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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13. 2020

지금, 여기의 삶을 사세요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프랑크 베르츠바흐

예술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매혹시킨다. 관련 분야의 일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경외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창작을 위한 그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나 같은 범인은 도전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로 단정하기도 한다. 한때 피아노를 우아한 자세로 치며 멋진 노래를 부르는 꿈과 여행하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려보길 희망했다.


도전도 했다. 피아노는 배우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그림은 여러 종류의 연필을 갖추고 건물 풍경만 있는 사진을 가지고 똑같이 그려 보려고 선을 그어보았다. 누군가가 먼저 라인을 잡아 놓은 것은 나름 그렸지만 작품이 아닌 단지 흉내내기에 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를 잡고 처음부터 선을 그어나가는 것은 시작하고 바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연필이 지나갈수록 이상한 스케치가 되어 펜화를 그려보겠다는 것도 꿈만 꾸다 그만두었다.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에 관한 것은 아니다. 독서토론 목록에 있어서, 제목에 예술이 있어서 끌렸고, 목록에 오른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예술, 삶, 이런 말들이 나오면 사람이 멋있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쉽게도 책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을 얘기하지 않는다. 삶을 이야기한다. 삶에서 ‘누가, 무엇을, 왜, 언제, 어디서’에 주목하지 않고 ‘어떻게’에 주목한다. 그리고 ‘어떻게’의 답이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삶의 방향이 삶을 예술로 만든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었고 그러고도 평생 돈의 노예로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사는 누군가는, 평생 창조를 삶의 방식으로 살지 못한다고 책은 단정해서 말한다. ‘돈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창조를 삶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돈과 창조성의 관계는 비극이다. 재능과 수입도 비례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돈은 그렇다 치고, ‘재주가 많은 사람 끼니 거른다’는 옛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다.


산에 오르는 두 가지 방법에서 말하는 태도는 내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첫 번째 방법은 주변에서는 많이 접할 수 있는 사례로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산행이라고 한다. ‘고장 난 기계장치와 같아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치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고은, <그 꽃>)에서의 마음과 같다. 여유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지친 것도 모르게 되고,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정상에 있어 여기, 이 자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산행을 잘하려면 자존심을 초월한 산행을 하라고 말한다.


사우나에 들어가는 남자들의 심리도 비슷한 사례로 많이 듣는 얘기다. 남자들의 단순함이라니. 여기서 ‘건강한 거리 두기’라는 말이 나온다. 산행이든 일이든, 노동이든 건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거리를 잘 유지해야 지쳐 쓰러지지 않게 된다는 것. 건강한 거리두기의 사례로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베네딕트 수도회의 “기도하고 일하고 읽어라, 그러면 신께서 지체 없이 함께 하시리니”라는 노동 원칙을 제시한다. 6세기에 창건된 수도회의 노동에 관한 원칙을 현재 노동의 가치로 시사한다는 것이 놀랍다. 노동은 삶과 영원히 함께 가는 것이라는, 노동과 삶의 균형 잡기야말로 노동의 기본 원칙이자 대원칙이다.


또 한 가지, ‘창조적 사람들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노동의 삶을 이어간다는 것.’ 창조와 거리가 먼 것을 노동 때문으로 문제 삼지 않도록 분명히 한다. 매일 노동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너도 창조적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뜬금없는 말도 덧붙인다. ‘건전한 삶의 방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길고 시름없는 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직하고 건전하게 살아도 인간에게 닥치는 운명의 시계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공평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르지만, 행·불행을 잘 나눈다는, 가끔은 그렇게 보이기도 하니까.

  

책은 온통 좋은 말로 가득하다. 너무 많아 미처 담기 어려울 지경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좋은 말들의 가치가 허울 좋은 말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나에 집중해서 말하기보다는 많은 인물들의 경구와 온갖 좋은 말들을 다 가져와서 오로지 창조, 삶이라는 것으로 녹아내려다 보니 나중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오기가 생긴다. 어떻게 살아야 창조적으로 살아갈까. 결국 모든 말은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 마음을 잘 챙기고 살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마음을 챙기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지금, 여기의 가치에 집중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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