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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Jan 07. 2024

좋았던 여행은 현실을 이겨낼 힘을 준다.

서촌 누와 여행 마지막 편.



어젯밤, 두려움과 아늑함이 함께 공존하던 누와는 사라지고 밝은 빛이 감돌았다. 주황색 조명을 받아 따뜻해보였던 침구는 푸르스름한 아침의 빛을 받아 쾌적함이 느껴졌다. 




어제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아침이 되니까 괜히 머쓱했다. 


늘 그렇듯 밤은 지나가고, 아침은 찾아오는데 말이다. 머쓱함이 지나가고 드디어 처음으로 낯선 곳에서 혼자 잠을 잤다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나 혼자, 그것도 아무도 없는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다니. 인생의 퀘스트 중 하나를 깬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할 일을 끝내고 체크리스트에 체크 표시를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제 수도권 국내 여행을 해냈으니 다음 레벨은 국내 지방 여행이다. 어디로 가볼까?


냉장고에서 조식 세트를 꺼냈다. 어제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밝은 에너지를 가진 에디션 덴마크 사장님이 생각났다. 오늘도 오라고 하셨는데, 아마 못 갈 것이다. 가게가 협소한 편이라 혼자 가면 너무 어색할 것 같았다.




덴마크 정통 조식은 이런거구나. 


흰 요거트, 견과류, 잼, 라즈베리, 치즈, 꿀, 통밀 크래커가 담겨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먹지 않는 것들이라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쁜 그릇을 가져와 그릇 안에 요거트를 부었다. 물처럼 묽은 요거트였다. 요거트 안에 포도색깔의 잼을 넣고 그 위에 견과류를 뿌리고 빨간 라즈베리로 데코해줬다.


한입 먹으니까 엄청 셔서 꿀을 넣고 통밀 크래커와 같이 먹었다. 덴마크 조식을 먹으니까 한옥인데도 외국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산미 있는 음식이 안 받는지 속이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어제 따로 챙겨온 딸기 요플레를 꺼내서 뚜껑을 열었다. 남은 덴마크 조식 세트는 전부 가방에 따로 챙겼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목욕 소금을 부었다. 집에 갈 준비를 모두 끝냈는데도 퇴실까지 시간이 남아서 족욕을 하기로 했다. 바지를 걷고 발을 담궜다. 욕조에 발만 담그고 있는데도 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누와 내부를 쭉 둘러보며 이 공간과 순간을 눈에 담았다. 아마 다시 오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오지 않을까.




나가기 전, 원래 있던 고무신 두 켤레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제 처음 들어왔던 그 상태 그대로였다. 오후 4시 입실, 오전 11시 퇴실이라 하루도 채 머물지 않은 공간인데 벌써 정이 들었는지 떠나는 게 아쉬웠다. 


처음으로 혼자 다녀오는 여행이었다. 비록 지하철로 1시간 30분 거리지만 혼자, 그것도 하룻밤을 자고 온 적은 없어서 많이 걱정했다. 전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현실에서 힘들 때마다 서촌에서의 이 시간을 떠올려야겠다.


누와의 작은 정원에 발을 내딛자 기분 좋은 자갈 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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