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을 먹지만 혼자 먹는게 아닌 느낌이랄까.
서촌에서의 첫 식사는 공기식당으로 정했다. 공기식당은 지인의 인스타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간다는 지인의 말이 인상 깊어서 언젠가 서촌에 놀러 가면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장님 혼자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고 계산까지 하시고, 매일 메뉴도 달라지는 부분이 개성 있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예전에 한번 친구랑 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맛있게 먹어서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공기식당으로 향했다.
누와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최대한 사람이 없을 때 조용히 먹고 싶어서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자마자 저녁 타임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메뉴는 버터 치킨 커리와 단호박 크림 새우 커리 2가지였다. 예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버터 치킨 커리를 먹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커리를 먹을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선택지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대신 사이드 메뉴로 '파라따' 라는 난을 함께 주문했다.
사장님이 내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주방 쪽을 쳐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1인 식당인 데다가 테이블도 4개만 있어서 공간이 아담했다. 작지만 사장님의 세심한 센스가 돋보여서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를테면 손님들이 편하도록 겨울철 코트나 패딩을 벗어둘 수 있게 행거를 마련한 것과 귀엽고 재미있는 포스터와 엽서가 붙어있어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았다.
나는 혼밥 하기 좋은 자리에 앉았는데 정면에 세워진 나무 가벽에는 공기식당의 팬들이 써놓은 응원 메시지와 ‘슬로워커가 사랑한 식당 1위’라는 상장도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장님이 젊은 시절 찍은 증명사진이 붙어있었다. 뭔가 엉뚱한 면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음식이 나왔다.
인도식 커리집에서 볼법한 요술램프 모양의 손잡이 그릇에 커리가 담겨있었고, 넓은 접시에는 모짜렐라 치즈를 토치로 살짝 구워 올려낸 치즈 밥이 올라갔다. 그리고 함께 주문한 파라따도 사이드에 자리했다. 밥 옆에는 한 끼 분량의 양배추 피클이 먹을만큼한 놓여있었는데 직접 담근 맛이 났다. 정갈한 한 상이라 먹기 아까워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예전에도 먹었던 그 맛이지만 여전히 똑같이 부드럽고 맛있었으며, 파라따는 일반적인 난과 다르게 찹쌀을 섞었는지 엄청 쫄깃하고 두께가 있었다. 배가 불러도 계속 먹고 싶은 맛이었다.
한참을 먹고나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이 금세 사람들로 꽉 차서 웨이팅까지 생겨서 공간이 협소해졌다. 점점 소란스러워지니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정신 사나워서 이쯤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나오기 직전,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나 빼고 모두 일행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혼밥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생김새와 겉모습이 다른 사람들일뿐이지, 테이블에는 방금 전까지 내가 맛있게 먹었던 메뉴가 올라가있었다.
한 식당에서 같은 메뉴만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니까 낯선 사람들이지만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혼자 밥을 먹었지만 혼자 밥을 먹은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장님께 잘 먹었다는 짧은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토요일-일요일 12:00~19:00 (15:00~17:00 브레이크 타임)
경복궁역 2번 출구 7-8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