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kind Be happy
"라떼랑 아인슈페너 나왔습니다."
지역에 엄청나게 유명한 카페가 있어 남편이랑 둘이 잠깐 들렀다.
크고 모던한 건물에 경치가 트인 포토존이 많아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음료 2잔을 시키고 주문이 나왔을 때 남편이 물었다.
"죄송하지만, 어느 쪽이 라떼고 어느 쪽이 아인슈페너에요?"
"네?"
그 순간 흐르는 차가운 정적. 차가웠다는 표현이 맞다.
"이 쪽이죠."
아니. 아인슈페너를 몰라? 직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유명 카페는 좀 다른건지 커피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탓에 촌놈이 된 우리는
어쩐지 푸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빵이 한가득 쌓여있는 베이커리에 들렀을 때 한 직원이 바닥을 청소중이었다.
나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무슨 빵을 사야 하나 고르고 있었는데, (길다면 20초 정도 소요되었을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직원이 빨리 청소를 하고 지나가고 싶은데 너무 성가시게 됐다는 듯
갑자기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그냥 내가 서 있는 바닥을 그냥 밀대로 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어서 비켜주려고 했지만,
직원이 바닥만 보면서 청소를 하느라 옆에 있는 나랑 부딪히는 줄도 몰랐나보다.
순간 등에 부딪힌 충격에 손을 헛디뎌 포장된 빵 하나를 미끄러 떨어트렸는데,
(케이스에 들어있는 식이 아니었음)
직원이 또 한번 크게 한숨을 쉬더니
나한테는 말도 하지 않고 그 빵을 집어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가서 귓속말을 했다.
"손님. 손님이 실수하신 부분은 계산을 하셔야 합니다."
카운터 직원이 도망갈 생각은 어림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내 실수니까 계산을 할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의 태도에 뭔가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더 이상 빵을 고르지 않고 변상하고 나오긴 했는데, 이게 맞나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일련의 불친절한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친절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들은 자기 기준에서 당연한 일을 할 뿐인데,
크거나 작거나 잘못이 있는 내 쪽에서 너무 과한 배려를 바라는 걸까?
한편 작은 친절 덕분에 엄청나게 감사했던 경험도 있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내가 목디스크에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다.
남편은 출근 중이고 친정 시댁 모두 먼 거리였으므로 아이를 맡길 수 없는데다가,
급성으로 갑자기 아프다보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 때는 아무 병원이나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자 싶어 홀로 집 앞 한의원으로 들어갔다.
목은 너무 아프고 어깨는 퉁퉁 부어있었지만,
한의원이 3층이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아기띠를 하고서 갔다.
답답한 아이는 버둥거리고 나는 부들거리며 한발 한발 거의 폐인의 상태였을 것이다.
너무 아파서 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의 간호사 분이 오시더니 걱정 말고 치료를 받으라며 아이를 대신 안아주셨다.
사실 환자든 뭐든 남의 아이를 대신 돌봐줄 필요는 없다.
그걸 알아서인지 생각지 못하게 누군가 도와준다는 사실에 긴장이 확 풀어졌다.
너무 도움이 필요했던 데다가 그동안 아팠던 설움이 쏟아지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 날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무게를 나눠들었던 손이 기억이 난다.
아이를 키우면서, 전혀 모르는 연상의 여성분들께
불쑥 도움을 받은 일이 몇 번 있었다.
버스를 탈 때나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
그분들은 조용히 다가와 도와주고 또 조용히 떠났다.
결국 친절이란, 누군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의 손길인걸까?
그동안 쌓여 온 결핍과 동질감이 친절의 빈도수를 높여주는 걸까?
친절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절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도움 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빵집에 가서 슈크림 빵을 찾다가 비슷한 모양을 발견한 한 손님이 물었다.
"이 것은 슈크림 빵입니까?"
그러자 직원이 답해주었다.
"아니요. 그것은 슈크림 빵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미안하지만 대답해준 김에 슈크림빵이 어디있는지도 알려주면 좋으련만?
슈크림이 없으면 없다고라도 말해준다면 정말 좋으련만?
하지만 직원에게 그런 친절 의무는 당연히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냥 본인의 의지일 뿐이다.
얼마전 양떼목장에 갔다가 나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좀 늦은 시간에 목장에 도착했는데, '먹이체험'이라는 이름이 적힌 다양한 풀을
2000원에 한 양동이씩 팔고 있었다.
필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서,
매표소에 있는 분께 2개를 살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자 그 분이 아주 무심한 표정과 피로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 사실 수 있습니다. 살 수는 있는데... 애들이 안 먹습니다."
솔직히 말 안 해주고 팔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4000원을 아끼고, 양들에게 억지로 먹이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분의 표정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
말투도 살갑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의 짧은 대화를 친절의 범주로 기억한다.
꼭 다정한 말투가 아니어도, 살갑지 않아도 남을 배려해주는 짧은 순간이 다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봉사단체에 가입하고 기부하고 하지 않더라도, 한 번 친절하면 그게 선행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고, 우리는 매일 피로에 쫓긴다.
모두가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그저 어두운 방의 작은 촛불처럼,
누군가의 하루를 은은하게 비춰주는 그 한 번의 친절.
그게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훈훈해질 것이다.
친절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값지다는 것도.
오지랖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억지로 그런 상황을 연출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쪽은 친절한 사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