쳐 흐르는 곳에 석성이 하나 있습니다. 검은 현무암의 요새, '호로고루'입니다.


호로고루는 고구려의 성입니다. 313년 낙랑군이 멸망하고, 나제동맹이 파기된 553년까지 240년간 한반도 중부를 놓고 진행된 백제와 고구려의 혈투를 상징했던 장소지요.


남한에도 고구려의 성곽이나 보루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호로고루는 비교적 규모도 큰 편이고, 정비도 상대적으로 잘되어 있죠.


요즘에는 성 자체의 독특한 외형과 수려한 풍광으로 이목을 끄는 곳이 되었습니다. 특히 늦봄에는 연둣빛의 청보리밭, 가을에는 해바라기밭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탁 트인 하늘은 별을 관찰하기에도 좋은 장소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있습니다. 실제로도 호로고루에 쏟아지는 별빛은 태곳적 상고시대의 밤하늘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품게 합니다.


연천 장남로를 따라 어느덧 장남면 호로고루에 도착하니, 신록이 돋아난 나무들 사이로 마치 언덕 위 언덕 같은 구조물이 멀리 보입니다.


성에 오르기 전 우선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전시관 앞에는 실물 크기의 광개토대왕릉비 모조품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이 고구려 유적임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장치이겠지요.


20250411_151841.jpg 호로고루 홍보관과 광개토대왕릉비의 복제품. 이곳이 고구려의 성임을 실감케 해 준다.


홍보관이라고는 하지만 규모는 단출합니다. 그래도 호로고루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모자람이 없는 수준입니다. 토지주택박물관의 조사 결과, 일반 고구려 보루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던 기와가 다량으로 나와 일반 초소가 아닌 사령부가 머무른 주둔지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3472594408907874128.jfif 호로고루에서 출토된 고구려 기와. 고구려 기와는 붉은빛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다. 홍보관에서 촬영.


출토 기와 일부는 전시관의 유리 케이스 안에 진열돼 있는데, 의아하게도 케이스 위에도 깨진 붉은 기와들이

몇 장 빼곡히 쌓여있습니다.


상주 중인 나이 지긋하신 문화해설사님께 여쭈니, 관람객들이 성 여기저기 주워서 하나둘씩 올려둔 것이 어느 사이에 저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성을 걸으니 고구려 때 기와 조각이 하나 밟힙니다.


3472594408909465936.jfif 성 인근에서 나온 기와 조각. 전성기 호로고루의 위상을 말해준다.


전쟁이 없는 초봄의 호로고루는 고요하나 충만합니다. 성은 임진강 강가 30m 높이의 고랑포 절벽 위에 축조됐습니다. 맨살을 드러낸 청보리밭을 지나 석성으로 다가서니 과연 고구려성 특유의 그 단단함과 견고함이 돋보입니다.


특히 동쪽 성벽을 바라보면, 전형적 고구려식 요새임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자연 절벽이 보호하는 성의 다른 쪽과 달리 성의 동쪽은 평지로, 이 때문에 현무암 돌벽이 10m 높이로 성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동쪽 성벽의 일부는 적들을 향해 우들두들 돋아나 있네요. 고구려 성벽의 전형적 구조인 ‘치(雉)’의 흔적입니다.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함입니다.


3472594408909076816.jfif 호로고루의 동쪽 성벽. 성벽 앞으로 고구려 성의 특징인 '치'가 드러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치는 후대에 신라인들이 고구려의 것을 개축해 쌓은 것입니다. 이곳의 현무암을 귀신같이 자유자재로 다뤘던 고구려인들과 달리, 신라인들은 연마 기술이 부족해 인근에서 편마암을 굳이 가져와 성을 수선해야 했다고 합니다.


호로고루 동벽 남쪽에서 느껴지는 상무(尙武)적 기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성벽이 상하 이중으로 쌓여있는데 먼저 성벽을 쌓은 후 성의 아랫부분에 다시 보축성벽을 두른 것이 흡사 철갑을 여러 겹 감은 고구려 무사의 형상입니다.


3472594408920147536.jfif 검은 현무암이 갑주처럼 이중으로 성벽을 둘러쌌다.


성의 모퉁이를 돌면 봄날 임진강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강변 절벽에는 마치 성벽을 처음 쌓았던 그날처럼 솟대가 여러 개 솟아 있습니다. 검은 현무암 성벽, 임진강의 말간 하늘과 어우러진 솟대의 모습이 신화적 기품마저 자아냅니다.


3472594408922162256.jfif 성벽 옆 솟대가 봄의 정경을 더한다.


동측 성벽 뒤편으로는 현대에 만들어진 ‘하늘의 계단’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초병처럼 성벽 위 장대(將臺)로 향합니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장대에서는 임진강과 고랑포구 일대가 훤히 보입니다. 그 너머에는 북녘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장대에서 내려다본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삼각뿔의 형태입니다. 성 내부에는 이렇다 할 유적은 없고 다만, 집수시설의 흔적과 그 위로 방문객들의 ‘감성 사진’ 촬영을 도울 나무 의자 하나만 놓여있는데, 성 전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을 더해 줍니다.


3472594408913068880.jfif 성 내 집수시설의 흔적.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주상절리와 임진강은 또 다른 비경입니다. 초봄이라 낮아진 임진강의 수위로 강의 바닥 일부도 보입니다. 호로고루가 1500년간 이곳을 외로이 지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저 강바닥에 드러나 있습니다.



호로고루가 위치한 지점은 임진강에서도 강폭이 상당히 좁고 수량도 적습니다. 지금 같은 갈수기에는 배가 없이도 도하가 가능하죠. 이곳이 임진강 일대에서도 군사적 가치가 상당한 곳이었다는 의미입니다.


3472594408914948432.jfif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임진강.


임진강은 고대에는 칠중하(七重河)라고 불렸습니다. 물길이 일곱 번이나 굽이쳤다 해 붙은 이름입니다. 그 굴곡만큼 많은 사연이 흐르는 강입니다.


태곳적 전곡리에 혈거인들이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임진강은 평화의 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열리고 나라가 솟으며 비극은 잉태됐습니다. 칠중하는 곧 '전쟁의 강'이 되었지요.


현재도 그렇지만 임진강은 남에서 북, 서에서 동으로 오가는 길목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중국 한사군과 토착세력 간의 경계이자, 통일신라가 당군을 물리치며 통일을 완수한 전장이었습니다. 북방 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조는 물론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임진강은 우리 전사(戰史)에서 그 이름을 지운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임진강 역시 황폐한 고성(故城)과 무너진 보루를 대신해, 콘크리트 벙커와 번쩍이는 철조망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중입니다.


3472594408858336592.jfif 임진강가에 있는 버려진 철조망.


현지 주민들 역시 고구려 유적보다는 아무래도 여전히 분단과 냉전의 흔적으로써 이곳을 먼저 상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하죠. 여기 아직 전방초소가 많지 않습니까. 반년 전만 해도 통제 때문에 포구 쪽으로도 못 내려갔어. 고랑포가 전쟁 전에는 엄청 붐볐다는데.” 주민들의 반응을 택시기사분께 넌지시 들려주니 이런 답이 들려옵니다.


한국전쟁 당시 호로고루에는 무려 북한군의 포대가 있었다고 하며, 전쟁 초기 북한군의 소련제 탱크가 강을 넘은 곳도 바로 이 인근이었습니다. 심지어 훗날 김신조 사건 때 북한 특수부대의 침투로도 이 고랑포 일대의 좁은 여울이었다 전합니다.


전쟁 이후로도 성벽의 존재를 몰랐던 마을 주민들은 대대로 이 큰 언덕을 ‘재미산’으로 일컬었습니다. 당시 생계가 마땅치 않았던 많은 주민들이 그랬듯 인근 구릉이나 산에서 뱀을 잡아내다 팔고는 했다는데, 그 과정에서 흙더미 속에 인공적인 성벽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합니다.


물론 호로고루가 축조된 삼국시대에도 임진강은 백제와 고구려의 패권을 결정한 주요 전장이었습니다.


특히 고대에는 한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을 잇는 ‘자비령길’을 관통하는 강이었습니다. 이 일대의 물길과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자연 잦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호로고루에서 평양까지는 약 150km, 위례성이 있던 서울 송파까지는 55km 떨어져 있으니까요.


3472594452903274576.jfif 호로고루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기와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촬영.


임진강 일원은 백제인들에게는 자신들이 태동한 곳이자 북방으로 뻗어갈 요충지였습니다. 백제가 임진강을 영유했을 때는 멀리 황해도까지 그 영향력을 뻗쳤지만, 반대로 고구려가 임진강을 넘었을 때는 고구려 왕실의 힘이 경북과 충남 일대까지 닿았습니다.


초창기에는 백제가 전장을 주도했습니다. 임진강에 정착한 경험이 있을뿐더러 거점을 한강의 위례성으로 옮기고 체급을 키운 백제는 곧 임진강 일대와 예성강 수계를 빠르게 장악합니다. 국가의 체제가 정비된 이후에는 임진강 일대를 근거지로 해 고구려와의 격전을 승리로 이끌었죠.


369년 백제와 고구려의 첫 전면전이 발생했습니다. 고구려 고국원왕이 직접 2만 명의 군세로 치양(황해남도 배천군)을 침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제 태자가 ‘붉은 깃발’을 든 고구려 국왕의 친위대를 공격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백제는 황해도 신계까지 그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3472594408798138192.jfif 고구려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를 모사한 그림. 고구려군이 붉은색의 깃발과 방패를 들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촬영.


이어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직접 예성강 일대에 출정해 고구려의 공격을 격퇴한 후, 현재의 평양 일대까지 진군해 결국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에 이르죠.


3472594408947374160.jfif 연천 은대리성.


경기 연천역 인근 한탄강 강가에는 작은 성의 흔적이 있습니다. 은대리성입니다. 임진강 일대에 분포한 고구려성의 하나로, 호로고루와 다르게 성벽 일부만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이 축조한 성이지만 백제 토기도 일부 발견돼 고구려 이전 백제의 소규모 군사시설이나 마을이 있었을 가능성도 점쳐지는 곳이죠.


아울러 현재 북한 개성시에는 백제 귀족이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한 청자도 발견돼, 백제의 영향력이 이 일대에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472594408619369296.jfif 북한 개성에서 출토된 호랑이 청자(호자). 백제 전성기 당시 귀족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촬영.


그러나 결국 전세는 역전됩니다. 광개토왕 이후 적극적으로 남진에 나선 고구려는 4세기말 들어 임진강 유역을 점유합니다. 고구려가 임진강을 장악했다는 것은 결국 백제의 방어선이 한강 일대로 내려가게 됨을 의미하죠.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백제는 결국 만주에서 이곳 호로고루를 거쳐 남하한 3만의 고구려 정예군에게 한강을 내주고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성에서 임진강 쪽으로 마저 걸으면 절벽 그 끝에는 ‘망향단’이 나옵니다. 이북에 고향을 두고 떠나온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북쪽을 가리키는 표지석과 호로고루를 주제로 쓰인 시가 적힌 시비도 하나 있습니다.


3472594408910993488.jfif 망향단 바닥에 있는 돌이 정북방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차례상을 올려야 하는 실향민을 위한 배려다.


마침 망향단에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단 앞으로 슬쩍 섰다가 자리를 뜹니다. 나이로 봐선 1세대 실향민은 아마 아닐 것입니다. 사연은 감히 묻지 못했습니다.


파주와 연천에는 실향민들이 많습니다. 이곳에 적을 둔다고 고향길이 열릴 일은 없건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세상을 떠날 때도 그리운 땅을 향해 몸을 뉘었습니다. 북쪽에 머리를 두고 임진강의 차가운 돌무덤에 묻힌 고대인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3472594408852450128.jfif 임진강 변에 있는 고구려식 돌무지무덤(학곡리 적석총).


임진강과 호로고루는 그런 상실이 만연한 장소입니다. 그러니 호로고루는 그리움의 성이요, 임진강은 기다림의 강입니다.


이역만리 이곳까지 끌려온 고구려의 초병은 호로고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의 얼굴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 망해버린 삼한의 마지막 일족은 뿔피리를 불며 나타날 초인을 끝내 기다렸을 것이고, 백제 한성 땅의 늙은 어미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겠지요.


이곳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문득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비에 적힌 전윤호 시인의 ‘호로고루’를 소개하며 답사를 마칩니다.


이 절벽에 성을 쌓고/ 천 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나라 잃은 설움 안고/ 황포 배들이 머문 포구/ 당에서 말갈에서/ 기병들이 몰려오는데/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 네가 들을까/ 머물 곳 없는 슬픔이 현무암을 쌓고/ 스스로 문을 닫으니/ 백만 대군이 와도 열 수 없으리/ 임진강이 마르고/ 좌상바위가 평지가 된다 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으니/ 그대여 어서 돌아와/ 회군의 나팔을 불어주게/ 호로고루 호로고루/ 연천벌을 지나서 고구려까지/ 푸른 바람이 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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