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를 청에, 봄 춘.

by 혁꾸

옆에 있던 그녀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청춘일까?". 그녀가 던진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나도 문득 우리가 청춘일까라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과연 우리는 청춘일까?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마음에,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제목을 써 내렸다. "푸를 청에, 봄 춘." 이 또한 그녀가 장난스레 소리쳤던 말이었다. "청춘은 푸를 청에, 봄 춘 이래. 푸른 봄!"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어느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잊은 채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녀와 통화를 하던 도중, 문득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라 그녀에게 청춘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쓸 예정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도 문득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푸를 청에, 봄 춘.


청춘이란, 설익은 열매와 같다. 아직 익지 않은 열매들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그런 모양새다. 어릴 적 설익은 감이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뭣도 모르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떫음. 어찌나 떫던지, 20년이 지난 지금 설익은 감을 베어 무는 상상만 해도 혀에서 그때 그 떫음이 느껴진다. 감뿐만 아니라, 딸기도, 사과도, 수박도 모든 열매들이 그렇다. 설익은 것들은 단맛이 덜해 밍밍하고, 새콤하다기보단 시큼하며, 감처럼 다신 먹고 싶지 않을 만큼 떫기도 하다. 아직 그 열매들의 진정한 맛과 색과 향을 갖추지 못한,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계절이 지나는 바람을 맞으며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마치 우리의 청춘과 같다.


청춘,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갖추지 못하는 시기다. 이십 대 후반,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청춘의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꽤 괜찮은 인생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뭘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굴 만나고 있으며, 이 사랑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와 같은 기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마저 명확하게 세워지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나아가야 할 방향 정도는 짐작이 가능한 수준이 된 것 같다. 그 기준은 청춘의 시기에 겪는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볼꼴 못볼꼴도 많이 봐보고, 이것 저것 별것도 많이 해봐야 하며,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답거나 끔찍한 경험과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기준이 자연스레 정해지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갖가지 과일이 있듯이 우리도 갖가지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계절마다 익는 과일이 다르듯, 우리의 인생 또한 달콤해질 시기는 다르다.



다할 궁, 모자랄 핍


어릴 때는 참 궁색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벌어도 벌어도 모자라는 것이 돈이다. 뭐 어릴 때 아르바이트를 해봤자, 술 마시고 노는데만 집중해도 금방 가벼워지는 것이 지갑이니까. 이렇게 궁핍한 와중에도 기특하게 하루하루 아껴가며 돈을 모으는 친구들이 있다. 돈을 모으는 건 존경받아 마땅하나, 어릴 때 목적 없이 돈을 모으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25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의미 없이 통장에 돈을 모았었는데, 의미 없이 모이는 돈이 썩 뿌듯하지는 않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쌓였던 돈은, 2주 만에 순식간에 기획된 러시아 여행에 모조리 쏟아붓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좋았지만, 그 의미 없는 돈을 모으면서 곪았던 배와, 뜨겁게 뛰지 못했던 심장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처음부터 여행을 목표로 돈을 모았었다면, 배를 곪아도, 심장이 뜨겁게 뛰지 못한 시간도 꽤 행복했을 것 같다.


어릴 때는 굳이 돈을 모으려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에 돈을 쓰라는 말이 있다. 돈이 없을 때 조금조금씩 몇 년을 모아봤자, 돈을 벌게 된 뒤 몇 달만 저금해도 돈 없을 때의 몇 년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는 말이었다. 정말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한창 청춘에 돈이 없을 때는, 굳이 돈을 모으기보다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것이 현명하다. 청춘이 흐르고 나면, 되고 싶은 것들도, 하고 싶은 것들도 현실의 뒤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퇴색적인 청춘의 의미


청춘이니까 아프다. 청춘이니까 힘들다. 청춘이니까 버텨라. 우리는 사실 청춘이니까 아플 필요도, 힘들 필요도, 버틸 필요도 없다. 가끔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청춘이니까 힘들어도 돼"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머리가 핑핑 돈다. 청춘이니까 힘들어도 된다니, 늙어서는 안 힘든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 말들의 의미는 아픈 일들을, 힘든 일들을, 이겨내고 일어나라는 격려의 의미일 뿐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래 이렇게 힘든 일들은 앞으로도 내 앞에 도사리고 있을 거야, 겨우 이런 걸로 기죽지 말자. 파이팅!'하고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긴 하나, 세상에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사람은 열명 중 한 명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청춘 이어도 아플 땐 간병받아야 하고, 힘들 땐 쉬어야 하고, 슬플 땐 울어야 한다. 참아야만 하는 건 없다. 아플 때 참 건, 힘들 때 참 건, 슬플 때 참 건 전부 골병이 들기 마련이다. 언젠가 아픈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견뎠던 때가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속만 아픈 시간이었다. 아픈 시간들은 참아도 지나가고, 속 시원하게 풀어도 똑같이 지나간다. 모든 인생에 불황들을 견뎌낼 수 있는 약은 오직 시간뿐이다.



우리는 아직 청춘일까?


팔팔해 보이는 어린 친구들의 시간이 부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어느 시간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청춘이 이십 대 후반까지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냥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물론 우리의 젊음이 푸른 봄처럼 보이는 것은, 주름지지 않은 피부와, 넘쳐흐르는 호르몬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건 청춘이라는 단어 그대로 매년 돌아오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이 늙어가더라도, 푸른 봄, 여름의 파란 파도,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낙엽과, 지붕 위에 소복이 쌓여가는 겨울까지 말이다. 어릴 때와 같은 새로운 즐거움은 덜하지만, 지나온 시간만큼 그 계절 속에 깃든 향긋한 추억의 향들을 느낄 수도 있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하겠다는 의지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분명 청춘은 돌아온다. 청춘의 숨겨진 의미는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순간을 열심히 즐기라는 것일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