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딸의 생일과 남편의 생일이 5일 차이로 다가왔다. 딸은 양력, 남편은 음력 생일이라 날짜가 가깝게 겹치다시피 되었다. 둘의 생일이 연속으로 있어서 며칠 전부터 선물을 신경 썼다. 딸은 홈쇼핑에서, 남편은 백화점에서 준비했다. 준비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음식 준비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일을 해치운 듯 개운했다. 인생 뭐 있나, 주는 사람 뿌듯하고 받는 사람은 기쁘게 받고, 일 년에 네 번쯤 서로 주고받아 잠깐 행복한 기분도 인생의 맛이겠지,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생일이니 뭐니, 선물이니 뭐니 신경 쓰고 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이십 년 이상 생일 치다꺼리를 해온 결과 나타난 증상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체 그냥 지나가고 넘어가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 년이 모두 특별하게 부대끼며 사는데, 그날만 따로 다른 모양으로 연출하는 하루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서였다. 평소에도 필요하면 이벤트처럼 선물도 사주고, 먹고 싶다면 특별히 맛있는 것 만들어주기도 했었고.
나부터 먼저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생일을 잊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일이긴 했으나 본인이 무심하니 저녁이나 돼서야 가족들은 생일을 떠올렸고 급하게 후다닥 케이크 사고 배달음식 시키거나 밖에서 먹거나 해서 생일 축하를 받곤 했다. 사실 그냥 지나갔어도 괜찮았다고 쿨하게 덧붙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은 가족들의 생일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의 피로감 때문이었다. 내가 그랬으니 다른 이의 생일도 평일처럼 밥 먹고 찌개로 대신하고 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생각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어린아이들처럼 달력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치고 내 생일이라고 써놓지는 않았지만, 당일 아침부터 서운한 마음을 표시했고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부랴부랴 생일 선물에 케이크에 생일상을 차려야 했다. 그렇게 몇 해를 번갈아 가며 두 아이의 생일을 번잡하게 일을 벌이고 나니 차라리 그냥 하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는 사이 생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엄마인 나의 생일은 정말 쿨하게 넘어가도 되는 것처럼 본질이 바뀌어버렸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서운함이 올라왔다. 조금씩 더 서운함의 부피가 커지다 보니 그냥 남들 하는 거 다 하는 것이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축하를 받을 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도 있었고. 애처럼, 축하받을 사람은 받고 축하해 주어야 할 사람은 축하해 주고, 나만 쏙 빼놓고 그러는 거 말고. 그렇게 도로 번잡한 하루를 네 번 더, 하던 대로 연출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 시작이 딸의 생일부터라고 혼자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성찬은 힘들었다. 전날 준비한 반찬에 간소하게 먹었다. 저녁은 생일처럼 차리자고 생각했다. 선물을 준비하고 봐 온 장거리로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미역국 끓이고 좋아하는 요리도 하고, 평소 먹고 싶다고 한 것도 해 놓고, 없어서는 안 될 고기와 어른들 반찬으로 나물도 무치고……. 가족 중 한 명이 준비한 케이크를 중심에 놓으니 꽉 찬 한 상이 마련되었다. 노래도 부르고 촛불도 끄고.
결혼하고 첫 시어머니 생신은 호적과 진짜 생일이 달라 날짜를 잘못 챙겨 낭패를 봤었다. 결국엔 호적 생일과 진짜 생일 이틀을 어머니의 생신으로 치르게 되었지만, 두 번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긴장하고 몇 번을 물었는데,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남편이 잘못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내니 다음 해부터는 긴장 두 배였고, 처음의 실수가 내내 따라붙어 잘해도 못한 것이 되곤 했었다.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 년 중 어느 하루를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을 덜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른의 생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이십 년 이상을 생일상을 차렸으면 우리끼리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또 하나는 명절 다음날인 내 생일은 모두가 불편한 날이었다. 음식을 따로 할 필요는 없었다. 남은 음식이지만 음식이 넘치는 날이었다. 가족들 모두 모이는 명절이지만 며느리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마음 때문에 늘 친정에서 생일을 보내곤 했다. 가족끼리의 생일이 아닌 어정쩡한 생일을 보냈다.
시댁은 시댁대로 시누이들은 그들의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으로 오는데, 정작 내가 친정에 가는 것은 생일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준다는 배려 차원의 생색내기가 되었다. 친정 엄마는 명절 끝이 생일이라고 늘 아쉬워했는데, 시댁에서는 명절 끝이 생일이어서 오히려 당사자인 내가 불편한 마음을 갖고 집이 아닌 친정으로 등 떠밀려 가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친정에서도 며느리들의 불편함이 눈에 보이기도 했고 이래저래 생일이 징글징글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여러 길을 돌았지만, 마음먹고 생일을 다시 챙기게 되니 당사자들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몇 번 안 되는 생일 차림이 지겨워졌다가 다시 마음을 돌려 먹으니 가족들 모두가 행복해졌다. 나의 첫 문학작품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행복은 사랑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좀 바꿔 보려 한다, 생일은 사랑이다,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그러니 부디 내 생일도 신경 써 주기를, 챙기는 이의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