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에 가다
사람들은 쉬고 싶을 때 한적하고 느긋한 장소를 떠올린다.
사람들이 없는 한가한 곳에서 음료를 들고 드러누워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 최고의 휴식이다.
그런데 워낙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다 보면, 반대의 기분이 된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엄청나게 지루해지면,
풍경을 떠나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도시의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구라고는 매일 보는 회사 사람들이 전부인 작은 마을.
누군지는 몰라도 얼굴은 익숙한 사람들을 계속 지나치다 보면,
낯선 타인들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외국에 가서 새로운 건물과 환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외국인들 자체로 신기하듯이,
오늘 지나치고 나면 다시 볼 일이 없을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는 데에서 왠지 모를 활력을 얻는다.
이번 연휴에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큰 딸이 말했다.
엄마 나 사람 구경 하고 싶어.
놀이공원이나 여행 액티비티를 기대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람 구경 자체가 아이에게는 끝없는 호기심과 놀라움을 주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생명체이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 연휴에 더 이상의 자연이 아니라 서울의 대형 마트, 멀티플렉스 쇼핑몰, 이케아를 찾는 경험을 했다.
사람 구경은 왜 재미있을까? 일단 사람이 많은 곳에는 구경거리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고객수요를 유지하기 위한 인프라와 서비스가 있다.
이는 다양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편리성과 동시에 신선함을 제공해 준다.
마침 소파를 장만할 일이 있어 이케아에 들렀는데,
집이 있는 시골에서는 가구점이 따로 없어 인터넷으로만 보던 가구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했다.
더 많은 재질과 폭의 물건들을 이것저것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다양하고 유니크한 볼거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구점 푸드코너에서 세계의 음식도 맛보고 내부는 웅장한 인테리어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가득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어리바리해지는 나.
이렇듯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새로운 경험이 제공된다.
교류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쉬다 무료해질 때 유튜브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것은 완전 다른 느낌이다.
즐거움 들뜸, 때로는 피로한 표정으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사람들이 어쩐지 소란스럽다.
그러면서 점점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마저 평소와는 다른 자극이 된다.
학생 때 열린 도서관에서 오히려 공부가 더 잘되는 느낌이 든 적 있었는가.
소란스러운 백색 소음들 사이에서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진다.
엄청 멋진 풍경과 광활한 대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옆에서 같이 보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이 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센트럴파크 같은 경치도 바글거리는 뉴욕에서 더 빛을 발한다.
사람들이 대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이 활성화되었지만,
꼭 일자리 자체가 아니더라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해서 아닐까.
원단장사를 하다 받은 스트레스와 설움을 산골에서 풀며 자연인이 되었다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분이 6년 후에 다시 도시로 돌아갈지 고민하며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6년 몇 개월 동안 느낀 게, 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 없이는 아름다움이 없는 거죠. 정말 좋은 경치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이 여행 다니고 볼 때, 그 자연이 더 빛이 나는 거지. 매일 같은 자연을 혼자서 쳐다보면 그게 그거죠. (ebs 도시예찬 중 김철용 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단지 군중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느껴지는 안정감. 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한계가 있나 보다.
엄청난 고밀도의 사람들 속에서 오래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슬슬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집에 가고 싶어도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세계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이케아 건물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지도로 현 위치가 표시되긴 하는데, 지름길은 또 뭐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건지 같은 길을 뱅뱅 돌고 있었다.
야무지게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진격하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잠이 들어버린 아들을 안고 진땀을 빼며 출구로 나왔다.
서울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4시간의 대장정이다.
차에 타는 것만으로 답답해하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며 이동했다.
사람이 많으니 차도 많다.
중간에 트럭이 고장 났는지 견인차와 사고 수습 차들이 많이 왔는데,
그 이후로 주차장처럼 길이 꽉 막히는 게 눈으로 보였다.
역시 도시에 산다는 건 쉽지 않구나.
고독하고 지루한 것을 대신해서 자유로움과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편안함을 맞바꾸는 기분이다.
사람 구경은 당분간 아쉽지 않도록 실컷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며 괴로운 경험을 하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