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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2. 2020

너무도 인간적이고 지겹도록 구체적인

<슬픈 쥐의 윤회>, 도올 김용옥 지음

이야기라는 것에 픽션과 논픽션의 엄격한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목표는 의미와 재미이지, 실상에로의 접근이 아닙니다. 나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삶이라는 화엄을 구성하는 무수한 꽃잎임에는 분명하지만 실재성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설가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꾸며낸다 할지라도 완벽한 가공일 수가 없습니다. 소설가 본인의 삶의 체험을 완벽하게 단절시킬 수는 없는 것이죠.


내게 철학은 어렵다. 또 요즘 작가들이 쓰는 소설도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을 대설과 구분하여 망각하기 쉬운 소소한 이야기라고 말하며 철학적 대설(거대한 담론)과 경계를 나눈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쉽다는 말도 덧붙인다. 나는 그런 작품을 쓸 재주가 없나 보다 생각했다. 많은 것을 담아내기에는 가지고 있는 바탕이 좁기 때문이라고도 핑계를 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나의 핑계를 잘라내고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준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너무 작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의 미세한 순간을 포착하여 글로 담아내는 힘, 그것이 소설이 된다고 말해주고 그것들을 소설로 펼쳐 보인다.


자주 가는 식당의 아주머니의 사연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천재 강우현의 이야기, 다님이의 이야기와 짝사랑 이야기, 51번가 페들러 이야기 등 자신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따뜻함과 그것을 교묘하게 녹여내는 재주를 만난다. 거대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들, 슬픈 사연도 기쁜 사연도 있지만 모든 이야기에 자신의 자랑이 그치지 않는다. 강연에서 만날 때의 당당함을 책에서도 마주한다. ‘너무도 인간적이고 지겹도록 구체적’이라는 말과 ‘실존적 삶의 공적 공간화’는 타인의 삶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짧은 이야기, 소소한 담론이 모두 그렇다. 너무 인간적이고 지겹도록 구체적이며 실존적 삶을 공적으로 공간화해서 보여주는 재주, 필력을 마주할 수 있다.


영어나 한자, 일본어를 우리말로 예스럽게 표현하는 것에서 유쾌한 미소가 지어진다. 분명 영어이고 한자인데 웃음을 부르는 어투가 통쾌함 같은, 글의 운동성을 느낀다. 점잖은 선비의 말이 아니라 재기 발랄한 말처럼 들려 읽어 내려가기가 어렵지 않다. 아마도 조선시대 천재적 작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문체가 이런 문체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사실과 허구의 혼합,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백성들과 진취적 학자들에게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열하일기(熱河日記). 딱딱하고 반듯한 고전의 틀을 파괴한 재기 발랄함을 갖춘 그의 재주를 정조는 아꼈지만 그 파급력을 감당하기에는 시대와 정신이 따르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는 인문학을 말한다. 지금도 많은 사상가의 사상을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강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인문학의 힘을 강조한다. 한예종 학생들에게 하는 몸 철학 강좌의 첫 수업시간, 차렷·경례의 예를 설명하며 『예기』 「악기」의 문장을 써서 길게 설명한다. 들으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이다. 그리고 자체로 인문학 강좌다. 당당하게 했어야 할 이것을 학교 현장에서 나는 아이들이 안 하면 그냥 넘어가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몇몇 인사하는 학생과 안녕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시작에 예가 있지 않으면 수업 중에도 예가 들어서지 못한다. 수업이 끝나고는 예가 실종된 상태도 서로 상처만 남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적절한 담론을 찾아내지 못했다. 서로의 예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작가와 같은 든든한 밑천을 이제라도 마련해야겠다.


악(=예술)이라는 것은 같음을 위한 것이요, 예)=사회적 형식, 규율, 의례)라는 것은 다름을 위한 것이다. 같으면 서로 친해지고, 다르면 서로를 공경하게 된다. 악이 예를 승하면 좀 난잡하게 흐르게 되고, 예가 악을 승하면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게 격리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감에 합하는 것을 악의 일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외모의 형식을 질서 있게 만드는 것은 예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예의가 확립되면 오히려 귀천의 구별이 사라지고 평등한 인간이 드러나며, 악(예술)의 질서가 모든 사람을 공감케 하면 상하의 대립이 조화로 바뀐다. 호오가 정직하게 드러나면 현명한 자와 현명치 못한 자의 구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형形으로 폭력을 제압하고, 작위로써 현명한 자들을 대접하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간다. 인仁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고, 의義로써 백성을 바르게 하면, 백성 스스로 다스려지는 이상 정치가 실현되게 된다. 악樂이란 인간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며, 예禮라는 것은 사회적 가치로서 밖으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악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고요하고, 예는 외면에서 부과되는 것이기에 보편적인 질서감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위대한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 하고, 위대한 예의는 반드시 간단해야 한다. 악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인간세가 원망 없는 사회가 되며, 예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인간세의 다툼이 없어지게 된다. 폭력을 쓰지 않고 서로 절하고 양보하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길은 예악禮樂밖에는 없다. -『예기』「악기」


제목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느낀다. 너무 쉽게 짓는 강연의 제목들. 몸철학과 예술 강의, 그리고 짧은 이야기들의 제목들이 어렵지 않으면서 과하지 않으면서 내용을 다 보여준다. 높은 억양과 가끔 나오는 삑사리(음성지원이 되는 듯한)와 함께. 작가의 유튜브 채널을 듣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평소 하는 말투가 그대로 글로, 말과 글의 일치 때문일 수도 있다. 문어와 구어의 구분 사용이 엄격하지 않은 지금, 어쩌면 글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맞는 듯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음성지원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섣부른 주제넘음일 수 있지만 소설을 읽고 희미한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그가 쓰는 것처럼 나도 써 볼 수 있을 거라는. 그러기 위해 바탕을, 바닥을 좀 더 넓고 단단히 해야겠다는, 늦었지만 늦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인 도올 김용옥 선생의 나이 71세. 가까운 듯, 그러나 아직은 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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