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것에서 벗어난 하루

호수공원에서 보낸 하루

by 바람

6일의 연휴. 그 사이 추석 명절과 생일, 더 구체적으로는 내 환갑이 들어 있다. 환갑이라는 말이 전혀 실감나지 않지만 애써 감출 것도 없다. 뭔가 새로운 의미 부여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전혀 특별하지 않은 날이 지나고 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바쁜 추석의 전날과 당일이 지나니 남은 연휴는 여느 휴일과 다를 바 없다. 챙겨야 하는 세끼와 청소나 빨래 등의 자잘한 일거리 사이에 비는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채우는 방법을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평소처럼 오늘도 그렇게 집에서 나왔다.


목적지는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리는 가을꽃축제 행사장이다. 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 가을꽃축제라는 거창한 제목에 부담 가질 필요 없이 가벼운 산책을 위한 코스로 찾은 곳이다. 사실 국제적인 꽃 축제 행사장으로서의 방문은 이전에도 이미 진하게 경험했기에 행사의 의미를 오늘은 배제하자고 정리했다.


IE003210625_STD.jpg ▲ 호수공원 플라워마켓 포인세티아와 하늘고추 화분,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빨강이다.


호수공원엔 추석 이후에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려는 발길들이 넘쳤다. 넓은 광장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마술쇼, 무명의 초청 가수 공연과 테마 미니 정원 관람 등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집 근처의 작은 공원을 걷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장미 정원의 장미는 이미 다 지고 몇 송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생생한 한두 송이 장미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손길은 진지하고 신중했다. 작지만 큰 의미 부여, 사소한 일상도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인 것 같았다.


플라워 마켓은 꽃과 화분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절에 지친 마음을 식물을 통해 안정을 찾고 싶었을까. 적은 금액으로 행복을 충전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작은 화분 두 개로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포인세티아와 하늘고추 화분,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빨강이다.


IE003210624_STD.jpg ▲ 일산 호수공원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집 근처의 작은 공원을 걷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호수 공원을 여러 번 왔어도 호수 주변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처음이었다. 수상꽃자전거가 유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평소 어디를 가도 체험 활동은 아이들 놀이 같아 외면하고 구경만으로 만족했는데, 가을이, 파란 하늘이, 맑은 물과 수면에 부딪치는 햇살, 그 울렁이는 느낌이 오늘은 참여 욕구를 충동질했다.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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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줄을 기다려서 2인용 티켓을 끊었고 구명조끼를 입고 다시 20분을 기다려 20분을 호수 위에서 즐겼다. 물과 땅은 달랐다. 그간 바닷가나 강에 가서도 수상 스키 등의 놀이를 한 번도 즐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아쉬울 만큼 좋았다. 다른 자전거에서 일으키는 물살의 작은 일렁임과 그에 따라 몸의 움직임이 적당히 박자를 맞춰갈 즈음 20분의 시간이 끝났다.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컸다. 딱딱한 땅을 디디며 느낄 수 없었던 가벼움이었다. 견고하게 연결된 고무통들이 받는 부력이 발바닥으로부터 서서히 전달되며 반사적으로 뜨게 하면서도 든든한 느낌, 반쯤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을 자유롭게 했다. 중력의 무게에 눌려 꺼질 듯 간신히 버티던 몸이었는데 육중한 무게가 사라지며 잠시 나를 해방시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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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의 저자 소로는 호수를 통해 사람 성품의 깊이를 말했다고 한다.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이 사람 성품의 깊이라고. 나는 호수 어디쯤의 높이에 있는 것일까, 잠시 가늠해 보았다. 인공적으로 만든 이곳의 깊이래야 사람의 키 높이 정도로 고르게 보였지만 크게 욕심나지는 않았다. 딱 그만큼의 깊이로도 충분하다 싶었다. 깊으면 더 가벼워지려나?


호수공원을 도는 꼬마기차에 아이들과 어른 몇이 탑승해 있었다. 공원을 도는 기차는 중간에 기적소리를 내며 놀이공원 분위기를 띄웠고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기차를 탄 것처럼 마음이 푸근했다. 미니 바이킹을 타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고성도 신기하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가 지어졌다.


지천에 꽃이 있었고 꽃이 있는 곳은 어디든 사진의 배경이 되었다. 어린 아이들을 찍는 부모들 보다는 부모님을 모델로 세우고 사진을 찍는 자녀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쑥스러움을 감추고 과감한 포즈를 취하는 부모님네들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 잠시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마흔, 쉰, 예순까지 셀 수 없이 많이 느꼈던 시간과의 괴리. 나를 너무 정직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싫어 한동안 멀리했다. 이제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니 당당히 찍어볼 마음이 생긴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소환하며 조금 더 당당해지거나 뻔뻔해지거나.


서서히 쇠해 가는 몸은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축소시키고 결국은 더욱 좁아진 틀에 자신을 가두게 하고야 만다. 오늘 하루, 자녀들의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그런 제약들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 같았다. 부쩍 세상이 삭막하고 각박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나도 세상을 긍정의 눈을 뜬다.


아마도 마음의 여유를 조금은 회복한 때문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이젠 명절이 버겁다. 언제부턴가 함께 따라오는 내 생일도 무섭다. 일이, 돈이, 준비하는 수고와 부담이... 가족들이 만나 정을 나누고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자고 하는 것들은, 명절이든 생일이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강제된 틀에 나를 맞추는 것처럼 항상 어렵다.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을 위한 수고는 여러 희생을 담보한다. 언젠가부터 부모라는 이름에 붙는 희생이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정작 그 주체는 희생이란 단어를 모르고 있고, 희생은 이용하는 자들의 감동을 뽑아내는 용어로써 말이다. 당사자가 희생을 말하는 순간 감동의 대상은 물론이고 부모로서도 실격이다.


며느리와 주부, 엄마의 자리에서 벗어난 하루, 여러 생각이 겹친다. 너무 깊지는 않은 사람이라 생각의 변화가 오히려 감사하다. 마침 추석이라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였던 것도, 공원의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의 무게를 더하지 않아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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