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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의 공간 Apr 01. 2023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주변을 관찰하는 것

골목길 사이사이를 거닐면 늘 보던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서촌은 전체적으로 건물이 낮았다. 낡은 건물이 많았지만 요즘 스타일로 지어진 새로운 건물도 꽤 많았다. 하지만 너무 높은 층으로 짓지 않아서 기존의 낮고 낡은 건물들과 잘 어우러졌다.


그 사이를 누비다 보면 골목이 많아서 어떤 길로 빠지든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고, 그 너머로 한옥이나 정겨운 돌담길도 보였다. 어떤 집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빨래를 널어놓기도 했는데 바람에 옷가지들이 나부낄 때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특히 옷의 종류들이 그러한 느낌을 극대화시켰다.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통 넓은 냉장고 바지, 보라색 경량 패딩 조끼, 어딘가 색이 바랜 듯한 줄무늬 긴 팔까지. 전부 할머니 집에서 볼 법한 옷들이었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도 모르게 휴대폰 카메라 앱을 켰다.

     


익숙한 한옥 지붕을 한참 쳐다보다가 시선을 더 위로 올리자 맑은 하늘이 보였다. 햇빛이 쨍해서 하늘이 아주 맑았다. 파란 하늘에 옅은 흰 구름이 넓게 퍼져있었는데, 여행의 첫 시작이었던 카페를 찾는 것부터 예상치 못한 더운 날씨까지 전부 삐그덕거렸지만, 맑은 하늘은 마치 나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짐이 많아서 불편하고 너무 더웠지만 이 좋은 날씨만은 마음껏 만끽했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갔다. 햇빛에 비친 나무가 예뻐서 휴대폰을 꺼내 필름 카메라 어플로 마구 찍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실제 필름 카메라와 똑같은 필터로 사진이 나온다는 유료 어플을 구매해 뒀다. 그래서 진짜 필름 카메라처럼 뷰파인더가 작아서 내가 찍는 대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대충 감으로 찍는 것이었는데, 이게 바로 진정한 필름 카메라의 묘미인가 보다. 


지난달부터 조금씩 피어나던 목련꽃이 지기 시작했다. 목련 꽃이 바닥에 떨어진다는 것은, 이제 다른 꽃들이 피어날 차례라는 뜻. 아니나 다를까 벌써 그 옆에는 이름 모를 나뭇가지에 작은 잎이 돋아있었다. 연두색과 초록색 그 사이 어디쯤, 이제 저 작은 잎들은 점점 더 커질 테고 예쁜 꽃이 나올 것이다. 꽃이 만개한 서촌의 골목은 더 예쁠 것 같았다.     




사진을 많이 찍느라 팔에 걸치고 있던 두꺼운 코트가 슬슬 버거워졌다. 점점 사진을 찍는 게 힘들었고 햇빛이 뜨거워서 그늘을 따라 걸었다.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엄청 큰 2층짜리 카페였다. 아까도 카페는 꽤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는데 여기는 한눈에 봐도 내 취향이었다. 여유롭게 쉴 수 있을만한, 지친 나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다. 아무래도 주택을 개조한 것 같았다. 진한 회색을 띠는 돌담과 바람에 간질거리는 억새풀이 마치 제주도를 연상케 했다. 


아, 바로 여기다.

여기가 바로 내가 서촌에서 처음으로 쉴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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