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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 윤 Jun 18. 2024

두둥-. 영화감상 리스트도 단짠단짠이 필요해.

여유 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복권당첨되고 싶다. 복권당첨돼서 편안하게 좀 쉬고 싶다. 

그러면서 한 번씩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돈이 많아서 꼭 필요한 것들을 어느 정도 장만한 뒤에,

순전히 개인의 취향으로 집을 꾸미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온종일 좋아하는 책으로 둘러싸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공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상을 실컷 하는 것을 공상할 정도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즐거운 상상은 잠깐이나마 정신적 휴식을 제공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책이라는 매개체보다 어쩐지 영상이 좀 더 익숙하다.

텍스트를 읽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조차 좀 더 아끼고 싶은 마음인가.



그럼 가만히 앉아 쉬는 게 더 좋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상을 보는 게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도 더 편안할 때가 있다.

뭔가에 흥미를 일으키고 집중하는 것이 시간을 잘 흐르게 해 준다.

이동 중이나 짬짬이 시간에도 이용할 수 있는 쉬운 접근성이라는 장점까지,

영상은 오디오와 시각적 요소의 조합을 통해 매력적인 콘텐츠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해준다.



단편적인 정보가 들어있는 유튜브 영상들도 재미있지만,

약간 여유롭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을 땐

그보다 좀 더 스토리가 있고 풍부한 영상미가 있는 영화에 마음이 끌린다.

머릿속을 휑하게 비우고 긴 시간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흥미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 자체는 당연히 좋지만,

어떤 영화를 고르는 것이 나의 취향을 가장 잘 맞춰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어떤 영화를 봐야 내가 가장 즐거울까?

그런데 의외로 이 작업이 영화 보기 중 가장 까다로워서,

영화 감상이라는 취미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든다.



뒤적뒤적. 영화 목록을 주욱 내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뒤적뒤적.



사진 unsplash의 clement




뭘 봐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일단 추천받은 명작을 고르게 된다.

명작이란 건 보통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적인 스토리텔링과 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다양한 복선 상징을 넘어서 촬영기법과 영상까지 훌륭한 명작을 고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시간을 아끼는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 담긴 명작보다도,

킬링 타임에 더 가까운 가벼운 영화들을 보며

재미와 위안을 얻을 때도 많다.

명작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계속 보게 되는 나만의 취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 여러 번 보게 된다.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좋아서

사랑스러운 주인공이 꿈을 찾는 알록달록 예쁜 영화들을 주로 봤다.

그런데 취향이란 것도 일률적이진 않은가 보다.

요즘은 빠른 액션이나 마라맛 범죄물에 빠져 자극적이고 대담한 영화에 흥미를 붙였다.



심장이 뛰는 액션과 강렬한 스릴러는 초반부터 시선을 잡아 끈다.

돈이 많이 들어간 게 분명한 추격전과 입이 떡 벌어지는 스턴트,

예측할 수 없는 빠른 전개,

거기에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놀라운 반전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감각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착해 있다.



너무 많은 생각이나 연구를 할 필요 없이,

가볍고 편하게 여러 감성들을 주입해 준다.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 보면 또다시 달달한 후식처럼 귀여운 영화가 그리워진다.

마치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이,

단짠단짠 한 영화장르를 오가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윤곽을 잡아간다.



뭐, 대단한 기준 없이 끌리는 대로 퍼먹는 취향이지만,

그건 그거대로 나에게 메시지와 힘을 주니까 힐링이 된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내가 좋아하고 계속 돌려보면 그것이 나만의 명작이다.



사진 unsplash의 jason leung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월요일 아침.

아이들을 허둥지둥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기저기 집안살림들로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쓰레기봉투부터 집어서 거실부터 하나씩 정리해 나가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소파에 퍼져버리기도 한다.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 육아, 퍼져있기.

빨래, 정리정돈, 각종 대소사 해결, 육아, 퍼져있기.

매일 똑같은 패턴에 점점 감흥도 없는 느낌이다.



그럴 때 손을 뻗어 리모컨으로 영화 ott 플랫폼을 켠다.

두둥. 하는 오프닝 효과음에 드디어 약간의 설렘이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액션물은 보통 초반에는 정신없는 듯 산만해서

간간히 웃긴 장면을 보며 살짝 웃게 만드는 정도인데,

몇 분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빠져들어 세상의 업무를 잠시 잊게 만든다.



화면 속 인물들은 터무니없는 문제 상황을 헤쳐나갔고,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탈출구를 찾아냈다. 

그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같은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공상에 빠졌고, 

무료하고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심과 웃음을 넘나드는 감정의 파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된다.



나는 여전히 육아하는 전업주부 아줌마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웃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공상하고, 꿈꾸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거실은 여전히 난장판이었지만,

나는 새롭게 치워나갈 힘을 얻었다.

오늘도 분명 반복되는 살림과 육아겠지만 뭔가 달라졌다.

늘 똑같은 혼란 속에서 작은 기쁨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재미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

단짠단짠 맛있게 영화감상을 하며

지친 영혼의 허기를 채워본다.



사진 unsplash의 alex lit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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