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의 공간 Apr 16. 2023

따뜻한 빵에 레몬 마멀레이드를 발라먹는 삶.

맛있고 여유로운 생활도 가끔씩 즐겨야 더 크게 느껴진다.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돌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벽과 1층 테라스에는 갈대들까지 있어서 이 카페만 보면 정말 제주도에 온 것 같았다.


바깥에 'LEMON'이라고 쓰인 패브릭 포스터가 바람에 흔들렸다. 티 하우스 레몬, 이 카페의 이름이었다.



열린 문 안으로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내딛자, 길고 검은 테이블이 보였고 그 위에는 조형물이 하나 놓여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은은한 커피 향이 없었다면 갤러리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감각적인 공간이었다. 안쪽 구석 자리에서는 소곤소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제외하면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 두 명의 목소리, 카운터와 연결된 주방에서 들려오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만이 공간을 채웠다. 날이 좋아 창문과 문을 전부 열어둬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주문하기 전, 자리를 잡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라서 곳곳으로 공간이 나뉘었다. 그중에서도 책이 많은 라이브러리룸이 가장 돋보였다. 아주 작은 도서관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서재 같기도 했다. 그 옆에는 사전 예약으로만 운영되는 미팅룸도 있었다. 여기는 스터디를 하거나 비즈니스 업무, 혹은 조용히 책 읽기 좋은 카페였다.


잘 찾아왔구나.

스스로의 선택이 기특했다. 아까 전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디 앉을까, 자리가 많아서 아주 행복한 고민을 했다. 주말이라면 겨우 빈자리를 찾아 허겁지겁 앉았을 텐데 말이다. 일단 가장 안쪽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큰 유리창이 있어서 바깥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무거운 백팩과 두꺼운 코트, 쇼핑백을 모두 내려놨다. 비로소 몸이 가벼웠다. 목을 좌우로 돌리고 어깨도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티하우스 레몬:서촌점]


레몬을 베이스로 하는 찻집인 것 같았다. 간단하게 에그타르트와 밀크티를 시키려는데 두 눈을 확 사로잡는 메뉴가 있었다.


"이건 무슨 메뉴예요?"


"그건 저희가 직접 만든 잼과 마멀레이드를 빵에 발라서 먹는 디저트예요. 빵은 따뜻하게 데워드려요."


시간을 보니까 벌써 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는데 잘됐다. 직접 만든 레몬잼과 크림을 따끈한 빵에 바르는 상상을 하자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잠시 후, 진동벨이 울리고 음료와 빵이 나왔다. 직접 만든 레몬잼과 마멀레이드, 그리고 버터와 크림까지 총 4가지 소스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옆에 바구니에는 여러 종류의 빵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치를 누리겠는가. 일단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레몬 마멀레이드와 버터를 발랐다. 상큼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갔다. 한입 먹으니까 긴장감에 잊고 있던 허기가 되살아났다. 급하게  하나를 전부 먹어치웠다. 그제야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도로에도 차들이 막힘없이 지나다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따사로웠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차소리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같은 작은 소음들 오히려 포근했다. 이제야 혼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특히 옆 테이블에도 혼자 온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먹는 메뉴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몇 분 후, 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세트를 들고 올라왔다. 나는 조용히 티 안 나게 슬며시 웃었다. 서촌이 이렇게나 평화로운 곳이었나. 주말에 왔을 때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평일은 혼자 쉬러 오기 좋았다. 나는 요즘 읽는 책을 꺼냈다.




자기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아까보다 소란스러워졌다. 이어폰을 꺼낼까 하다가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연스러운 소음과 카페에서 틀어둔 음악이 좋아서 그냥 두고 책에 집중했다. 의외로 책 술술 읽혔다.

 

책을 덮고 휴대폰을 꺼냈다. 온전한 휴식에 방해될까 봐 아까 메뉴 사진만 찍고 백팩에 넣어뒀었다. 회사 단체 카톡방에 동료들끼리 오늘 점심은 뭐 먹을지 고민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도 오늘 휴가를 내지 않았더라면 한 두 마디 거들었겠지?   


열심히 일하다가 휴가를 쓰고 와서 그 행복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마 매일매일 쉬기만 하다가 여길 으면 그렇게까지 큰 감흥이 없었을 것 같았다. 휴대폰을 백팩에 넣고 다시 책을 펼쳤다.





[티 하우스 레몬: 서촌점]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3길 4

단독건물/1-2층/야외테라스

수요일-일요일 11:00~21:00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분 거리


시킨 메뉴


1. 테이스트 더 레몬(8,500원)

2. 얼그레이 밀크티(6,500원)



이전 07화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주변을 관찰하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