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의 공간 May 14. 2023

내향인들의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하다.

주의: 눈 앞에서 내향인이 지나가면 평소랑 똑같이 행동할 것.



지붕 밑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맞은편 횡단보도에는 주황빛이 감돌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수직으로 내리쬐서 뜨겁던 태양의 열이 점점 약해졌다. 아까 카페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푹 쉰 덕분일까? 머리가 한결 맑아진 느낌이었다.


[에디션 덴마크]


누와의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다. 슬슬 홈페이지로 미리 예약했던 조식을 픽업하러 가야겠다. 서촌의 숙소들은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중 누와는 에디션 덴마크와 짝꿍을 이루는 모양이었다. 에디션 덴마크는 가볍게 먹기 좋은 브런치 메뉴와 여러 가지 차를 파는 카페였다.


에디션 덴마크 쇼룸


에디션 덴마크는 서촌의 한 거리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언뜻 보기에도 깨끗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글서글하고 밝은 직원분들이 인사를 건넸다. 조식을 꺼내 주면서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었고, 카페 내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까지 받았다. 다음에는 친구랑 할인 쿠폰을 가지고 방문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직원분께서 이 쿠폰은 다음날까지만 쓸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과연 혼자 이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을까.

아까 다녀온 카페처럼 엄청 넓은 공간도 아니라서 혼자 있으면 직원분들이랑 가까워서 민망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문 밖을 나섰다. 다정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체크인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급하게 발길을 돌리고 지도 어플을 켰다.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던 거리를 지나 아늑하고 조용한 동네에 들어왔다. 동네 주민들이 사는 거리인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집이 다 낮아서 해를 가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해를 정통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시선을 더 낮추자 건물 담벼락에 할머니 세 분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들은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해질녁 따뜻한 거리, 촌스러운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들, 낡은 담벼락의 조화가 제법 어울렸다. 휴대폰에서 필름카메라 어플을 켰지만 할머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바로 휴대폰을 내려놨다. 너무 대놓고 찍는 건 실례였다. 결국 카메라 어플을 끄고 지도 어플을 켰다.




이상했다. 누와가 없었다. 지도가 가리키기는 곳으로 걸어갔지만 누와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 이러다가 해가 질 때까지 못 들어가는 건 아닐까 싶은 몹쓸 상상력까지 더해져서 식은땀이 흘렀다. 계속 같은 자리를 돌았다.

지도에는 할머니들이 앉아있는 담벼락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래서 근처까지는 갔는데 도통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나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면 조용해졌다가 사람들이 완전히 지나가고 나면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고, 이따금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셨다.


나는 내 손에 들린 통인스윗 쇼핑백을 등 뒤로 가져갔다. 이곳의 명물이자 외부인들이 많이 찾는 에그타르트 맛집이었다. 샛노란 쇼핑백이 내 다리와 부딪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계속 휴대폰만 보면서 최대한 할머니들 쪽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여긴 절대 아닐 것 같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지도가 계속 여기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일반 가정집으로 통하는 길목일 텐데... 등줄기에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까 '누와'라고 쓰인 대문이 나타났다. 블로그 후기에서도 찾아가는 길이 어렵다는 글이 있었는데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시간을 보니까 체크인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다.




우리 집 맞은편 빌라에는 누가 쓰다가 버린 낡은 소파가 있었다. 그 빌라에 사는 할머니들은 매일 나와서 그 소파에 앉아 햇빛을 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셨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잠시 조용해졌다가 완전히 지나가고 나면 깔깔 웃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 빌라 쪽으로는 안 갔는데,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내 얘기를 할까봐 그랬다. 하필 아까 담벼락 밑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들을 보니까 빌라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다시 한번 내가 내향인이라는 게 와닿았다. 모든 내향인들이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주 많이 신경 쓰는 인간이었다. 


갑자기 여행갈 때마다 같이 갔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이전 08화 따뜻한 빵에 레몬 마멀레이드를 발라먹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