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아나라 커피 에너지!

by Ms 윤

AM 7:00


한동안 커피를 못마셨다.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고 잠도 깊이 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또 늘어난다.

생각보다 커피가 주는 에너지는 큰 기쁨이었던 건지,

최근 종종 우울했던 것도 생각해보면 그 때문 아닌가 싶다.



커피 한 잔에 기대던 그 짧은 휴식과 위로가 사라지니,

하루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침의 고요한 시간에 구수한 향이 나는 커피 잔을 손에 쥐고 있던 그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녹아내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 온기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향긋한 허브차 시원한 탄산수 모두 훌륭하지만 커피만한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커피를 마셨을 때 쨍하고 솟아나는 에너지가 그리웠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뭔가 생기가 도는 느낌.

그 감각이 사라지자 행복도 같이 사그라드는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허전함 속에서도 일상은 멈추지 않았고, 해야 할 일들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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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없는 시간 버티기


에너지가 없을 땐 정신력이 아니라 루틴으로 버틴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동작, 고민 없이 손이 가는 순서들.

하루를 억지로 끌고 나가야 하는 순간엔 그런 루틴이야말로 나를 살리는 작은 구조물이다.



이 닦고, 물 끓이고, 밥 짓고, 정리하고, 아이 챙기고, 다시 치우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 속에서 몸은 일단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마음도 조금은 따라가곤 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일상의 뼈대.

그게 바로 루틴이었다.



커피처럼 쨍한 자극은 없지만,

기운이 없을 때도 내가 버틸 수 있도록 긴시간 동안 나를 지켜주는 루틴은 따뜻한 담요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담요는 아늑하면서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그 담요를 살짝 걷고, 바깥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 순간이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taylor-daugherty-rzf8EDR3DR8-unsplash.jpg Unsplash의 taylor-daugherty



인내의 시간 끝 커피 한 모금


긴 시간 금기 아닌 금기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오랜만에 컨디션이 괜찮아 콜드브루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역시나. 이래서 디톡스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맛이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머릿속이 개운하게 맑아지고,

심장으로부터 온 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에 평소처럼 보이던 아침 풍경이 조금 더 선명하고 활기차게 느껴졌다.

별일 아닌 하루가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 사소하지만 강력한 변화.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기운이 솟아나니 우울하지 않은 기분이다.

단지 에너지가 조금 돌았을 뿐인데,

내가 보는 세상도, 내가 말하는 태도도,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도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잠깐 잊고 있었던 나의 밝은 면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조금만 가벼워져도, 마음이 이렇게 밝아질 수 있다는 걸 잊고 살았다.

카페인은 피곤하다는 신호를 일시적으로 차단해준다고 한다.

카페인이 우리 신경에 붙는 아데노신이라는 피로물질을 대체해 버려서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데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증가시켜 기분이 상승하도록 만들어준다.



jaime-handley-elaijFnaBMg-unsplash.jpg Unsplash의 jaime-handley



생각해보면 커피가 바꾼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평소에는 루틴이 나를 대신해 삶을 붙잡아 주지만,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이 완전히 화사해지는 기분은 나만 알 수 있는 감각이다.

지나치게 반짝이지는 않지만,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일상의 균형.



이렇게 드물게 에너지가 돌아왔을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찾기 위해

미루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의무의 시간'이 아니라, '의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싶은지 빛을 내는 신호가 된다.



거의 무채색인 날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줄기 색이 번쩍 비치는 순간.

해야할 일을 잠시만 미뤄두고 나는 짧은 글을 쓴다.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만의 에너지를 발산해본다.



심장아 뛰어라



그리고 문득, 다시 느낀다.

‘이런 시간이 참 좋다’는 감정.

에너지가 차오른다는 건 단지 활기나 생산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선명한 체감이기도 하다는 걸.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은 그보다 더 멀리 가고,

잠깐 잊고 있던 내 안의 색깔들이 천천히 깨어난다.



오늘은 그 색을 꾹꾹 눌러 담지 말고,

조금쯤 흘려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허밍으로, 글로, 혹은 나만의 방식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그러나 나에게는 꼭 필요한 표현.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니 너무 좋다.

혼자만의 금기였던 것이 풀리니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역시 지금이 너무 기쁘다.

이 오랜만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



커피 한 잔 마셨더니 에너지가 솟아나서 써 본 즉흥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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