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는 자갈이 깔려있어서 걸을 때마다 사그락사그락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숙소 맞은 편 벽에는 한뼘 정도 되는 미니 연못과 그 옆에는 가느다란 묘목이 보였다. 그리고 사진에서만 보던 누와의 시그니처, 동그란 창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 그 아래에는 최대 2명까지 앉을 수 있는 미니 대청마루도 있었다. 이 작은 마당에 있을건 다 있어서 1박2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촌 한옥 스테이 '누와'
그런데 이곳 현관문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대문에 있는 잠금장치가 전부인 셈인데...대문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으나 이것만으로 나를 지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문 옆 담벼락이 생각보다 낮아보였다.
커다란 통유리문을 열자 작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좋은 향기와 주광빛 조명 덕분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현관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좁은 곳에는 고무신이 두 켤레 준비되어있었다.
서촌 한옥 스테이 '누와' 현관
컨셉이 확실한 곳이구나.
짐을 내려놓자 먼저 긴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탁자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디자인이었는데 오직 누와만을 위해 만든 것 같았다. 큰 돌 두 개를 양쪽 끝에 놓고 그 위에 무거운 나무판자를 올려놓았다. 나무와 돌만으로 탁자가 완성된 것이었다.
누와 인테리어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자재는 단연 나무였다. 들어오는 길에 보였던 대문부터 탁자 기둥, 서럽장까지 모두 같은 자재를 사용했다. 심지어 천장 위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어 누와의 특별한 분위기가 더 잘 드러났다.
혼자 여행을 다니니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보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이 공간을 채워줄 언어가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내가 늘 듣던 말투와 목소리를 들으면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는 오직 정적만이 존재했다. 들릴듯말듯한 이 음악 소리도 결국 남이 선곡한 것이기에 여전히 어색했다.
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낯선 공간'과도 낯을 가리는 아주 내향적인 인간이라, 이곳이 너무 어색했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집에서 자주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냉장고에는 미리 산 간식들을 채워넣었다. 입고 있던 코트도 벽에 걸어두자 누와 곳곳에 내 흔적이 생겼다. 이제야 겨우 소파에 앉았다.
서촌 한옥 스테이 '누와'
소파 앞 작은 원목 협탁에는 책 한 권과 머그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스테이폴리오>는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곳이라서 모든 숙소에 일회용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생수 대신 식수대가 있었고 모든 식기도 다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레스 제품들이었다. 이런 부분들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났지만 동시에 남의 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커다란 통유리 문 맞은편으로 아까 걸어온 작은 마당이 보였다. 자꾸만 누군가 담벼락을 타고 들어오는 상상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대문 외에 절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하니까, 믿어보기로 했다. 게다가 불안감 때문에 이 멋진 공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억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