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투덜대고 싶다.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여느 도시들과 달리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열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종착역에서 하차했고, 기차역에서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모습은, 좁은 댐의 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넓은 강과 같았다. 모스크바와 같은 대도시에는 소매치기가 그렇게 기승을 부린다고 하던데, 정말 눈 깜빡하면 코베인 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신없는 곳이었다. 등으로 돌려 멨던 가방은 롱 패딩 안으로 숨기고, 손에 든 셀카봉은 높게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겉 주머니의 소지품들은 모두 속 주머니로 옮겨 담았다. 휴대폰이라도 잃어버리는 날엔 정말 큰일이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여행객을 위한 3일 자유이용권을 구매했는데, 3일간 지하철, 버스, 트램 등 여러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할 수 있었다. 여행자에게 아주 유용한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게다가 아주아주 놀라운 것! 지하철이 무슨 2분에 하나씩 온다. 한창 발걸음이 뜨거운 시간대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러시아를 여행한 지 어느덧 2주가 넘은 지금, 낯선 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이제 어렵지 않다. 방향도 한 번에 찾거니와, 환승도 단숨에 해냈다. 우리는 금방 숙소가 있는 모스크바의 어느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키보다 두배는 커다란 문을 낑낑거리며 밀었다. 문을 왜 이렇게 커다랗고 무겁게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통뼈라 그런 거라면 인정하겠다.
더 이상 러시아의 호스텔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가 않다. 우리를 반기는 건 4층 높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안녕? 내 무거운 캐리어야? 너를 버려 버리고 싶구나' 우리는 낑낑대며 4층 높이의 계단을 올랐다. 러시아의 계단은 리나라의 일반 계단과는 다르다. 길이가 다르다. 매우 힘들다는 말이다.
모스크바 야경이 훤히 보이는 참새 언덕을 다녀오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먼저 배고픔을 달래고 싶었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는 아주 커다란, 버거킹이 있었다. '만세!' 버거킹은 아주 적당한 가격에, 커다란 햄버거를 가져다주는 합리적인 식당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면 건너편에 모스크바의 외무성이 보인다. '와'소리가 나올 정도로 커다랗게 높이 솟아있다. 마치 63 빌딩 4채가 붙어있는 크기의 해리포터 성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외무성의 저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리포터의 편지를 전달하는 부엉이들이 날아다닐 것만 같다.
버거킹에서 아주 합리적인 배부름을 느꼈다. 아, 가격과 크기에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면 바로 맛이다. 이 도시의 음식 중에 최고의 맛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 버거킹을 선택하겠다.
밥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야경을 보러 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긴 여행에 우리는 지쳐있었다. 나의 낭만 에너지가 거의 바닥을 보였다. 우리의 선택은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푹신한 나만의 침대에 누워 해가 질 때까지, 나는 잠에 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리고 상쾌했다. 친구들을 깨우고 찝찝한 기분을 물리치기 위해 샤워를 했다. 약 한 시간가량의 준비를 마친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어둑어둑한 저녁, 아직 달이 해를 밀어내고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모스크바의 지하로 향했다. 따뜻하고, 흐릿한 전조등이 켜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없는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진짜 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다란 에스컬레이터였다.
어느 지하철역에 내려서 역의 출구 앞에 있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우리를 참새 언덕에 데려다주었다. '와!' 아까 해리포터의 성 같다고 했던 러시아 외무성이 그저 그런 건물이 되어버렸다. 눈 앞에 '모스크바 주립 대학교'의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꽤 멀리 있었지만, 그 웅장한 자태가 한없이 느껴졌다. 진짜, 진짜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같다. 하늘을 뾰족하게 찌르고 있는 지붕과, 그 기둥을 지키고 있는 석상들, 저기에 가면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가보고 싶었지만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아쉬운 대로 우리는 참새 언덕의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야경이 너무 아쉽다. 우리나라의 북악산 팔각정에서 보는 야경이 훨씬 예쁘다. 북악산의 야경이 별로라는 말은 절때 아니다. (북악산 야경은 진짜 예쁘다.) 야경을 보기에 참새 언덕은 너무 낮은, 말 그대로 그냥 언덕이었다. 눈 앞의 커다란 경기장이 아경의 반절을 가리고 있었고, 너무 낮은 곳에서 보기에 도심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솔직히 한 없이 실망스러운 야경이었다.
우리는 모스크바 강을 건너는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참새 언덕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로 모스크바 강을 건너 내려온 경기장. 내 러시아 여행에 있어 최악의 실수 중 하나였다. 케이블카는 루즈니키 공원의 끝자락에 우리를 내려줬으며, 공원 내에 있는 '보로비요비 고리 역'은 이용할 수 없는 역이었다. 택시를 부르고 싶었으나 공원 안으로 택시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공원의 입구를 향해 한없이 걸었다. '아오 다리야...'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공원의 입구, 종아리가 얼얼했다. 입구 옆에는 크루즈선이 보였다. 모스크바 크루즈 투어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택시를 타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모스크바 시내로 향하는 버스가 때맞춰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모스크바의 시내로 향했다. 다행히도, 좌석이 넉넉해 앉아갈 수는 있었다.
붉은 광장으로 가는 거리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에 붉은 광장을 구경할 예정이었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바로 햄버거!.... 햄버거다. 하지만 이번엔 특별한 프리미엄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바로 모스크바의 수제버거 맛집 '파르쉬'라는 곳이었다. 주방이 오픈되어 있어서 우리의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햄버거의 패티 소리와 냄새에 뱃속의 거지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신기하게도 여기는 햄버거와 와인을 세트로 같이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도 없거니와, 햄버거에 무슨 와인이야, 햄버거에는 콜라다! '파르쉬'의 햄버거의 맛은 꽤 괜찮았다. 기름기와 육즙이 적당한 패티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 햄버거는 손바닥의 반만 하다. 세입이면 깔끔하게 끝낼만한 크기였다.
햄버거를 먹은 뒤, 우리는 붉은 광장으로 향하는 아르바트 거리를 걸었다. 당연히도, 이제껏 봐왔던 러시아의 아르바트 거리 중 단연 최고의 거리였다.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이 낮게 수놓아져 있었고, 알록달록한 유럽풍 건물들의 외벽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몇몇 건물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빨간 리본으로 포장되어 있기도 했다. 반짝이는 거리를 정신없이 걷다가 보니 어느새 코 앞에 붉은 광장의 모습이 보였다.
제일 처음 마주한 건 모스크바의 주립 역사박물관이었다. 아주 깔끔한 갈색으로 칠해진 외벽에 진짜 진짜 해리포터에 나오는 건물처럼 생겼다. (진짜 해리포터 없었으면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지었을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정교하고 대칭적인 창문들과 성의 돔들에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붉은 광장 한가운데는 놀이동산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크리스마스 플리마켓들이 있었고, 광장에는 그릴에 굽는 소시지 냄새가 가득했다. 붉은 광장의 끝에는 성 바실리 성당이 있었는데, 크렘린 궁의 둥그런 돔이 비슷했지만, 성 바실리 대성당의 돔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패턴을 뽐내고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성당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주아주 놀라웠던 것은 크렘린 궁의 성벽이다. 크렘린궁 외벽은 여러 탑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성벽이 진짜 높이 올라가 있었다. 벽은 어찌나 밋밋하게 쌓아 놓았는지, '진짜 어떻게 해도 이 벽을 오를 수가 없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철통방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성벽이었다. 멀리서 보면 여러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닌 그냥 한 장의 갈색 종이 같다. 정말 깔끔하고도 정갈하며 높았다.
모스크바의 건물들은 아주 거대하지만 웅장한 느낌은 없었다. 정갈하고 정교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도시였다. 게다가 모스크바의 밤은 새벽이 지나도록 활기차다고 한다. 붉은 광장의 축제를 새벽까지 즐길 수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의 체력은 부족했고, 여행에 탈이 날까 두려웠다.
붉은 광장의 입구를 빠져나가 집으로 가는 역까지 가는데도, 크리스마스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 주코프 원수 동상 앞의 커다란 트리 앞에서는 크리스마스 연극이 한창이고, 산타할아버지의 작은 집들에서는 캐럴송이 흘러나왔다. 언젠가 다시 모스크바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돌아오고 싶다. 그때는 모스크바를 처음으로, 팔팔한 체력을 가지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