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일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침대 위에 편하게 뻗어 있는 다리는 움직이지가 않았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여행 일정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거렸다. 어느덧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슬슬 카잔 성당과 피의 구원 사원을 보기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5시쯤 되었을 때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는 저물어 하늘은 깜깜했지만 아름다운 건물들의 조명이 거리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비가 슬슬 오고 있었지만,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카잔 성당으로 향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비 오는 거리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온통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우산을 쓰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관광한 것이 바로 성당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기대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저 “관광 지니까”하고 생각하며 카잔 성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커다랗고 웅장한 카잔 성당을 보자마자, “아, 러시아에서 본 성당 중 가장 멋있는 성당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잔 성당 앞에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는 커다랗고 굵직한 기둥이 너무 인상 깊었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당을 지었을까. 카잔 성당의 내부도 넓고 높았으며 천장 기둥 벽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문양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피의 구원 사원을 보기 위해서 이동했다. 하지만 피의 구원 사원은 가장 높은 탑이 공사 중으로 천막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공사를 하는 모습 때문에 사원의 외관을 조금 해치긴 했지만, 다른 교회와 성당과는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슬람 사원에서 볼 수 있는 둥그런 돔 형태의 탑이 솟아 있었고, 색도 황금색 하늘색으로 다채로웠다. 하지만 사원의 나머지 외관은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또한 밤에 지나다녀야 예쁜 도시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밤에 본 카잔 성당과 피의 구원 사원을 밝을 때 봤다면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매력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두 교회 모두 건물 조명이 하나도 없어서 밤에 보면 어둑어둑하기만 하다. 자세히 보기도 꽤나 힘들었다. 전날 너무 많이 걸은 탓에 너무 늦게 나왔지만, 조금 더 빨리 준비해서 나왔다면, 더 다채롭고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 밤엔 유흥을 채우기로 했다. 우리는 어느 술집에 들어가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시며 지금까지의 여행을 뒤돌아 보았다. 다난하기도, 평범하기도 했었던 재밌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많이 생겨 있었다. 시시콜콜한 얘기에 웃고 떠들던 우리는 밖으로 나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맥도널드에서 먹었던 치즈버거. 짜고 맛없었지만 즐거운 여행의 행복한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