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파트에 장이 서는 것도 일반적이다. 내가 사는 단지는 매주 목요일, 옆 단지는 매주 화요일에 장이 선다. 채소와 과일, 생선과 잡곡류, 옷까지 없는 것이 없는 나름 구색을 골고루 갖춘 장이지만, 단지마다 서는 장에 특색이 있다. 목요일 장에서 내가 찾는 것은 단 하나 돈가스였다. 언제부터 시작된 장인지 모르겠지만, 목요일의 장에서 나는 늘 돈가스만 사 먹었다.
2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옆 단지의 장에서는 과일이 풍성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먹거리는 바로 탕수육이다. 몇 번 사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준비 중이라며 30여 분 이상을 기다려야 살 수 있어서 맛이 어떨까 궁금해하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우리 단지의 돈가스는 우리가 처음에 찾을 때만 해도 단골 고객이 없어 늘 한산했다. 주문하면 바로 튀김기로 들어가고 빠르게 나오는 것이 좋아 목요일이면 돈가스 사는 날로 정할 정도였다. 거기에 서비스로 작은 것 한 두 조각 더 챙겨 튀겨주시곤 했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돈가스 가게가 어느새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는지 얼마 전부터 가면 항상 대여섯 명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맛있는 집을 가도 우리는 기다려서 먹는 것은 피한다. 끼니때가 돼서 가기도 하고, 오래 기다려서 먹을 만큼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도 않다. 하물며 맛을 빤히 아는 아파트 장날의 돈가스집에서의 기다림이라니... 그간 열심히 애용한 것으로 쿨하게 굿바이를 선언했다. 우리 대신 다른 가족들이 맛있는 저녁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덤이고.
그래도 장날이 되면 근처를 서성거리기는 한다. 혹시라도 손님이 없으면 사 가지고 올 생각으로... 하지만, 역시나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미련 없이 패스하고 곡물가게와 생선가게를 거쳐 채소 가게를 지나는데, 그동안 시장을 다니며 열심히 찾았던 알타리가 눈에 띄었다. 가격도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4단에 만 삼천 원. 시장에서 어쩌다 한 번 마주쳤던 알타리가 단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가격은 정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이전에 담근 김치가 마침 끝을 보기 직전이라 뭐라도 담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결정적인 주인아주머니의 한 마디,
“무가 아주 달아요.”
그 한 마디에 구매를 결정했다. 옆에 놓인 대파는 아닌, 쪽파라고 하기는 좀 찝찝한 그것을 당당하게 쪽파라고 말하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실파요? 이건 이천 원."
"아! 실파구나..."
모기 소리만 하게 말을 받고 나서 그것도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한 단 다 넣으면 돼요."
친절하게 김치에 넣을 적정량까지 계산해서 말씀해 주신다. 나이는 잔뜩 먹어 실파인지 쪽파 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죽할까 싶었나 보다.
어제의 민망함을 오늘의 김치 맛으로 상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거사에 돌입했다. 구석에 놓인 야외용 매트를 꺼내서 거실에 펼쳤다. 2년 전 사놓은 천일염 한 자루도 간수가 빠진 채 그대로 보관 중이었다. 알게 모르게 나름 재료가 집안 구석구석에 쟁여 있었다. 다듬으며 바로 절일 수 있도록 대야에 물을 받아서 소금 풀어 한쪽에 놓고 사온 열무를 매트 위에 펼쳐 놓았다.
다듬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알타리는 다듬기만 하면 담그는 것은 금방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서 힘을 냈다. 남편은 아침 일찍부터 마늘 꼬다리를 잘라내고 씻어서 찧는 것까지 책임지고는 바로 출근했다. 두 시간가량 다듬으며 절이니 무가 어느 정도 말랑말랑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깨끗이 씻어 놓고 잠시 휴식.
이제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몇 번 연거푸 김치를 담그다 보니 양념을 무엇을 넣을지는 더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간을 맞추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무가 많으니 양념을 조금 짭짤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멸치젓 듬뿍, 새우젓 넉넉히, 마늘과 매실액과 양파액을 넣은 것에 풀 쑤어 식힌 것을 붓고, 고춧가루 듬뿍 넣어 버무리니 시뻘건 양념이 만들어졌다. 실파를 듬성듬성 썰어 양념에 넣고 건져 놓은 알타리에 조금씩 양념을 덜어 무에 빨갛게 물이 들도록 버무려 주었다.
15kg의 알타리 김치가 완성되었다. 담그는 동안은 힘들어서 빨리 끝내야겠다는 마음 가득이었지만 때깔 좋은 김치가 두 통 가득 눈앞에 놓이니 힘들었던 과정을 잊을 만큼 보람이 있고 뿌듯했다.
이전에 김치가 무섭고 지겨워 절대로 담그지 않겠다고 결심하기까지 했었다. 당연히 김치가 똑 떨어져도, 가족들이 어떤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도 시장에서 김치거리를 보면 외면하며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손으로 김치거리를 산다. 여전히 몸은 힘들지만 열심히 담근다. 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결정적으로 그때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김치 담그고 나서의 마음인 것 같다.
이전과 똑같이 김치가 무섭고 담글 엄두를 내는 것조차도 겁이 나지만, 결과물을 보고 나면 다음엔 어떤 맛깔난 김치가 나오게 될까 어느새 혼자서 다음 작품(어떤 김치를 담글지)을 기대하고 구상하곤 했다. 담그고 나서부터 김치의 색감을 살피고 가족들에게 맛을 보게 했다. 담가진 모양이나 맛을 보며 맛있다고 말해주면,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사소한 칭찬 한 마디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춤이라도 출 고래의 마음이 되고 동시에 힘든 기억은 지워진다.
지금껏, 누군가가, 김치가 없으니까, 해야 하는 때니까, 등등의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산더미 같은 김치거리를 가져와서 나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치르듯 해내야 하는 김치 담그기는 내겐 공포였다. 이제 그러한 시간을 겪은 후유증을,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트라우마를 조금씩 극복해가는 중인 것 같다.
나름 계획적인 사람인 나에게는, 내가 계획하고 장에 장에 가서 김치거리를 고르고 다듬고 절이고 버무리는 그 과정 전체가 나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최적의 노동 조건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즐기며 과거의 힘들었던 김치와의 기억을 조금씩 지우는 중이다. 적절한 양을 적당한 속도로, 모든 과정을 내가 통제하는 김치 담그기는 힘들지만 할 만하다. 아직 끝나지 않는 그 무서운 코로나지만, 그것이 내게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반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