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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Dec 24. 2023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하여.

혼자라서 두려운 이들에게 온기를 선물해주기로 했다.



효자 베이커리에서 사온 빵을 뜯었다.


달콤한 소보로와 감칠맛 나는 양파 크림이 매력적인 유명한 빵이었다. 적당히 양파향만 날 줄 알았는데 진짜 양파를 넣어서 아삭한 식감이 느껴졌다. 양파와 크림치즈의 조합은 말해뭐해.



천천히 음미하면서 노트북을 열고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 글자씩 적어내려갔다.


-미리 찾아뒀던 카페가 사진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한 일

-플랜 B를 세워두지 않아서 어느 카페를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일

-발길 닫는대로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낸 일

-누와에 들어가는 입구를 못 찾아서 식은땀이 나던 일

-홀딱 벗고 목욕하다가 누가 누와에 침입하면 어쩌나 두려웠지만 결국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드라마까지 봤던 일.


지금 쓰지 않으면 오늘 있던 일과 감정들을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비록 지하철로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지만 혼자 하룻밤 자고 오는 일은 내 인생에서 꽤 큰 이벤트였다. 단순히 놀러갔다오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것을 혼자 선택해야하는 순간 속에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도 했지만 정말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음악이 뚝 끊겼다.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사라지자 누와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고 혼자라는 사실이 다시 피부로 느껴졌다. 다시 음악을 켰지만 이미 찾아온 두려움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일기는 그만 쓰고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봤다.

그러다가 누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공책을 발견했다.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디자인이었다.



공책을 들고 침대로 향했다. 대충 훑어보니 누와에 왔다 간 사람들의 방명록이었다.


‘20xx년 x월 드뎌 왔당...뜨겁게 우정을 나누고 감’

아주 오랜 친구와 함께 누와에서 하루를 보낸 친구들.


‘...계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대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게 중요하죠. 언젠가 또 옵시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와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방바닥이 뜨거워서 통닭이 되는 줄 알았어요.’

뜨거운 방바닥을 아주 귀엽게 표현한 사람까지.


중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글도 있었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글도 있었다. 전부 읽고 나니까 무서웠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서야 몸에 닿는 폭신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도 연필을 쥐었다.


나처럼 혼자 와서 무서운 밤을 보낼 누군가를 위해

소중한 온기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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