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시스템 vs 열받은 인간
온가족이 차를 타고 주말에 영화를 보러갔다.
북적북적한 분위기에 조금 정신 없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겨우 다시 차로 돌아와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영화 고객은 주차가 4시간 무료였기에 부스에서 인증하고 통과하려 했는데,
이게 무슨 일? 차단기 부스에는 사람이 없었고 영화표를 인증할 시스템도 없었다.
"요금 14,000원입니다."
아니, 요즘 영화도 비싸서 큰 맘 먹고 5만원가량 내고 관람했는데,
그렇게 큰 주차비까지 낼 수는 없잖아?
당연히 출차장소에 사람이 있을 줄 알았던 옛날 사람인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마침 신용카드 투입기 옆에 연락 버튼이 있기에 눌러보았다.
뚜뚜뚜뚜뚜. 한참의 신호끝에 연결된 통화.
"예, 말씀하세요."
"아, 네. 저 방금 영화보고 나온 관람객인데요. 혹시 어떻게 인증해야 주차할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잘 안 들립니다."
"저 영화 관람객 주차..."
"뭐라고요? 여보세요. 안 들립니다. 여기 영화관이 아닙니다."
통화 품질이 너무 안좋아서 간단한 말조차 할 수가 없다.
말문이 막힌 사이, 갑자기 내 뒤로 다른 차들이 내려왔다.
출차를 해야하는 다른 차들을 내가 막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얼른 계산하고 다시 조치할 생각으로 차를 빼주었다.
그런데 6시 직원 퇴근시간이 지나버린 금요일 저녁. 어디서 어떻게 이를 해결한단 말인가?
갑자기 뭔가 돈을 떼인 것처럼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꼭 환불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안내도 없이, 처리를 할 수도 없는 기계만 달랑 세워두고
전화도 안받고 (나와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음) 손님을 등한시 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나처럼 멋모르고 그냥 주차비를 내버리는 손님이 꽤 많을 것 같았다.
일단 주말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는 월요일이 되었을 때, 영화관이 속한 주차 건물 측에 전화를 걸었다.
3번의 연결 끝에 담장자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아주 심플했다.
이 문제는 영화관에 전화해서 직접 해결해야 하므로,
영화관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보시라는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다시 곧바로 영화관에 전화를 건 나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OO영화관입니다. 빠르고 편리하게 원하시는 번호를 선택해주세요."
무조건 기계랑만 통화할 수 있도록 ai 연결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떤 지점에 따로 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적으로 한 번호 뿐인데 그마저 ai 연결이라니.
1번부터 8번까지 번호를 선택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7번 할인안내 8번 단체예약 이후 그 어디에도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번호는 없었다.
ai에게는 내 상황을 설명할 수도 후속조치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도 없다.
게다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카드 취소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지나버리는 거 아닌지 불안해졌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담원 연결이 아닌 다른 번호를 통해 들어가서 상담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방법을 썼는데,
그마저도 연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님 연결이 되고 있는 건 맞는지
아무런 고지도 없이 무한히 대기하라는 신호연결음만 흘러나왔다.
Rrrrrr. Rrrrrr.
10분이 지나도록 아무 기약없이 이어지는 연결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진상 행동을 하거나 갑질을 하는 것은 큰 문제다.
기업 측에서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ai에게 이임한 뒤 고객센터 자체를 없애버린 것인가?
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텐데.
그냥 기계를 내세우면 어떤 사람이든 한꺼번에 나가 떨어질 테니 나몰라라 해버리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확히 14분 50초를 기다렸을 때, 불시에 상담원 연결이 되었다.
연결이 된 것만으로 감지덕지했던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공손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알고보니 해당 영화관은 표를 발권받을 때 주차등록을 해야되는 시스템이었는데,
내가 온라인으로 표를 산 데다 엘레베이터와 안내문 한 쪽에 작게 붙어있던 공지사항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구매자로서 그런 안내는 따로 받지 못했음을 알리자,
다음부터는 지금 안내받은 대로 해주시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환불은 곧바로 이루어졌지만, (설명해주신 직원분 감사합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 이어진
나의 기계와의 싸움은 그제야 막을 내리는 기분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한 속옷을 2장 샀다.
1+1 할인 제품으로 1개 제품을 사는 것보다는 조금 할인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그런데 물건이 도착해서 보니 속옷이 1장 뿐이었다.
그래서 어찌된 일인지 묻기 위해 회사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1:1톡은 상담가능상태로 되어있긴 했지만 답장은 없었고, Q&A 창구 문의 그 어떤 것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도대체 물건 배송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냥 자동화 시스템인건가? cs부서까지 사람을 배치할 수는 없어 배송부서로 모두 옮겨 버렸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상대편에서 일방적으로 소통의 창구를 닫아버리니
내가 따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러는 사이 야무지게도 구매확정 기간이 지나버려 교환을 받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물건을 다 보내지도 않아놓고 구매가 확정되었다는 안내메일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구매가 확정되었으니 리뷰를 통해 항의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어차피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묘하게 힘이 빠져 버려 그냥 두었다.
리뷰를 관리하는 사람도 전부 배송부서로 옮겨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아마도 이런 상황이 회사 쪽에서는 이득이겠지만, 그걸 이득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나?
인간의 자리를 대체해 버린 ai.
회사로서는 비용도 아끼고 책임감도 버리니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나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미지가 깎일 것이다.
이미 Q&A에 나말고도 같은 상황인 고객들의 항의가 여러차례 올라와 있었다.
이런저런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그 자리에 사람이 없어버리면 된다. 회사로서는 얼마나 편리한가?
분명 문제가 있었고, 나는 정당하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내가 아무리 답답해도 시스템은 나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마치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을 느꼈고, 화가 났지만 결국 알아서 지쳐 버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화가 났던 건 단순히 손해본 가격 때문이 아니라 '나는 지금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고객이 아니라 그냥 처리 대상이었다.
만약 거꾸로 내가 돈을 덜 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무슨 수를 써서든 회사에서 미납분을 받아갔을 거라고 확신한다.
선택적인 책임감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요소였다.
정해진 시스템조차 나에게만 엄격하고,
회사는 언제든 유리한 점만 취해가면 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회사가 ai에게 떠넘긴건 단지 '답변'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였다.
고객이 어디 묻고 싶어도, 돌아오는 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적인 문장뿐이다.
문제의 원인도, 해결 방안도 명확하지 않은데, 누구도 그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이 빠진 대응에는 사과도 없고, 공감도 없었다.
결국 나는 무시당한 기분만 안은 채, 혼자서 불쾌함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배운 점도 있다.
바로, 듣는다는 것의 힘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 닿을 때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정해진 반응"이 아니라
진짜 마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요즘 많은 곳에서 '경청'을 하나의 서비스 기술로 채택한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불만을 줄이기 위한 방법론으로 말이다.
하지만 '듣는다는 것'은 결코 기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일은 단순한 서비스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존중이고, 관계이고, 신뢰의 시작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다.
말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그 자리가 비어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조금은 의미있는 경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